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위하여 – 앙상블 블랭크 8월의 크리스마스

글 입력 2022.08.25 16: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황금비율, 조화, 황홀함, 모던함? 사람마다 ‘아름답다’ 생각하는 포인트는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아름답다’며 동의하는 보편적인 미의 기준이 존재한다. 단적인 예로 패션의 유행이 있을 것이다. 음악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음악이 다르다. 과거 베토벤 음악도, 당시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동의하는 ‘아름다움’의 보편적인 기준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자주 보아서, 자주 들어서 익숙해지는 걸까?

 

<앙상블 블랭크>는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위하여, for Unfamiliar Beauty’를 모토 삼아 활동하는 현대음악 예술단체이다. 컨템포러리(Contemporary)라고 붙는 모든 현대예술은,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 한다. 그래도 ‘현대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특정 장소라도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다가갈 수 있지만, 현대음악은 어떻게 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번 공연이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살아 숨 쉬는” 현대 작곡가들의 공연, <8월의 크리스마스- 작곡가는 살아있다>


 

앙상블블랭크 포스터.jpg

 

 

8월 18일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린 <8월의 크리스마스>의 부제는 “작곡가는 살아있다”이다. 보통 ‘클래식 음악’ 하면 베토벤, 모차르트 등 현존하지 않는 작곡가의 작품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대에도 시대적 흐름과 음악사조를 반영한 창작품이 존재한다. ‘앙상블 블랭크’는 2020년 제1회 앙상블 블랭크 작곡 공모를 시작해 3년째 계속 진행해왔고, 이번 무대에서는 2회 당선자 중 두 작곡가의 작품이 초연되었다.

 

영화제로 따지면 세계 최초 상영의 의미인 ‘프리미어 상영’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번 무대를 통해 창작품 2곡이 연주된다. 현대음악 작곡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 계속 활동하고자 하는 단체의 역동성을 단연 느낄 수 있었다.

 

무대가 시작하기 전, 연주자 한 분이 나와 공연에 대한 설명과 ‘현대음악’을 대하는 약간의 팁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부득이하게 공연이 축소된 점에 대해 양해의 말을 전했다. 대부분의 곡이 초연인 관계로, 새로운 연주자로 대체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앙상블 블랭크> 연주자가 이야기하는 '현대음악' 감상 팁



현대음악을 처음 마주하는 관객으로서, 연주자분이 언급해준 팁을 주의 깊게 들었다. 현대음악 특성상 리듬과 구성이 난해하거나 중구난방일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계획된 악보에 의해 연주된 것이며, 따라서 악기 편성과 무대 구성도 자유롭다. 무대 연출도, 조명이 어두워지는 등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들 의상 또한 각자의 개성에 따라 입는다.

 

드디어 무대가 시작되었다. 현대음악 입문자인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건, 악기와 주법을 최대한 유심히 관찰하고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을 가능한 확장하는 것이다. 팸플릿을 통해 곡 설명을 읽어보는 것 또한 도움이 되었다.

 

먼저 첫 번째 곡은, 윤은혜의 ‘달을 둘러싸고 있는 먼지’를 뜻하는 'Moondust (2021)'이었다. 팸플릿에는 “우리가 동경하고 갈망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고 적혀 있다. 관객 감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떠올린 그림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릴러 소설에서 볼 법한 산장 장면이 떠올랐다. 스산한 달빛 아래, 벌어지는 미스터리극 같은 장면.

 

두 번째 곡은, 살바토레 샤리노의 ‘Spazio Inverso for Ensemble (1985)’이다. “리듬이 사라진다면 대위법의 중력을 이기고 비로소 하늘의 별처럼, 지평선 너머의 무수한 산처럼 움직임이 살아난다. 이러한 적막 속에, 우리는 음들의 간격이 만드는 가장 작은 단위의 긴장감을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처럼 발견할 수 있다.”라고 팸플릿에 적혀 있다. 전 무대와 달리 어두운 조명 아래서 진행되어, 청각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131.jpg



악기 구성과 편성 그리고 연주 주법에서, 현재까지 관람했던 클래식 연주 방식과는 확실히 달랐다. 관악기 연주자들은 공기 반, 소리 반의 모양처럼 숨소리를 관에 계속해서 불어넣었고, 운지할 때도 거의 타악기처럼 악기 몸체를 심하게 두드렸다. 현악기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악기 몸체 가운데 있는 활이 다니는 브릿지 가까운 지판까지 짚어 최대한 높은 소리를 냈는데, 멜로디를 듣기보다는 어떤 소음 혹은 기계음을 듣는 듯 했다.

 

세 번째 연주된 곡은, 베른하드 간더의 ‘Soaring Souls (2020)’이다. 지휘자 없이 더블베이스와 첼로 두 악기만으로 구성되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주판 위의 신들린 듯한 손놀림은, 역시나 여태 봐왔던 것과는 다른 형식과 틀을 모두 깨 버리는 연주법이었다. 보통 조연으로 빠져 베이스를 담당했던 악기들이 전면에 등장해 빠른 리듬과 패턴으로 긴장감을 자아내는 방법이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네 번째로 연주된 곡은, 이성현의 ‘“Aether” for Ensemble (2022)’이다. 다소 어려운 작품이라고 느껴졌는데, 역시나 초보 감상자의 눈에 띈 것은 주법이었다. 특히 더블베이스가 활의 양 끝을 잡고 마치 빨래판에 긁듯 여러 개의 현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듯한 모습이 흥미로웠다.

 

다섯 번째로 연주된 곡은, 유상민의 ‘Aleph(x) : über das Unendiche’ 이다. 퍼커션의 등장으로 전체적 분위기는 더욱 웅장해졌는데, 다른 곡들과 달리 초반 도입부가 강렬했다. 팸플릿에는, ‘도입부의 충격으로부터 파생된 공명은 곡 전반으로 퍼지면서 서로 다른 농도와 크기의 “무한”의 파형들을 만들어낸다”고 설명이 되어있다.

 

 

 

"현대음악" 어쩌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의 현현


  

[크기변환]KakaoTalk_20220825_174827279_11.jpg

 

 

한 시간 동안 ‘현대음악’이라는 것을 감상하고 나니, 문득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나는 애써 악기들을 구분하려 했었다. 얘는 바이올린, 얘는 비올라, 클라리넷, 오보에, 첼로, 등등. 연주자들이 입은 각양각색의 옷만큼이나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진 악기들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악기 간의 위계가 사라지고, 각 악기가 마치 분자처럼 느껴졌다. (분자란, 어떤 물질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체이다.) 누가 주연이나 조연이 아니고 고유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긴 하나의 분자로, 이것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결합해 산소라는 물질도 되고 물도 되는 것이다.


다르게 생긴 악기지만 두드리고, 뜯고, 켜고, 긁는 주법이 언뜻 비슷해 보여서 그랬을까? 다섯 가지의 다른 곡들로 발현되기 이전 악기들과 연주방법에 대한 디테일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음악에 ‘현대’가 붙은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금 우리 세계 안에서도, 각 개인은 어느 정도 동등한 위계를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뭉치고 흩어지니까 말이다.

 

현대음악은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아름다움이다. 익숙하지 않다는 관점에서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 조화로웠다. 각자의 음들이 제자리를 지키며 아주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때로는 엇박자에 의해 연주되었을 뿐, 철저한 계획 아래 공연은 진취적인 아우라를 내뿜었다.

 

과거 베토벤 음악이 당시에는 아름답지 않았듯이, 현대음악이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음악 또한 후대에 가서 아름답다고 여겨지질지 모르는 일이다. 미의 기준은 유동적이고, 어쩌면 우리가 아직 발견 못한 아름다움의 현현일 수도 있다. 일상, 소음, 자연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새로운 미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현대음악’이라는 것을 배웠고,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틀을 깨버리는 더욱 다양한 현대음악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민지연.jpg

 

 

[민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