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MP4를 찾았다.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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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짚어보는 행위는 내 존재를 재확인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면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괜히 앨범을 뒤적이고, 내 방에 붙여둔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유럽 여행을 떠올리는 티켓들을 눈에 담는다.
비록 연속선상에 있는 시간이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에겐 모든 시간이 분리된 것처럼 느껴진다. 내 시간의 덩어리는 ‘학교’를 기준으로 나뉜다. 초등학생의 나는 어땠던가? 고등학생의 나는? 그렇게 그 시절의 나에 대해 일종의 ‘한 줄 평’을 내려야 속이 시원하다. 어떠어떠했던 내가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추억을 뒤적이는 행위는 주기적으로 치러야하는 의식과도 같다. 종종 시간이 만들어가고 있는 ‘기억’이라는 경계가 너무 흐릿하게 느껴져서 그 돌담을 꾸준히 보수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
이 돌담은 견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허술하지도 않다. 적당한 경계를 형성하여 나의 공간을 표시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높이이다. 그러기를 바라기도 한다.
최근 내 기억의 돌담 속 흐릿하게 잊혔던 조각 하나를 찾았다.
바로 초등학생 때 아빠가 처음으로 사주셨던 MP4를 발견한 것이다. 학원에 걸어가면서 아이유의 BOO를 들을 수 있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그렇게 아이유의 음악을 좋아하던 초등학생은 곧 입시에 직면한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생은 스마트폰을 포기하고 폴더폰으로 바꾼다.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도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는 길에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생의 내가 쓰던 MP4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때도 분명히 이랬을 거다. “이거 진짜 오래된 거야.”, “추억 돋아.”
지금 MP4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 시간에 멈춰있다. USB 선을 찾을 수 없어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넣을 수 없다. 내가 그 시절 듣던 151개의 노래만이 오롯이 그곳에 머물러있다.
침대에 누워 새벽이 다 되도록 MP4에 담긴 노래를 하염없이 들었다. 그때의 내가 좋아했던 가수, 노래, 분위기. 어쩐지 과거의 내 이야기를 MP4가 해주는 기분이었다. 언제든 고등학생의 나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으니 듣고 싶을 때 찾아와도 된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울컥하거나 감상에 젖는 기분은 아니었다. 그냥 안심되었다. 나를 기억하고 설명해주는 매개체가 내 몸 밖에 존재한다는 것은 게임 속 여분 수명이 넉넉한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내가 모든 세세한 기억을 붙잡으려 지난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므로,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그 MP4는 내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기억의 공간 한쪽에 언제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상자를 마련한다.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내가 계속해서 그 상자와 소통하며 현재의 나를 확인하고 꾸려나갈 것이다.
어쩐지 MP4 속 노래들이 종종 찾아올 나의 불안함과 어려움을 해소해줄 유토피아가 되어줄 것만 같다.
[장민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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