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의 모든 법칙을 거스르는 그 곳, 바티망

건물은 녹아내리고 우리는 거꾸로 매달리고
글 입력 2022.08.1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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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jpg


 

얼마전 관람하였던 ‘바티망’은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나의 예상과 틀을 모두 빗나가는 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매순간 새로운 공간에 발을 들일 때마다 다음은 어떤 작품과 구성으로 나의 생각을 깨어주는 신선함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되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전시였던 것 같다.


사실, 이 전시를 보고자 마음먹은 데에는 ‘어디 얼마나 대단한 전시인가 보자’라는 조금은 고약한 심보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바티망 전시가 이루어진 노들섬을 자주 가곤 했는데, 노들섬 안에서도 나의 최애 장소는 각종 도서가 구비되어 있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노들서가’였다.


그런데 웬걸, 얼마전 점 찍어 둔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겨 부푼 기대를 안고 도착한 노들서가에는 전시 공간 조성을 위해 운영을 중단한다는 공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들서가는 잠시 자리를 옮긴 것이었지만, 내 딴에는 노들서가가 사라지고 전시가 구성되는 것으로 오인해 다가올 전시에 대한 기대 반, 탐탁치 않은 마음 반쯤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전시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전시가 오픈되기 이전 노들서가를 자주 이용하던 나는 이곳의 가용 면적을 알고 있었기에 이토록 좁은 공간에 어떻게 전시를 녹여 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었는데, 그러한 전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것인지 짧지만 굵은 한방이 있는 독특한 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한 작품씩 인상 깊었던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좌) 비행기(El Avión ,2011) _ (우)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jpg


 

전시장의 첫번째 공간은 ‘여행’을 테마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풍경을 눈 앞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던 이 작품은 기내에서 들릴 법한 소리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움직임이 더해져 마치 관람자를 이름모를 신비한 나라로 데려갈 항공기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을 자아낸다.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jpg


 

그런가 하면, 맞은편에는 간이 의자와 지하철 창문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구성되어 있었다.

 

조금은 낡고, 그레피티와 스티커가 곳곳에 새겨져 있어 어쩐지 힙한 스트릿 느낌을 주는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어쩐지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에 도착한 후, 그곳의 지하철을 통해 관광지로 이동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듯 이 두 작품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관람자를 관광객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치 여행을 온 듯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감과 조금은 두려움 마음이 공존하는 그 순간, 너무나 오래 전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 난다.

 

한동안 우리를 묶어 두고 있던 감염병 사태로 인해 무뎌지고 말았던 여행객으로서의 감정은 생생한 영상과 사운드로 구성된 전시를 통해 재현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새로움으로 향하는 관문 같기도 하다. 비행기와 지하철, 모두 교통수단으로 원래 있던 공간에서 새로운 공간으로 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지점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 자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관문. 현실을 되돌아보고 직시할 수 있는 시간,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이렇게 담백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교실(Class Room, 2017).jpg


 

설치 작품 중에서 유독 시선을 끌었던 것은 안쪽 별도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던 ‘교실’이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다.

 

조금은 휑하고 단순해 보이는 검은 단색으로 이루어진 교실을 마주하며 의문이 드는 순간, 유리창 너머로 조금은 섬짓하기까지한 교실의 풍경이 보인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 교실 안의 그 무엇도 성치 않은 장면에 대낮에 방문하였음에도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피어나는 의문들을 뒤로 한 채 의자에 앉아본다. 다음 순간 굉장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유리창에 나의 모습이 비치며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멀고 낯설게 느껴졌던 교실 공간 안, 원래부터 이곳의 학생이었던 양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경하고 무서웠던 감정은 자연스럽게 저 너머의 공간에 대한 궁금증과 이해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모하여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의도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징의 민주주의(The Democracy of the Symbol)_2.jpg


 

전시 바티망은 주로 설치 미술이 시선을 끌고 있었고, 작품에는 제목을 제외한 어떠한 설명이나 캡션도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 작품은 무심코 지나치기 쉽상이었다.

 

나와 일행은 운이 좋게도 친절한 도슨트 님의 설명으로 의문만 남았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이 ‘상징의 민주주의’라는 작품이었다. 사진 속 건물의 윗부분은 마치 칼로 자른 듯 네모낳지만 사실 그 안에는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삼각형 구조물이 숨겨져 있다.


작가가 민주주의의 상징을 건물 안으로 숨겨 버린 데에는 시대적 맥락의 영향이 존재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표명하고 도시 발전을 이륙해 나가고 있지만,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고 결국 껍질만 그럴듯한 허상일 뿐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구조물 속에 과감히 녹아 들어 있는 것이었다.


설명을 접하고 사진을 보니 직접 현장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듯 자신이 창조하는 공간과 구조물 하나하나에도 의미와 시대적 맥락을 담아내는 작가의 과감함이 새삼 느껴졌던 것 같다. 모든 상식과 틀에서 벗어난 그의 건축물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늘 보던 직육면체의 심심한 건물이 아닌 그의 건축물들은 어쩐지 미술관에 전시되어야 할 작품처럼 느껴진다.

 

 

바티망 전시 포스터.jpg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꼽으라 하면 모두가 이견 없이 이 작품을 고를 것 같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만큼 크지 않은 전시장의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 하고 있는 ‘바티망’은 착시를 이용한 작가의 재치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었다. 이 공간에서 사진을 찍으면 이처럼 만유 인력과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장면을 건질 수 있다.


트릭의 비밀은 바닥에 설치된 건물 모양의 구조물과 절묘한 각도로 기울어진 거울에 있었다. 관람객들은 직접 신발을 벗고 전시 공간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눕고 뒹굴고 자세를 취하며 전시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 직접 체험을 통해 전시를 완성한다는 경험은 이 전시의 방점을 찍어주며 엄청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와 일행 또한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찍고 그 결과물을 확인하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생각지도 못한 트릭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보며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곧 이번 전시가 우리에게 익숙했던 공간에 약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탈바꿈한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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