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영화]

서로에게 스승인 정약전과 장창대
글 입력 2022.09.03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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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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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2021)는 정약용, 정약종, 정약전 세 형제가 신유박해에 휘말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천주교를 종교로 삼았던 정약종은 처형을 당하고, 그렇지 않은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에 가는 것으로 그친다. 정약용보다 급진적인 정약전은 더 위험한 인물로 여겨져 훨씬 더 먼 흑산도로 유배를 간다.

 

정약전(설경구)은 흑산도에 도착하여 장창대(변요한)라는 젊은 어부를 만난다. 창대는 똑똑하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섬이라는 환경 때문에 깊은 학식을 쌓을 수 없었다. 이때 약전은 창대에게 서로의 지식을 나누자고 제안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집필하기 위해 물고기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을 알려주며 우정을 쌓아간다.

 

 

 

두 가치관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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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약전과 창대 사이 가치관 충돌이 일어난다.

 

창대는 스승 정약전의 뜻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가치관으로 두었다. 목민심서는 관리자가 행해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한 책으로, 실질적인 행정 업무 서적이다. 그는 천민이지만 누구보다 관리자가 되어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창대는 '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응께요.'라고 말한다. 바다에서 바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기 위해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창대의 뜻이다. 그는 관리자가 되어야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낮은 신분에 위치한 창대는 수직사회를 인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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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약전은 글이 아니라 직접 물고기를 낚아채서 해부하고 맛을 보며, 세상을 오감으로 공부하고자 했다.

 

극 중 가거댁이 '씨만 중허고 밭 귀한 줄은 모르는 거 말이 여라. 인제 자식들도 애미 귀한 줄 알아야 써.'라며 남존여비 사상을 꼬집는다. 이때 약전은 가거댁을 나무라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사상이 잘못됨을 깨닫고 바로 고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양반이었던 약전은 깨어있는 사람이었고, 수평사회를 꿈꾸는 자였다.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처음 구상할 당시 그는 '애매하고 끝 모를 사람 공부 대신 자명하고 명징한 사물 공부. 사물 공부로 나를 잊어보려고 하네.'라고 동생 정약용에게 전한다.

 

관리를 지내본 정약전은 이미 창대가 꿈꾸는 사회를 한때 이루려 했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듯하다. 그래서 정약전은 동생 정약용에게 사람뿐 아니라 더 넓은 세상에 눈을 돌려, 기존의 자신을 잊고 '자산어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두 가치관의 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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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이 부딪힌 약전과 창대는 헤어진다. 약전은 흑산도보다 육지와 더 가까운 우이도로 거처를 옮긴다. 창대 역시 흑산도를 떠나 과거 시험을 보고 관리가 되는데, 현실은 창대가 생각한 것보다 더 가혹했다.

 

벼슬아치들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까지 세금을 매겨 백성들을 사족 없이 수탈했다. 어느 한 남성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자신의 성기를 자르기까지 이른다.

 

애통한 백성들의 삶을 본 창대는 '배운대로 못 살면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나아질 수 없는 현실을 씁쓸히 인정한다. 창대는 흑산도로 돌아간다. 그가 고향으로 가는 길, 스승인 약전을 뵙고 가려 했으나 이미 약전은 자산어보와 창대에게 편지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창대는 다시 흑산도로 돌아가는 배에서 흑산도를 '자산도'라고 정정하며, 스승의 뜻을 존중한다. 그리고서 화면은 흑산도의 풍경을 조명하는데 이때 흑백이었던 화면이 여러 색으로 물들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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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자산어보의 뜻을 따른 정약전, 목민심서의 길을 가려 한 장창대의 인물 중 누가 맞고 틀린 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결국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시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들이 얽히고설켜서 역사가 만들어진다. 이준익 감독은 약전과 창대가 부딪히고 이해하는 과정처럼 사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항상 몸살을 앓는 중이고, 이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보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약전의 말처럼, 서로의 가치관이 충돌할지라도 존중하는 것이다. 먹의 농담이 화선지에 스며들어 번지듯 오직 자신의 의견만 관철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도 따라가면서 함께 어느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길인지 배워나가야 한다.

 

조화로운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면, 흑백으로 담백하게 칠한 영화 <자산어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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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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