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각양각색, 농도 짙은 다정함을 가진 에디터들과의 만남

제11회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 (220814) 후기
글 입력 2022.09.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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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화에 낄 수 있을까?



본래 나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조금 일찍 마음을 접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할 거다. 아트인사이트에는 소위 문화예술 ‘애호가’로서 많은 양의 문화예술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고 감상하는 이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깊이 있게 몰두하고 자주 천착하는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또한 아트인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심도 있는 감상을 기반으로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전문성이 두드러지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과연 에디터들의 대화에 낄 수 있을까 싶었다. 애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한 것도 아닌 내가.

 

그렇게 제11회 오프라인 모임 신청 마감 당일, 대표님으로부터 마감일 안내 문자가 왔다. 물론 넘기려 했다. 그런데 문자를 보는 순간 괜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신청 폼에 커서를 올린 채로 오래도록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문득 제10회 오프라인 모임 신청 때도 가지 않은 것을 뒤늦게 후회한 게 떠올랐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는 시간이 될 수도 있는데 두렵다는 이유만으로 기회를 걷어찬 거 같아서였다. 돌연 저번처럼 후회하느니 한 번 부딪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정확히 마감 시간 10분을 남기고, 자기소개 칸을 일필휘지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해 걱정되지만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배우고 싶다는 포부도 함께였다.

 

대망의 오프라인 모임 당일이었다. 사실 나는 오프라인 모임에 가기 이전까지 모든 에디터의 글을 전부 섭렵할 작정이었다.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 정도 성의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계속해서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실패했다. 하릴없이 오프라인 모임 전날 밤에서야 글을 읽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인상적인 구절을 스크랩하고 간단한 메모를 남기는 등의 행동은, 현장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까지도 이어졌다. 좀 더 시간을 넓게 잡고 미리미리 봤으면 할 말이 많았을 텐데 싶었다. 죄책감으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으로 간다면 에디터들과 대면했을 때 초긴장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전부 내려놓고 최대한 즐기자는 마음가짐 하나로 모임 장소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렇게 대표님의 안내에 따라 배정된 조로 향했다.

 

조원들과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마쳤을 때, 나는 모임이 홀로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모임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조금은 각이 잡힌 상태로, 근엄하고 진지한 대화가 오갈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대화는 글을 쓸 때와 달리 그저 모임의 흐름에 몸을 맡겨도 될 정도로 편안하게 진행됐다. 그러니까 전부 각자의 색채가 빛나는 멋지고 근사한 글들을 쏟아내는 에디터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던 거다. 우리는 서로의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최근에 향유한 예술이나 간단한 감상 등을 나눴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따뜻하고 다정한 말투를 구사하는 건 기본이었다. 여기서 우리 조는 MBTI가 전부 비슷했다는 사실도 모임의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몫을 한 것 같다. 대표님께 여쭤보니 일부러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같은 조에 배치했다고 하셨다. 대표님의 세심한 배려를 두고, 조원들 사이에서는 감탄이 오갔다.

 

조별 토크 시간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같은 분야에서 일하거나 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로 모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현재 잡지사 취직을 희망하는 취준생인 나는 운 좋게도 잡지사에 몸담은 조원들을 여럿 만났다. 하여 어떤 경로로 들어가셨는지부터, 잡지사의 생태나 전망, 요즘 지원서 준비 중인 회사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조원분들께서는 현직자답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현장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주셨다. 대표님께서도 몇 마디 더해주시면서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을지 도와주셨다. 같은 업계를 희망하는 사람으로서 친절하고 정성스럽게 답해주신 게 무척이나 감사했다. 왜 그렇게 모임에 올지 말지 오래도록 고민했었는지, 그 길고 지난한 시간이 단번에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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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법도 제각각 - 영화 애호가라는 테마로 묶여도 저마다 다른 색채의 우리들



조별 토크가 끝난 뒤에는 장르별 그룹 담화 시간이 이어졌다. 그룹은 영화, 전시, 공연, 도서까지 총 네 개였고, 각자 원하는 그룹에 들어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 됐다. 평소 아트인사이트에 영화 오피니언을 자주 기고했던 나는 영화 그룹에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그룹은 동일한 관심사로 묶였음에도 각자의 취향 및 감상 방식이 전부 달랐다. 작게는 당시 최근 개봉작이었던 <헤어질 결심>에 대한 감상에서 갈렸고, 크게는 인생 영화로 선정한 장르나 내용 부분에서 갈렸다. 영화를 자주 감상하는 정도도 전부 달랐다. 내 경우엔 영화 비평을 주로 기고하긴 했지만, 애호가는 아니다. 그에 반해 어떤 분은 올해 감상한 영화만 해도 몇백 편에 이르는 데다, 영화제 기간에는 매일 참석할 정도로 상당한 씨네필(이하 A 에디터)이셨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한 가지 인상 깊었던 대화를 꼽아보자면 이렇다. 시작은 B 에디터님의 물음에서였다. B 에디터님은 영화를 볼 때 계속해서 생각하고 의미를 파악하며 감상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려서 영화를 여러 편씩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씨네필 분(A)에게 어떻게 영화제에 방문해 여러 편을 내리 감상할 수 있냐고 물었다. B 에디터님은 우리에게 다른 분들은 영화를 어떤 식으로 감상하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B 에디터님의 발언에 깊은 동의를 표했다. 나 역시 영화를 볼 때 계속해서 의미를 파헤치면서 보는 편인데, 영화를 감상하는 일이 굉장히 소모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쓸 때도 특정 부분에서 무언가 생각나면 영화를 잠시 멈춰놓고 메모하다가 다시 영화를 시청하는 작업을 지속하다 보니 한 편만 봐도 지친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오피니언을 쓰기 이전에 10장 정도 분량의 메모가 나온다고 첨언하기도 했다.

 

그러자 C 에디터님은 놀라면서, 본인은 리뷰를 쓰려고 해도 할 말이 생각나서 고역을 치른다고 하셨던 게 기억난다. C 에디터님은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를 틀어놓고 할 일을 한다고도 하셨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그 정도로 영화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는 무언가를 분석하기 이전에 좋아하는 데에서부터 좋은 감상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C 에디터님의 방식이 너무 좋은 거 같고, 부럽기도 해요. 저는 아직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수준까지는 이르진 못한 거 같아요.” 그러자 A 씨네필 에디터님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저도 그렇게 계속 생각하면서 봤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내려놓고 그냥 즐기자, 이렇게 된 거 같아요.”

 

돌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D 에디터님이 현 상황을 정리해주셨다. “제가 봤을 땐 영화를 즐기신다는 두 분 (A, C 에디터님)이, 영화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분석하며 보신다는 두 분 (B 에디터님과 나)의 단계를 거친 뒤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후자의 두 분은 전자의 두 분이 취하는 방식으로 바뀌기 이전의 ‘과도기’에 계신 게 아닐까.” 명쾌한 답이었다. 나 역시 D 에디터님의 의견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B 에디터님은 D 에디터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부터는 그럼 저도 내려놓는 게 필요할 거 같다는 식으로 동의를 표하셨던 것 같다.

 

이외에도 여름 분위기의 영화를 보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여름 분위기가 물씬 나는 영화들을 하나씩 추천해주셨다. 개중에는 <콜미바이유어네임>이나 <모아나> 같은 유명 대중영화부터 <행복한 라짜로>, <프리다의 그해 여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까지 다양했다. 또 <기쿠지로의 여름> 같은 고전 일본 코미디 영화도 있었다. 에디터분들은 각 영화 추천과 함께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친절하게 짚어주셨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호기심이 동했다. 궁금하신 분들은 에디터분들이 픽한 위 영화들을 찾아보고 같이 감상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글과 인생을 가르쳐주신 정영선 대표님의 특강



끝으로 방송작가를 거쳐, 현직 브이알북 대표이자 스토리텔링 마케터로 활약 중이신 ‘정영선’ 은사님의 특강이 있었다. 이 시간에 대한 소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어쩌면 이번 모임의 백미가 아닐까 싶었으니 말이다. 매일 같이 방 안에 틀어박혀 글만 써서는 깨닫기 어려운, 오랜 시간 동안 현장에서 부딪쳐야 얻을 수 있는 값진 정보들이었다. 이 파트에서는 정영선 은사님께서 해주신 조언 중 인상 깊었던 바를 먼저 언급하고, 뒤이어 깨달은 점을 덧붙이는 식으로 끌어가 보려 한다.

 

 

 

첫 번째 조언, “여러분을 잘 챙겨야 좋은 글이 나와요.”



은사님께서 해주신 조언을 상세히 언급하기 이전에, 우선 글 쓸 때의 내 성향을 밝히려 한다. 나는 무언가 목표하는 바가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그 안에만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심할 경우 몇 달 동안 관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모임을 빼고는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글만 쓴다.

 

졸업한 뒤부터는 아르바이트와 글쓰기를 병행해왔다. 그래봤자 고작 일주일에 이틀을 아르바이트에 투자한 거였지만 그마저도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글을 쓰다가도 아르바이트하러 가야 할 시간이 임박하면 중간에 끊어야 함은 물론이고, 돌아와서는 흐름을 놓쳐 집중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약속이라도 잡히면 즐겁기보단 괴로웠다. 사람을 만나야 리프레시가 된다고 합리화하는 한편, 불쑥 방해 요소가 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워서였다. 그래서 모임에 나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 한 켠에 몇 그램의 불안감을 끌어안고 있었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내 이런 성향을 두고 딜레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언제까지나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법. 글쓰기를 생업으로 정한다고 할지라도 이래저래 해결해야 할 다른 과업이 따라붙는데 전부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러다간 인간관계가 모두 끊겨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도 뒤따랐다.

 

위의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이렇게 잠도, 사람과의 만남도,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줄이고 몸을 축내가며 글쓰기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점이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온 힘을 다해 쏟아붓다 보니 번아웃도 쉽고 빈번하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을 제대로 수행했는지의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내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거다. 이건 심각한 사안이었다. 은사님은 이런 내게 적격한 조언을 해주셨다.

 

“글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요. 한 사람의 일자리보다, 한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해요? 그런 건 세상에 없어요. 글 이전에 여러분을 잘 챙기셔야 해요. 그래야 좋은 글이 나와요. 유명한 작가들은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기 이전에 우선 좋은 엄마, 좋은 아빠들이에요.”

 

은사님은 글을 쓸 때 만사 제쳐두고 나를 버려가면서, 주변 이들을 변방으로 내몰고 상처를 주면서 쓸 게 아니라고 조언하셨다. 우선 나를 먼저 챙기고 주변 이들도 잘 돌보면서 건강해져야 외려 글도 긍정적인 방향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거였다. 은사님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화를 예로 드셨다.

 

“하루키의 문장이 단출하면서도 간단명료하잖아요. 그 작가 원래 그런 문체 아녔어요. 굉장히 현학적인 작가예요.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까 중간중간 손님이 오는 거예요. 그렇게 조금 끊겼다가 다시 쓸라니까 흐름이 끊기고 문장이 툭툭 짧게 끊어지는 거예요. 거기서 일하다 보면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쿨해져요. 저랑 하루키뿐만 아니라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다 그래요.”

 

이는 여유를 가지고 글을 써야 한다는 당부로 이어졌다. 여기서 여유는 그런 거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릴 수 있는 여유.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 처음에 완전히 의도한 방향으로 글이 흘러가지 않을지라도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이는 뒤이어 은사님께서 글을 잘 쓰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하신 것과 맥을 같이한다.

 

“혹시 시작해놓고 마무리 못한 작품이 세 작품 이상 있으신 분은 손 들어보세요. 너무 어깨에 힘 들어가서 그래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마지막 온점까지 찍어보세요. 그러면 굉장히 유치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왜냐. 질보단 양이 더 중요하거든요. 재능 좀 있고 그런 사람은 어디서 관건이 나냐. 양에서 나요. 매우 의미 없어 보이지만 나중에 꼭 써먹을 일이 있어요. ‘아 쓰다가 엉망으로 해놓은 거 있는데!’ 하다가 그거 나중에 꺼내서 다시 쓰게 될 수도 있고.”

 

은사님께서는 글쓰기를 마라톤에 비유하면서 이 코스가 나랑 안 맞는다고 다른 대회 가지 말고 반드시 완주만 하자고 조언하셨다. 드라마스쿨 가서 끝내 데뷔하는 이들은 끝내주는 글을 쓴답시고 한 번도 안 낸 자들이 아니라, 맨날 내고 깨지고 다시 쓰길 친구들이라고. 은사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셨다. “글은 몸으로 쓰는 거예요.”

 

 


두 번째 조언, “레이디 퍼스트를 할지, 페미니즘을 할지 한 가지만 선택하세요.”



정영선 은사님께서는 방송작가 일을 오래 하시면서 직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레이디 퍼스트로 할지 페미니즘을 할지 한 가지만 하라.” 요컨대 페미니즘을 한다면서 그와 모순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일관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신 거였다. 이 조언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왜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앞의 파트와 마찬가지로 우선 내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다. 

 

학부생 시절 나는 전공인 극작 이외에도 여성학 수업을 여럿 들었다. 각종 기사와 뉴스를 보고 심각성을 깨달았을뿐더러, 내가 주로 보고 다루는 미디어 텍스트 전반에도 여성 혐오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시각들이 곳곳에 활개 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관해 나름의 사유를 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활 전반에서 내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자신에게 한 가지 의구심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 수업에서 읽은 논문의 내용 때문이었다. 저자는 ‘나는 페미니즘은 아니지만’이라는 말을 서두에 제시하고 말을 잇는 경우를 지적했다. 여기서 '아니지만'이라는 어구 뒤에는 성평등을 도모하는 데에는 동의한다는 식의 발언이 이어진다는 게 특징이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하지는 않지만, 성평등을 도모한다는 발언은 다소 이율배반적이지 않나. 이는 페미니즘을 미러링 등 과격한 방식으로 이행하는 극단적 행태의 운동이라고 국한했기에 양립할 수 있는 주장이었다. (물론 미러링이 과격하고 잘못되기만 했다는 전제 자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미러링이 형식적으로는 동일한 방식을 취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기존의 여성혐오와 미러링의 방식이 결코 동등한 위치를 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여성 혐오는 존재할지라도, 남성 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에 관해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이러한 발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본인은 과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평등을 추구하므로 래디컬 페미니스트와 달리 정의롭다는 인식이다. 저자는 앞선 태도에 대해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수혜자의 자리를 자처한다고 지적했다. 과격한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은 지속하면서 페미니즘 운동 하에 개선되는 부분이 있다면 고스란히 수혜를 떠안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앞선 태도를 취하는 데 대해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기득권 남성 사이에서는 기존의 위치와 권력을 박탈당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였고 그 과정에서 거세진 반동 정서에 맞서는 건 두려울 수 있다. 그러나 성평등을 도모하기 위해선 이러한 반향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게 사실이다. 더욱이 앞선 반동 현상은 위협 상황을 인지하는 데서 나오는 특성인 만큼 페미니즘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해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 말이다.

 

해당 구절을 읽을 당시 나는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고 반추하게 됐었다. 물론 나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기변명을 하지도, 앞선 태도에 손을 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니 나라고 크게 다를 게 뭔가 싶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은사님의 말씀을 들은 거다. 나 역시 방법과 방향성을 명확히 해 실천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편 상기한 은사님의 조언은 한 에디터가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자, 그에 대한 답으로 제시한 것과도 궤를 같이했다. “말투를 어리게 하지 마세요. 절대 어린 여자를 무기로 쓰지 마세요. 그럼 나중에 끝이 안 좋아요. 정석대로 하세요.” 젊은 여자를 대상으로 벌이는 각종 혐오 발언에 대응하기 위해, 감정을 앞세우지도 말고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되 분명하고 똑 부러지는 투로 말하라는 거였다. 늘 뒤늦게 분개하면서도 막상 부당한 상황에 부닥치면 우물쭈물한 자세를 보이는 내게 필요한 조언이었다.

 

 


세 번째 조언, “융복합 시대에서는 글 말고 다른 것도 중요합니다.” (+ 그 외)



또 하나의 조언은, 요즘은 융복합 시대이므로 작가라고 해서 단순히 글만 잘 쓸 게 아니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우고 흡수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은사님은 이에 대한 예시로, 과거 한 지역에 스토리텔링을 곁들인 건축을 선보여 지역발전에도 힘쓰고 홍보에도 성공한 전력이 있다고 언급하셨다. 추가로 과학잡지나 경제지 등, 문화예술 외적인 잡지를 구독하라고 추천해주셨다. 그런 식으로 다양하게 지식을 습득하면, 언제가 됐든 분명히 글 쓰는 데도 도움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이외에도 은사님께서 글 쓰는 이들이 갖춰야 할 자세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꼽으셨다. 첫째, 운동할 것. 작가는 건강해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둘째, 종교랑 상관 없이 기도할 것. 세 번째, 고전을 읽을 것. 가벼운 문장들만이 활개 치는 책을 읽다 보면 나도 가벼워지고 다 날아가 버리는데 고전을 읽으면 묵직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묵직함을 잘 느끼고 묵직하게 사유해야 한다고 첨언하셨다.

 

고전을 읽으라는 조언과 비슷한 맥락으로, 은사님께서는 라틴어를 배운다고 하셨다. 라틴어는 어려운 만큼, 공부하고 나면 뇌에서 어려운 것을 습득하고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은사님께서는 라틴어를 학습한 뒤에 글을 쓰면 잘 써진다고 하셨다. 지나가는 말로, 나중에 라틴어를 가르치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닮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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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걸고 있었던 이름표. 이름표 디자인과 이름 쓰기는 전문필진 오예찬님께서 진행해주셨다.

 

 

 

마치며



그렇게 정영선 대표님의 특강을 끝으로 전 스케줄을 다 마쳤다. 원래 그룹 담화 시간이 한 번 더 있었으나 시간 관계상 진행하지 못했다. 에디터들 사이에서 그룹 담화 시간이 한 번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터져 나왔다.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에, 8시간은 턱없이 짧았던 모양이다. 마지막 부근에는 에디터들끼리 아쉬움 가득한 인사를 나누다가 연락처나 SNS 아이디를 교환하는 등,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끝나고 2차까지 참석한 에디터들도 있었다. 물론 그중에 나도 있었다. 우리는 본 스케줄 동안 나누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해 못 꺼낸 이야기를 끝에 가서 더했다. 같은 관심사로 똘똘 뭉친 에디터들끼리의 만남이었으니 더없이 화기애애하고 유익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겠다.

 

모임에 참여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단어를 섬세하게 고르고 문장을 운용하는 이들이다 보니, 말을 함부로 내뱉는 이가 부재하다는 거였다. 어쩌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자리에서 예의를 지키며 발언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라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본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들을 자주 경험해온 나로서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각자의 소신을 전하면서도, 누구 한 명 상처 입히지 않겠다는 태도로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 에디터들의 섬세함이 따뜻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을 올까 말까 고민하는 데 쏟았다. 그러나 내가 에디터들 사이에 끼지 못할까 염려했던 건 기우였다고, 외려 이 모임을 통해 더욱 애정하게 됨과 동시에 겸허한 자세로 많이 배우고 열정을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대화가 어떤 이야기로 채워졌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각기 다른 취향과 필체를 가진 우리들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수평적 위치에서 소통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은사님께서 사람과 관계에 대해 조언해주셨던 바를 아래 덧붙인다.

 

“여러분은 글 쓴다고 문장에만 매몰되지 말고 세상을 배우고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길 바라요. 사람도 많이 만나보세요. 비슷한 사람 말고, 나랑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재래시장에 가보세요. 서너 시에 가면 전국 중소매상이 와서 팔거든요? 여러분 그런 세상 모르시잖아요. 마장동에 고기 만드는 데 가보셨나요? 스케이크 집만 찾을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거기 가실 게 아니고, 소를 잡는 데를 가셔야 해요. 작가는 그런 걸 알아야 해요. 더 멀리 보고 더 넓게 보고. 그래야 여러분의 콘텐츠가 더 넓어질 거예요.”

 

사람과 만나는 일의 즐거움을 알려준 다정한 에디터분들께, 인생에서 배운 값진 정보를 다수 공유해주신 은사님께,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단번에 휘몰아치듯 경험할 수 있게 해주신 대표님께 감사함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김성윤, 「우리는 차별을 하지 않아요」, 문화과학, 93, 9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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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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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뽀로예
    • 함께 모임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이번 글을 보고 다시금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났어요!! 진짜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려서 다시 꺼내주심에 감동입니다 ㅎㅎ 더 소중하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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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리
    • 뽀로예ㅎㅎ감사합니다 저도 그날 넘 즐거웠고 기억에 남는 대화도 많았어서 최대한 가득 담아보려고 했어요…! 히히 너무 제 만족으로만 길게 쓴 거 아닌가 싶었는데, 끝까지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동이에요ㅠㅠ 담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온한 하루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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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nxxzy
    • 오프라인 모임에서 접했던 모든 것들이 이 글을 읽음으로써 선명히 떠올라요.
      그 날, 함께여서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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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리
    • minxxzy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면 성공입니다…! 히히 그날 끝무렵에 먼저 말도 걸어주시고, 제가 전한 이야기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도란도란 얘기 나누면서 걷는 내내 편안하고 좋았어요ㅎㅎ 우리 담에 또 만나요!! 그때까지 별 탈 없이, 건강히 잘 지내시길 바라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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