[오피니언] 6펜스의 길에 서서 달의 세계를 탐닉하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9.0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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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이 쓴 ‘달과 6펜스’는 화가 폴 고갱의 인생을 좇으며 쓴 일종의 전기 소설이다. 그의 인생이 정말 사실 그대로 담겼는지는 알 방도가 없지만, 서머싯 몸이 고갱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긴 여행 끝에 이 소설을 만들어냈다는 것만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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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에는 고갱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찰스 스트릭랜드만 등장할 뿐이다.

 

스트릭랜드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스트릭랜드는 집을 떠난다. 가족들에게 어떤 언질도 없이 파리로 떠난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술집의 한 여자와 바람이 나서 떠났다고 떠든다. 스트릭랜드의 아내도 그를 믿는 눈치였다. 스트릭랜드의 집에 종종 초대받아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던 책 속의 서술자는, 그의 아내의 부탁을 받고 스트릭랜드를 찾아 파리로 향한다.

 

동네에 무성하던 소문과 달리,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파리로 떠난 것이었다. 전혀 미술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던 사람인지라, 이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취미 미술을 할 거면 직장을 다니면서 하지 왜 굳이 파리까지 도망가듯 떠나서 하느냐고.

 

스트릭랜드는 파리에서 ‘달’에 대한 단서를 본 사람이다. 다른 이들에게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달’에 닿기 위해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말 그대로 고약하고 이상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이에겐 매몰차게 대하고, 어쩐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 싶으면 그제야 관심을 갈구하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는다. 어디 그뿐인가? 파리에서의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누구에게도 보여주려 하지 않고, 그 그림으로 돈을 벌고자 하지도 않는다.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러운 그의 성미는 답답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스트릭랜드의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성격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사건은 더크 스트로브를 만난 이후다. 스트로브는 직업 화가로, 어느 정도 그림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핏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보고 난 이후, 스트릭랜드를 ‘신’으로 모시듯 한다. 스트릭랜드는 매번 스트로브에 모멸감을 주고 비참함이 느껴질 정도로 비웃는다.

 

그런데도 스트로브는 가난한 스트릭랜드를 보살피고 이후 그가 아플 때는 자기 집으로 데려와 지내도록 한다. 그러다가 스트로브의 아내와 스트릭랜드가 바람이 나고 마는데, 이때 스트로브는 아내가 결국 돌아올 것이라며 스트릭랜드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 아내의 전라를 그린 그림을 스트로브의 집 한 가운데 두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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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트릭랜드는 타히티로 떠나 여생을 보낸다. 그 시간 동안 엄청난 대작을 만들어내며 자신이 집을 떠나 파리를 거쳐 타히티로 온 것이 마냥 거짓된 결정은 아니었음을 보인다.

 

스트릭랜드는 ‘달’을 좇아가는 사람이다. 스트로브는 6펜스의 세계와 달의 세계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며, 이 모든 이야기를 서술하는 서술자는 6펜스의 세계에 서서 달의 세계를 탐닉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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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달과 6펜스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조금 감이 잡힐 듯하다. 6펜스가 현실 세계, 돈, 일상, 필수적인 것 등의 키워드로 대표되는 세계라면 달은 낭만, 이상, 꿈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이다.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서술자와 마찬가지로 6펜스의 세계에 서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달의 세계에 서 있는 사람을 특별하다고 여기거나,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여긴다.

 

특히 스트릭랜드와 마찬가지로 6펜스의 세계에 있다가 달의 세계로 건너간 사람들을 보고 비웃기도 한다. 당신이 바라는 이상은 충분히 취미로도 할 수 있으며, 나중에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 이상만 가지고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은 타박과 비웃음을 얻을지라도 누구보다 용감한 인물들이며 선구자적 자질을 지닌 사람이다. 대체 어느 정도의 용기를 지녀야 기꺼이 6펜스의 세계를 버리고 달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도 여전히 달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6펜스의 세계에 머무는 내가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달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다. 달의 세계를 외면하던 때보다 적극적으로 탐닉하고 즐기는 현재의 내가 더 풍요롭게 느껴진다. 언젠가 달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달에 잠시 착륙하여 즐기는 것만으로도 삶의 스펙트럼이 급격하게 깊어지고 넓어지는 기분이다. 마치 책 속의 서술자가 타히티에서 스트릭랜드가 남긴 작품을 보고 받은 충격과 감동을 하는 장면과 겹치는 듯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달의 세계를 더듬어보고 훑어보길 진심으로 권한다.

 

 

[장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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