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 [도서/문학]

여성과 과학 탐구,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글 입력 2022.08.1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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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지난 6월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에 대하여 여성의 페미니즘 관점에서 써 내려간 과학 탐구 도서다.


과학에 흥미 있는 여성이라면 단연 끌리게 될 제목이었다. 여성을 단지 신비롭게 여겨온 관점은 과학이 흡수한 사회적 차별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생물학에서 여자와 남자는 꽤 분리된 역할을 하는 듯 보인다. 여성은 대개 연약하고 아름답고 태아를 잉태하여 출산이라는 숭고한 과정을 겪는 '여신'으로 표현되었다.

 

여성이 추구하는 여성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저명한 과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문을 통해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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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으로부터 도망치는 여자들


 

과학은 늘 어려운 학문이었다. 과학계에 남성 종사자가 많은 것을 당연하게도 그들의 능력과 관계 지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문과, 이과를 나누는 결정의 순간이 온다. 더 나아가 이과 학생들은 탐구 과목 중에서 심화 과목을 선택하게 되는데, 물리를 선택하는 여학생의 비율은 현저하게 낮았다.


반면 다수의 이과 남학생들은 물리를 선택했다. 책의 끄트머리인 '10장 페미니즘 물리학의 도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성들이 점유하는 과목이 존재하는 것이다.


능력이 뛰어나고 성적이 좋은 여학생의 대부분이라면 자신의 능력치를 목표에 대입해 볼 것이다. 요컨대 물리는 뛰어난 자들의 영역이었기에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면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성적이 그저 그런,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남학생은 아무 고민 없이 물리를 선택했다. 고등학생 때를 돌이켜보니 옆 반에도 그 옆 옆 반에도 수두룩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뛰어난 남학생은 존재했다. 그러나 뛰어난 여학생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단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만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 물리를 선택한 학생들과 함께 화학 수업을 함께 들었다. 남녀의 성비를 나눌 필요도 없이 물리를 선택한 학생들은 모두 빠짐없이 남학생들이었다. 이 선택에는 진로와 직결된 성적 문제가 뒷받침했을 테고, 학업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물리는 과학을 좋아하는 여학생의 입장에서 다가가기 어려운 짝사랑 같았다.

 

뚜렷한 성비는 능력 차이로 이어지곤 했다. 이토록 어려운 학문을 공부한 남성들은 능력 있고 뛰어난 집단으로 평가되었다. 물리학의 여성 비율을 높이려면 일단 부딪혀야 한다. 단지 머릿수에 불과한 통계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에는 우리는 충분히 능력이 있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 물리의 재미를 처음 느꼈다. 물론 고등학생일 때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어쩌면 선택을 포기한 것보다 피해 다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여자와 남자가 모자이크 된 뇌


 

유튜브에서 예능 출연진들의 뇌 MRI를 분석하는 편집 영상을 보았다. 좌뇌와 우뇌의 교량 역할을 하는 뇌량이 가장 크거나 혹은 전두엽이 발달한 뇌, 크기가 크고 주름진 뇌를 선출해냈다.


이를 분석한 정재승 교수는 정작 본인의 뇌에 대해서 "생각보다 작다. 그리고 생각보다 평범하고 특별하지 않은 뇌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뇌는 여성의 뇌보다 크기가 크다. '모자이크 된 뇌'라는 표현은 단지 뇌의 크기만으로 여성과 남성의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태초의 타고남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정의된 여성에 대한 과학적 소견(여성은 뇌 크기가 작고 골반이 넓다)은 가정일에 탁월한 인간상을 대두시키기 위해 차별을 심어온 것으로 보인다.


많은 학자들이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건의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번 장에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부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는 강력한 효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뇌 기능 발달에 우월함을 지우게 되었다. 뇌는 많이 학습할수록 발달했고 특정 성별에 치우쳐 발현하지 않고 반대로 능력치를 반영하는 기관이었다. 능력은 성별에 국한되지 않았다. 따라서 타고남 앞에 주저하기 앞서 모든 결과는 스스로 노력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임신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그 이유는 임신을 단지 고귀하고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격정 출산 누아르'라는 소개를 덧붙였다. 고귀한 출산을 거부하며 엄마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고군분투하여 마침내 엄마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임신은 한 생명의 탄생이기도 했지만 산모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모유 수유를 거부하는 여성은 어떤가. 훗날 자식의 모든 병환이 모유 수유를 거부하고 분유를 먹였기 때문이라는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은 아이를 출산하는 것 이외에 자신을 돌보지도 못하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과정에서 단순히 엄마 역할인 여성에게만 잘못을 돌린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책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하여 면밀히 생각해 볼 것을 권했다. 냉동 난자라는 이슈를 들여다보며 건강한 난자에 걸맞는 건강한 정자에 대한 요건을 빠뜨려선 안 됐다. 임신이 모두 여성의 책임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분명하게 바꿀 필요를 느꼈다.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


 

'여신이 되기보다 사이보그가 되겠다'


미국의 페미니스트이자 과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사이보그 선언문은 페미니즘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과학은 여전히 남성의 고유한 기술로 여겨졌고 우리는 무조건적인 비판을 거두고 이를 활용해야만 한다. 여성의 몸은 수술과 개조를 통해 사이보그에 가깝다는 의견 역시 미래지향적으로 느껴지는 바이다. 이 말에는 과학과 밀접하게 이어져있는 여성의 삶이 엿보였다. 오랫동안 차별을 일삼았던 과학과 적이 아닌 친구가 되기까지 많은 여성 과학자의 외침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의 외형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에게 가하는 성차별과 성희롱은 과학이 우리의 차별적 사고와 언행을 흡수했다고 보인다. AI '이루다'를 둘러싼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사이보그로 나아가는 길에는 이를 타파할 사회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이 명명하고 있는 과학적 탐구와 관련하여 우리는 여성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써 내려갈 필요가 있다. '여신'으로 취급되곤 했던 관습적 태도 말이다. 이때까지의 접근은 남성 위주의 과학이었음을 인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줄곧 '차이가 없음'을 증명했던 연구 결과는 페미니즘의 외침과도 같은 결을 띄고 있다.

 

다만, 과학 학자 임소연의 말처럼 과학에 척을 두기보다 긴밀한 관계에 두기 위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과학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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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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