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충북 제천에서 만난 '처음책방', 초판본과 창간호 전문 서점 [공간]

글 입력 2022.08.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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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마시는 소주의 종류, 처음처럼. 참이슬보다는 순하고 진로보다는 부드러워서 좋다. "처음"엔 어떤 느낌이 담겨 있는걸까. 제천국제음악 영화제를 찾았다가, 우연히 <처음책방>이란 곳을 방문했다.

 

영화제 폐막식이 열렸던 제천의 유명 관광지 ‘의림지’ 호수를 지나 세명대학교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신축 주택가가 보인다. 그 옆에 뷰 좋은 언덕에 위치한 책방. 관광지 근처의 흔한 감성 책방이라 생각한 나는 그저 남는 시간을 보낼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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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웬걸, 말 그대로 “처음” 책방이었다.

 

문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 사진, 무용,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정기간행물, 일간 신문, 여성 남성 잡지부터 심지어 회사에서 발행하는 ‘사보’까지 각종 초판본, 창간호만 있는 정말 “처음”으로 가득한 책방이었다.

 

한가로운 2~3시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은 내부로 문이 닫히었나 싶었는데, 목요일 휴무라는 간판을 마주하고 문을 밀었다.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분이 책방 한쪽에 책을 가득 쌓아놓은 채 작업 중이었고, 책방 주인인 중년 여성분은 우리를 책 읽으러 온 젊은 분이라고 반겨주셨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주인분이 설명하는 책방 이야기에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30년간 초판본 및 창간호만 수집했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여, 더 이상 컨테이너에 쌓아둘 수 없어 책방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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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잡지 창간호들

 


책방 들어가자 보이는 매대 위로는 세월을 머금고 있는 영화 관련 잡지가 수두룩했다. 유의미한 영화 잡지가 많이 사라진 지금, 이 많은 잡지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심지어 창간호라니, 제천국제음악 영화제를 맞아 진열된 영화잡지를 시작으로 책방을 천천히 둘러봤다.

 

박물관이라도 해도 되었는데, 그 이유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명한 문학 작품의 초판본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으로는 미술, 사진 잡지 초판본이 있어 눈길이 갔다.

 

최근 일민 미술관에서 <언커머셜: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를 관람했을 때, 상업사진이 담긴 옛날 잡지를 만났었는데 지금과 같은 광고로 도배되지 않은 굉장한 퀄리티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전시 연계 강의 자료로 보았던 실물을 책방에서 마주할 줄이야.

 

지금처럼 인터넷 매체가 많지 않았던 시절, 희소한 정보와 사견이 담긴 매체로서 ‘잡지’는 최신 트렌드를 적극 반영하고 있었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각종 잡지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아래와 같이 아파트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잡지도 있었다.

 

그 외, 워킹우먼, 여자은행원, 여행, 고속버스, 만화 등 잡지가 다루는 소재의 가짓수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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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책방을 운영하는 분의 이력이 궁금했다.

 

책방 근처 세명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김기태 교수님이 그 주인공이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저작권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김기태 교수는 출판 기획자로 일해왔다. 그의 초판본 수집 이력은 청계천 헌책방에서 만난 <뿌리깊은 나무>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잡지이다. 1967년 3월에 창간된 <뿌리깊은 나무>는 당시 군부독재 아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언론을 대신하여 ‘문화’의 힘을 빌려 꼿꼿한 목소리를 낸 잡지였다. 이처럼 종이로 된 출판물에 ‘처음’이라는 의미가 더해진 초판물을 지난 30여년 간 약 10만권을 수집해왔다고 한다.

 

김기태 교수는 <처음책방>이 수많은 출판물과 초판본과 창간호를 구경할 수 있고, 원한다면 구매할 수도 있고, 출판과 저작권에 관해 공부할 수도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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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각고의 고난과 고통을 통해 처음 발행된 무엇. 처음 시작한 무엇, 이 모든 것에는 정량화할 수 없는 의미가 가득하다. 시작하기까지 두려움과 설렘이 난무하지만 결국 잉태된 무엇은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다. 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을 쓰기 위한 초고도 그렇고, 많은 처음이 그렇다.

 

초판본이라 부수도 많이 찍지 않는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기에. 그리고 처음이라 생각지도 못한 큰 오타나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실제로 초판본과 개정본을 비교해 보는 것도 큰 재미라고 이야기했던, 책방 주인의 말이 기억이 난다.

 

이런 ‘처음’이 가득한 <처음책방>은 그 의미와 크기뿐 아니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비닐로 싼 보존상태 좋은 책으로 가득하기에 그 아우라를 유지한다. 아마도 교수님의 바람대로 <처음책방>은 곧 입소문을 타고, 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성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처음책방>

Where_ 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8길 23

Detail_ 매주 목요일 휴무 

Youtube_ 처음책방

Instagram_ 1ststudiolo

 

 

출처 및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뿌리깊은 나무, 1976 (한국의 생활 디자인, 채혜진)

[네이버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공식 블로그] 김기태 교수님 소식, 초판본과 창간호 수집하는 저작권학자.

 

 

민지연.jpg

 

 

[민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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