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출국

Spread your wings and fly away
글 입력 2022.08.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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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나기를 게으르게 타고났지만, 타지에서 반년간 살 살림을 출국 당일까지 싸고 있을 줄은 몰랐다. 보통 멀리 떠나는 친구에게 ‘넌 어딜가도 잘살 거야’라는 인사로 축복을 빌어주던데 내 친구들은 걱정돼 죽겠다고 난리다. 그도 그럴 것이 출국 당일 처리한 일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환전, 핸드폰 정지, 선불 유심 택배 받기, 서류 인쇄하기, 생필품 구매하기

 


밤 비행기였던 출국 당일까지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대체 이런 걸 왜 미리 안 해뒀냐고 핀잔주는 엄마의 잔소리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들을 시간에 할 일을 해야 했다.


프랑스에 가서 2주간 쓸 선불 유심은 출국 전날 오후에 익일배송 택배로 시켰는데, 출국일을 내일로 설정하니 해당 쇼핑몰에서 전화가 왔다. 상담원은 당황한 말투로 말했다.


“내일 출국인데 지금 시키신다고요?”


밤늦게 출국이라 시간 넉넉하다고 상담원분을 안심시키고 나서야 주문을 확정할 수 있었다.


뭐 어쩌겠나. 이게 나다. 그렇지만 좋은 점도 분명 있다. 휘몰아쳐서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출국에 앞서 불안이나 걱정되는 마음이 들 틈이 없다. 그리고 목숨이 걸린 퀘스트 깨는 기분이라 짜릿하다. 은근히 효율도 좋다. 등짝 스매싱을 맞고 싶진 않아서 이 장점에 대해 부모님께 말하진 않았다. 짐 다 쌌냐고 걱정하는 친구들과의 단톡방에나 말하고 욕 한 바가지 먹는다. 으헤헤.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마지막으로 집밥 먹고 가족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막내딸과는 달리 계획적인 부모님 덕분에 3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수하물이 규정인 40kg을 넘겨버려 3명이서 머리 맞대고 1시간이나 낑낑대며 정리했다. 이별을 앞둔 가족은 서로에게 화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짐을 다 정리한 후 기진맥진한 상태로 셀프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나 뭐 잘못하고 있나? 놀라서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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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들이 서 있었다. 하루 종일 단톡방에서 할 일 다 했냐고 계속 걱정하던 그 친구들이 기상천외한 화환을 목에 매달고 서 있었다. 밤 9시에. 서울과 한참 떨어진 인천공항에서. 회사라 전화 못 받을 거라고 했던 애들이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도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자기들도 출근해야 하면서 내일 일찍 출근하는 우리 엄마 아빠 먼저 집에 보내고 나랑 있어 주려고 왔단다. 나 빼고 우리 가족 다 알고 있었고 짐 정리하는 1시간 동안 뒤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고 있었단다.


5개월 교환학생을 5년 이민으로 만들어주는 멋진 친구들. 입국 수속 기다리는 100여명의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게 해주는 고마운 친구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만 자랑스러운 친구들.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함께 있어 줬다. 비행기에서 읽으라고 편지도 주고,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으면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순간과 교환학생으로의 첫 순간을 함께해주었다.


그 애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마 모를 거다. 그날의 그 우스꽝스러운 이벤트가 나의 5개월 해외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걱정 없었다면 거짓말인, 커다란 도전의 출발선에서 받은 응원 덕에 나의 스타트가 얼마나 안정적이었는지. 여전히 얼굴만 보면 서로 놀리지 못해 안달인 친구들이지만, 모두 덕분이라고, 덕분에 파리 교환학생이라는 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고. 그렇게 전하고 싶다.


비행기에 올라타서는 끝까지 웃다가 헤어진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이륙을 준비했다. 좌석 모니터에 저장된 Queen의 Spread your wings가 눈에 들어와 재생했다. 원래도 즐겨 들었지만, 이 상황에서 들으니 왠지 의연해졌다. 다짐하듯 마스크 속으로 가사를 읊었다.


Spread your wings and fly away. 네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멋지게 날아오르는 5개월을 보내야지. 날개를 쭉 펴고 세계를 유랑해야지. 남몰래 다짐하는 어느 청년을 태운 비행기는 파리를 향해 천천히 날아올랐다.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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