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의 모서리에서 예술을 말하다 -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 [도서]

글 입력 2022.08.2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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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 작은 미술관


 

미술 이야기가 즐거워 검색창 앞에서 관련된 단어들을 두들겨 볼 때가 있었다. 유튜브에도, 포털에도 검색을 하다 보면 자주 상단에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여러 계정을 팔로우한 뒤 종종 소식을 들었다. 그 덕에 올해 다시 찾아온 베니스 비엔날레를 가볼 수도 있었다. 직접 눈앞에서 그림을 볼 순 없었지만, 영상을 통해 베니스의 곳곳을 가득 채운 작품과 예술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미술 교육인이자 아트 컬렉터, 이소영 작가의 이야기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아트 메신저'라는 이름을 붙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미술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천천히 이소영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오던 중, 신간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은 일명 아웃사이더 아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서랍에서꺼낸미술관_표1.jpg


 

제도권 안, 미술계 주요 물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아웃사이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성실하고 분주하게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유명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 빛을 보는 이와 끝까지 어둠 속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이의 대비가 가장 극명한 예술계에서 아웃사이더는 나 또한 늘 궁금하고 마음이 가는 대상이었다.


목차를 펼쳐 만난 이름들은 대부분 낯설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서기로 마음먹었다.

 

 

 

수용소에서 꽃피운 미술


 

책장을 넘기며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온 이야기는 오스트리아의 화가 프리들 디커브랜다이스였다. 그는 어린이 미술로 유명한 프란츠 치젝의 제자로 미술 교육을 받았다. 치젝은 어린이가 많은 하숙집에서 살았던 경험에서 어린이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를 공부하는 데에서 나아가 미술교실까지 만든 인물이다.


그 아래서 미술을 배운 디커브랜다이스는 프라하에서 미술교사로 활동을 한다. 하지만 미술 교육에 대한 꿈과 희망은 나치 앞에 무너지고 만다. 남편과 함께 나치 강제수용소 중에도 최악이라는 체코의 테레진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디커브랜다이스는 다시금 일어선다. 폭력과 불안이 가득한 수용소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모아 그림을 그리고, 함께 공유하기 시작한다. 수용소 밖에서 간신히 몰래 들여온 미술 재료와 작품 이미지를 나눠주며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간이 흘러 수용소를 탈출하는데 성공한 제자가 ‘디커브랜다이스의 미술시간이 자신들에게 희망과 자유를 상상하는 법을 알려줬다’고 말한 문장, 그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예술이란 대체 무엇일까 가끔 생각한다. 예술은 좋을 때 보아도 좋은 것이지만, 나에겐 힘들고 지칠 때, 어딘가 기대고 싶지만 기댈 어깨를 찾지 못할 때 그 자리에 있어주는 존재다.


그림은 당장의 고민을 말끔하게 지워낼 수 있는 해결책이나 실용적인 조언을 건네진 않는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일에 정신없이 몰두해서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내가 바라는 삶은 어떤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조차 흐릿해질 때 그림은 말을 건넨다.

 

침착해. 잠시 숨을 골라봐. 아직 넓고 무한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어.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흐르면 오늘의 고민도 멀게만 느껴질 거야. 모든 것을 돌파하고 헤쳐나갈 힘과 용기는 너에게 있어. 그리고 사실은 깊은 곳에서 너도 그걸 알고 있어.

 

삶이 하강하는 순간에 예술은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도 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조용히 속삭여주는 존재.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경험하고 무언의 공감과 위안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수용소 안에서의 삶, 내가 경험해 본 적 없을 커다란 고통은 함부로 가늠할 수조차 없다. 다만 그 안에서 디커브랜다이스와 아이들이 모여 앉아 그림을 그리고 나누며 자유를 느끼는 순간, 조용히 미술이 꽃 피는 순간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페르디낭 슈발의 꿈의 궁전


 

직접 두 눈으로 가장 보고 싶었던 건 페르디낭 슈발의 꿈의 궁전이다. 슈발은 프랑스의 오트리브라는 마을에서 33년 동안 성실히 우체부로 일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하루에 30km 넘는 거리를 홀로 걸으며 일을 했다는 이야기에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다. 누군가에겐 외롭고 고독해 보이는 그의 일과 삶이 나에겐 편안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길목에서 슈발은 공상을 즐겼다고 한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길가 곳곳을 구경하며 머릿속 이야기를 펼쳐 나갔을 슈발을 그려보게 된다. 슈발은 실현될 수 없는 세계와 공간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궁전을 조금씩 만들어 갔다. 낮에는 우체부 일을 하고, 밤이 되면 꿈속의 궁전을 두 발을 디딘 이 세계로 가져오고자 돌을 쌓았다. 은퇴 후에는 본격적으로 궁전을 만들기 시작해 높이 10미터에 이르는 큰 규모의 궁전을 완성한다.


부분 부분 섬세한 돌조각과 다양한 모양의 기둥, 돔 등이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운 인상을 준다. 멀리 해외로 여행을 갈 때마다 성당에 꼭 들리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어떤 한계를 넘어선 노동력과 정신력, 그 바탕이 된 강한 신앙심 속에서 숭고함이 느껴졌다. 슈발의 꿈의 궁전을 떠올리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궁전을 위해 온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을 그의 낮과 밤.


꿈속의 궁전을 꿈에만 머무르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실로 가져왔다는 데 감명 깊었다. 생각 속에서만 자라나는 것들도 즐거움을 주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적극성과 열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그가 참 대단하고 부러웠다.

 

 

 

깊은 밤, 빛나는 이름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는 어쩌면 아는 이름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유명해서 눈에 익숙한 그림들을 구경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어릴 적 어두운 밤, 부모님이 붙여준 방 곳곳 붙여준 야광 별을 찾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이름들을 알아갈 수 있다. 르네상스는 세 명의 화가가 가장 유명해, 인상주의 하면 이 화가지, 요즘엔 이 사람이 제일 잘나가, 손에 꼽히는 예술가들로 시대를 설명하는데 왠지 모를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같은 예술계 동료들, 비평가, 대중들 그 누구도 나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꾸준히 그려낸 사람들. 그 꾸준함은 어떠한 것보다도 귀하다.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 수천 장의 그림을 그려낸 화가도 있었다. 그들 앞에서는 돈과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써의 예술이 아닌, 그리고 만들고 감상하며 느끼는 온전한 예술에의 기쁨을 생각해 보게 된다.


‘서랍에서 꺼낸 미술관’과 함께 천천히 그 이름들을 만나보면서 예술에 대해, 삶에 대해 각자의 생각이 뻗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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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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