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믿을만한가 [영화]

글 입력 2022.08.1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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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이라는 착각,



나는 나름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말이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수업이 끝난 강의실로 낯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본인들을 ‘영화 관계자’라고 소개하며, 좋은 정보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손에 작은 카드 하나를 쥐고, 이 카드 하나면 1년 동안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고, 원하는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순간 눈이 반짝였고, 망설임 없이 카드를 구매했다.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다. 자세히 찾아보니 공짜 영화는 극히 일부였고, 시사회 참석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들이 말한 혜택과 실제는 너무 달랐다. 나는 ‘무료’와 ‘시사회’라는 말에 현혹되어, 관계자라는 그들의 말을 의심하거나 검증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보고 싶은 대로 봤고,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그래도 3만 원을 대가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안일한 믿음이 불러온 위기, <빅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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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는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를 다룬 영화이다. 경제 대국으로 알려진 미국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안일한 믿음'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의심 없이 믿는 태도는 미국 경제를 도미노처럼 무너뜨렸다. 그들은 세 가지를 믿었다.

 

첫째, 주택 시장은 안전하다. 둘째, 은행은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셋째, 경제 구조는 튼튼하고 체계적이다. 영화는 그 믿음에 대한 진실을 차근차근 파헤친다.

 

소소한 이율로 시시한 이익을 얻었던 은행이 야욕을 드러낸 것은 70년대 후반이었다. 주택 담보 대출을 이용한 증권 상품(MBS)이 등장하면서였다. 금융 상품은 주택 시장의 안정성과 호황을 이유로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은행은 거대 자본을 끌어모으고, 미국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증권을 만들 수 있는 담보 대출이 점차 부족해졌다. 욕심이 끝도 없었던 은행은 상품을 더 만들기 위해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주었다. 신용이 낮은 사람들의 대출로 구성된 상품은 안정성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지만, 은행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판매했다.

 

 

 

모두가 파티를 즐기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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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별 의심 없이 금융 상품을 사들였고, 은행은 끝나지 않을 것같이 파티를 즐겼다. 하지만 광란의 파티를 멀리서 지켜보고, 비딱하게 바라본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영화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크리스찬 베일),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자레드 베넷(라이언 고슬링), 벤 리커트(브래드 피트)였다. 그들은 지나치게 과열된 주택 시장과 그와 관련된 상품을 의심했고, 실체를 파악했다.

 

마이클 버리는 증권을 구성하는 수천 개, 수만 개의 대출 현황을 모두 살펴봤다. 대출 목록에는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대출금을 몇 달 동안 연체한 사람들도 많았다. 한편 마크와 그의 직원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부동산을 조사한다. 마을에 주택은 여러 채였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은 4명뿐이었다. 대다수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버리고 도망간 상태였고, 남아 있는 사람들마저도 집을 팔고 싶다고 했다.


과열된 주택 시장은 거품 그 자체였고, 주택 시장을 기반으로 한 금융 상품은 곧 휴지 조각이 될 것이 뻔했다. 진실을 알게 된 네 명의 주인공들은 주택 시장이 곧 망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투자한다. 주택 저당 증권의 보험 상품을 대거 사들이는 방식으로 말이다. 증권의 가치가 하락해서 반대로 보험 상품의 가치가 폭등하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믿음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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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들의 모험이 순탄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들의 믿음에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장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예상대로 주택 시장은 무너졌지만, 주택 저당 증권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았다. 증권을 구성하는 요소가 불안정해지면, 그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인데도 말이다.

 

알고 보니 신용 평가원들의 소행이었다. 공정해야 하는 신용 평가원들은 은행과 한통속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다. 신용 평가원은 평가 대상이지만 고객인 은행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은행의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은행에서 발행한 상품에 무조건 좋은 등급을 주어 은행이 손실을 보지 않게끔 말이다. 신용 평가원과 은행의 합작은 시장의 흐름마저 조작하고 있었다.

 

 

 

승리의 결과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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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증권의 가치는 폭락하고, 주인공들은 보험 상품을 매도하여 상상 초월한 이익을 얻는다. 그들은 승리했지만, 환호하거나 기쁨에 도취하지 않았다. 승리의 결과는 그야말로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집을 잃었다. 잘못된 믿음에 근거한 탐욕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앗아 갔다. 다른 영화라면 화려한 마무리가 펼쳐졌겠지만, <빅쇼트>는 고요하고 엄숙하게 끝이 난다.

   

*

 

이 영화는 단순히 경제 이야기가 아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실화를 근거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다수의 생각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통념이라는 이유로, 권위자가 옹호했다는 이유로 우린 너무 많은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 믿음이 믿음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믿음은 행동을 수반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행동은 타인에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믿음은 마치 나비 효과와도 같다.

 

우린 네 명의 주인공들처럼 한 번쯤 의심하고 확인해 봐야 한다. 적극적인 자세로 믿음의 실체를 파악하고,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의 시작으로 <빅쇼트>를 감상해 보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경제 용어가 많아 어려운 영화이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가졌던 잘못된 믿음을 버리고 진실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둘러싸인 진실의 과실을 같이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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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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