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대안영상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국내 유일무이한 축제의 장 - 서울국제 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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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화제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지 못하는 새로운 영화를 경험하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서울국제 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은 이에 부합하는 적합한 장소이다.
네마프에서는 기존의 관습이나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가진 영상예술을 만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속하지 않으면 ‘실패’라고 간주되는 이제껏 보지 못한 예술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번 네마프의 주제 ‘자연이 미디어다: 작-용’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재난의 시기를 만든 인간 역시 자연임과 동시에 미디어임을 제안한다. Media, 매개체를 뜻하는 ‘미디어’는 ‘경계선의 작용’이다. 현재 다양한 종의 생명들이 멸종하고, 인간과 가축이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97%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은 더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지구의 멸종을 시시각각 앞당기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이며, 경계선 양쪽 모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디어’이다.
22회까지 이어져온 네마프는, 주류에서 주목하지 않는 영상, 예술, 노동, 여성 등을 이야기하며 영상예술의 다양성을 도모했다. 이번 아트인사이트 초대를 통해 만난 네마프의 전체적인 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5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초청전, 한국, 글로컬, 장편으로 나눈 경쟁 부문, 각종 심포지엄과 대안영상예술이론학교, 전시 등 다채롭고 농밀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페스티벌의 의미뿐 아니라, 아시아 내에서 중요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장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물론, 국내 유일의 대안영상 축제가 가진 ‘다양성’때문에 하나의 주제의식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인식하는데는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이 점을 인지하고 주제전, 작가전, 칠레전, 아시아/뉴대안영화전 등의 섹션 분화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충분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좋다. 가끔 섹션 이름이나 슬로건이 ‘제목’으로서의 의미가 전부인 영화제와는 확연히 차원이 다르다.
30여개국 130여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이중 필자는 글로컬 부문에서 2편의 프로그램과 이번 네마프의 아이덴티티 작가인 ‘로이스 파티뇨’의 <죽음의 해안 (coast of death, 2013)>을 감상했다.
제22회 <서울국제 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 만난 인상깊은 작품
<죽음의 해안>은 작가에게 신화적인 장소이다. 갈라시아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수많은 난파 사고가 일어났던 장소이다. 지역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 온, 역사와 전설이 섞여 있는 기록을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다는 작가는, 거대한 자연 이미지에 마치 점처럼 존재하는 인간을 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이스 오버로 담는다. 명상 이미지처럼 스크린 위에 흐르는 이미지와 이야기들은 자칫 보다가 잠에 빠질 수도 있다. 아름다운 자연풍광에 귀와 눈이 시원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자연 풍광을 단순히 시각적 쾌락의 대상으로 삼거나 그것에 감정이입 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는 우리의 무의식을 더 들여다보고자 하는 의미를 가진다.
로이스 파티뇨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언더독 뮤지엄에서 하는 전시를 함께 관람했으면,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이해했을 텐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이외 관람한 작품으로는 글로컬 경쟁 부문에 출품된 해외 작품들이었다. 이 중 기억에 남는 몇 개 작품을 언급하고자 한다.
이마놀 루이즈 데 라라의 <노라와 함께한 17분 (17 minutes with Nora,2021)>, 17분 짜리의 짧은 영상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섬세함이 좋았다. 성소수자인 아들이 아버지에게 커밍아웃까지 하는 순간을 롱테이크로 담았다. 배우의 연기와 카메라의 호흡을 통해 온전히 전달되는 감정은, 주인공이 ‘나를 이해한 적이 없잖아요’라고 연극 대사를 하는 순간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파블로 폴레드리의 <루프 (loop, 2021)>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은 위트가 있어서 좋았다. 도시속 곳곳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행동을 한다.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소음과 리듬으로 영화는 움직이는데, 여기에 균열을 내는 등장인물이 출연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이 출동한다. 등장인물들이 도망치면서 균열을 낼 때마다, 경찰들은 리모콘을 통해 다시 원래대로 만들어놓는다. 이 작품은 현대적 삶의 단조로움과 순응성을 능숙하게 패러디하고 있다.
힐스 헨리의 <소셜 스킬 (Social Skills, 2021)>이라는 작품은 실험적 댄스 영화이다. 한 공간 안에 밀집되어 있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춤을 춘다. 춤인지, 동작인지 모를 몸동작에 맞춰 음악이 편집되고 화면이 움직인다. 군상 안에서 의미없는 행위를 하는 것 같지만, 영화는 춤행위가 서로 동화되는 무리의 인간들을 조명함으로써 주제를 만든다. 10분동안 이어지는 영화는 무리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 꽤 재미가 있다.
에마뉘엘 판 데르 아우에라 <더 스카이 이즈 온 파이어 (The Sky is on Fire,2019)>라는 작품은 디지털 환경의 기술적 장치와 데이터가 어떠한 기억을 재생산하는지를 탐색한다.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여 스캐닝한 마이애미 뒷골목 풍경은 이미 오래전 몰락한 도시 같다. 그러나 한편, 이 디지털 세상이 고고학적 발굴의 대상이 되었을 때 아주 먼 미래의 누군가가 재구성할 현재의 풍경을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영상에서 계속 반복되는 내레이션이 있다. “여기는 사라지지 않아요. 한시적인 것은 우리에요”라는 말.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데이터화되고, 모든 일상이 기록되는 시대지만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은 ‘우리’라는 말이 귓가에 선명하게 울린다.
이 외에도 관람한 작품들이 모두 흥미로웠다. 확실히 영화제여서 관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관람하고 싶다는 욕구도 지울 수 없었다. 영화제를 오면서 늘 드는 생각이었다. 이 다양하고 많은 영화를 기꺼이 탐험하는 동지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
미디어아트나 대안영상 예술을 극장에서 만나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전시회에서 만나더라도, 다양한 작품을 관람해야 하는 탓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럴 때마다, ‘전시된’ 영상을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극장, 전시관에서의 관람 경험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는 네마프에서도 직접 비교해볼 수 있는데, 마포구에 위치한 언더독 뮤지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도 네마프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테마로 구성된 네마프를 내년에는 조금 더 시간을 충분히 두고 관람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시, 상영관, 심포지엄 등 다양한 형태로 대안영상 예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제22회 서울국제 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 도록
[민지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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