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서 [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자연의 사계절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와 위로
글 입력 2022.08.3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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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재난 수준의 폭우까지, 유독 지난했던 올해 여름도 단숨에 그 기세가 꺾인 듯하다. 아침과 저녁이면 벌써 쌀쌀해진 공기에서 가을의 냄새가 느껴지니 말이다. 낭만적인 여름밤의 추억도 유쾌한 휴가도 없었지만, 여름이 지나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게 매년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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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면 여름을 붙잡고 싶은 아쉬운 마음에 꼭 찾아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리틀 포레스트>다. 한국 리메이크작이 아닌 일본 버전을 말하는 것이다.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리틀 포레스트>는 '여름과 가을', '봄과 겨울' 두 편으로 나누어 일본 농촌의 정취를 담아냈다. 주인공인 이치코가 고향 마을 코모리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정성스러운 끼니를 차려 먹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한식과 비슷한 듯하지만 식재료나 조리법이 조금씩 다른 일본 가정식의 정갈하고 소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큰 매력이다.

 

 

 

고향으로 도망쳐 온 이치코


 

한국 리메이크작은 일본판과 달리 사계절을 압축해 한 편으로 담아내면서 주인공이 자급자족하는 장면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친구들과의 관계성과 서사가 더욱 강조되었다. 그만큼 영화의 호흡이 좀 더 빠르다. 반면 일본판은 두 편으로 나누어 코모리에서 느끼는 계절감을 더욱 느리고 긴 호흡으로 표현한다. 스토리도 큰 사건 없이 고요하게 흐른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주인공 이치코의 이야기는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 내고 계절이 흐름과 함께 느껴지는 그의 내면적 성장이 잘 드러나 영화에 깊이 몰두하게끔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코모리를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던 이치코는 어느 여름날, 고향으로 도망치듯 돌아온다. 엄마인 후쿠코는 이치코가 성인이 될 무렵 말도 없이 이미 어딘가로 떠나고 없는 상태. 아무도 없는 고향집에서 이치코는 홀로 농사를 짓고 제철 식재료로 요리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언제든 다시 도시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여름 편에서 이치코는 노지 재배로 토마토를 수확하려 하지만 토마토가 비에 약한 터라 번번이 실패한다. 마을 사람들은 조그만 하우스를 사라고 권유하는데 이치코는 그렇게 되면 정말로 코모리에 정착하게 될 것 같아 거절한다. 이렇다 보니 이치코는 친구 키코와 유우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거리감을 느낀다. 진심으로 고향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인생을 열심히 사는 그들과 달리 자신은 나약해진 자신을 감추기 위해 도망쳐 온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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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은 조금씩 커지게 될 거야


 

이치코는 뭐든 혼자 한다. 도시에서도,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다른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서 하루를 살아 내는 일은 그곳이 도시든 시골이든 관계없이 쉽지 않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코모리에서 보낸 이치코지만 엄마가 없는 코모리의 생활은 또 다르다. 이치코는 문득문득 엄마를 떠올린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자주 하고 정작 중요한 말들은 해주지 않았던 엄마. 그러나 이치코는 어렸을 적 건너편에 앉아 바라보기만 하던 엄마의 일을 스스로 해내며 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밭에 자란 푸성귀를 뜯어 볶음 요리를 하는데 이치코의 요리에서는 엄마의 맛이 나지 않았다. 고기를 넣어 봐도, 간장이나 소금 간을 다르게 해봐도 어딘가 질겨 아쉽다. 샐러리 껍질을 벗기던 어느 날, 이치코는 번뜩 푸성귀의 껍질을 벗겨 볶음 요리를 해본다. 엄마의 맛이다. 또 볶은 것 뿐이냐며 정성 담긴 요리를 먹고 싶다고 투정 부렸었는데 사실 정성이 제대로 담긴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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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무렵,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는 이치코에게 편지를 한 통 보낸다. 편지에는 집을 떠나게 된 이유 등과 함께 아래의 내용이 쓰여 있었다.


 

“뭔가에 실패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 나선은 커지게 될 거야.”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 작물을 수확하고 겨울이 지나면 또다시 다음 겨울을 대비해 밭을 간다. 그것이 코모리의, 자연의 일상이다. 여름에 코모리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요리하며 추운 겨울을 보낸 이치코는 밭을 갈아 놓았지만 감자는 심지 않았다. 내년 겨울에는 이곳에 없을 것이므로. 코모리에서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이치코는 코모리의 자연과 과거 엄마와의 추억으로부터 자신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이치코는 이를 토대 삼아 자신만의 나선을 그리기 위해 용기 내 또 한 번 도시로 올라간다.

 

 

 

나의 리틀 포레스트


 

여름 편에서 막 코모리로 돌아 온 이치코는 집 옆의 수유나무 바닥에 잔뜩 떨어진 수유를 보며 이런 독백을 한다. '많은 열매가 떨어져 썩어간다. 그 많은 과정들이 쓸모없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겨울 편에서는 이치코가 겨우내 말린 무 절임에 곶감을 넣어 키코와 나눠 먹는다. ”추우면 힘들긴 하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다.”는 키코의 말과 함께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라는 이치코의 독백이 이어진다. 독백의 뉘앙스가 변화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코모리에서 계절을 보내는 동안 이치코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다.


직접 부딪혀 자신의 힘으로 체득한 지혜는 몸 곳곳에 새겨져 켜켜이 쌓인다. 그리고 이는 깊은 곳에서부터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장난 섞인 거짓말을 일삼으면서도 진짜 중요한 것들은 스스로 깨우치게 한 엄마와 수십 년 전부터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코모리의 자연은 이치코를 단단하게 지탱할 삶의 지혜를 전수해 주었다.


이치코가 코모리를 떠난지 5년이 지나고 다시 봄, 이치코는 남편과 함께 코모리에 돌아온다. 숨을 곳이 없어 도망쳐 왔던 때와 달리 가족을 이루어 완전히 정착한 것이다. 비로소 진짜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 이치코가 마을 축제에서 전통 무용 공연을 선보이는 것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에서 말하는 '리틀 포레스트'란 스스로 단단히 뿌리를 내려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아무데나 꼭지를 던져 놓아도 잘 자라는 토마토처럼, 또 다른 누군가는 아주심기를 해야 하는 양파처럼 각자의 리틀 포레스트는 제각각일 것이다. 그곳이 도시든, 시골이든 혹은 장소가 아닌 직업 또는 사람 그 무엇이라도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가 될 수 있다. 이치코의 엄마가 보낸 편지의 내용처럼 우리는 모두 성공했든 실패했든 경험을 통해 조금씩 나선을 그리며 성장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도망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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