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레안드로 에를리치에게 '사람'의 존재란 - 바티망: Bâtiment [전시]

글 입력 2022.08.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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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서 12월 28일까지 개최되는

레안드로 에를리치 작가의 <바티망: Bâtiment>

 

 

파리, 런던, 베를린 등 18년 동안 전 세계 대도시들을 투어하며 화제를 모은 아르헨티나 출신 예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몰입형 설치 예술 '바티망: Bâtiment'이 한국을 찾았다.

 

한-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7월 29일부터 12월 28일까지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서 모두가 열광한 예술 작품을 만나볼 기회다.

 

바티망 전시의 포스터가 공개됐을 때, 아슬아슬한 외벽에 매달려 서로를 늘어지듯 붙잡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어떤 방식으로 매달리기가 이루어지는지 궁금증 또한 증폭했다.

 

물음표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 속 관람객의 표정을 보니, 스릴 넘치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 예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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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망>을 기획한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설치뿐만 아니라, 플래쉬를 터뜨려 사진에 독창성을 담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수영장, 탈의실, 정원 등 주로 일상적인 공간을 주제로 거울이나 프로젝터 등의 장치를 활용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교실(Classroom, 2017) ▲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비행기(El Avión, 2011)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등 일상적 소재를 매개로 신선한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만의 다양한 설치∙영상∙사진 작품들이 바로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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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비행기(El Avión ,2011)

(우)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위 두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의자에 앉아서 변해가는 바깥 전경을 감상하거나, 비행기를 타고 눈 아래 펼쳐진 낮과 밤의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기억 저편에 숨어있던 여행 세포를 떠오르게 하는 듯, 서로 다르지만 맥락을 같이 하는 두 개의 영상은 풍경을 가만히 직시하게 하면서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오가게 한다.

 

일상적인 소재를 매개로 신선한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의 능력과 재치 있는 발상이 느껴지는 섹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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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ison Fond > 2015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전시된다.

 

흘러 녹아내리고 있어 위태로워 보이는 건물 하단에 주목하게 되는 작품 < Maison Fond, 2015 >는 2015년 UN에서 실시한 기후대책회의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회의를 거쳐 지구온난화를 막고자 파리기후협약을 맺고, 협약의 상징물로 UN과 레안드로 에를리치가 합작한 결과물이다.

 

신기한 점은 컴퓨터를 이용한 추가적인 그래픽 작업 없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담아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구조물을 목격한 시민들이 실제 흘러내리는 듯한 콘크리트에서 갖게 되었을 경각심이 컸을 것으로 생각됐다.

 

본 작품은 한시적으로 제작되었기에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되다가, 현재는 해체되어 철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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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채 뽑힌(Pulled by the Roots)> 2015

 

 

직역하면 '뿌리채 뽑힌'으로 해석되는 다음 작품. 낡은 상태로 들어올려지는 주택을 포착한 순간이 사진 정가운데 배치돼있다. 주택 뒤로 드리운 먹구름 때문일까, 작품에는 누군가의 슬픔이 짙게 깔린 것만 같다.

  

누군가의 짙게 깔린 슬픔, 인간의 터전을 짓밟아버리는 '재개발'의 현장. 작품은 서민들의 삶을 말 그대로 '뿌리채 뽑아버리는' 재개발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이 또한 그래픽 작업 없이, 시민들이 오가는 도로의 중심에서 사회문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명시한 작품이다.

 

소개한 두 작품처럼, 작가는 기후변화, 산업사회, 빈부격차 등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전시회를 대표하는 <바티망>을 기대하고 발걸음했지만, 사회현상을 직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정립하고자 한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색다른 작품활동에 매력을 느껴 몇 번이고 다시 눈길이 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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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Swimming Pool)> 1999

 

 

한편,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수영장, 탈의실, 정원 등 주로 일상적인 공간을 주제로 거울이나 프로젝터 등의 장치를 활용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여온 세계적인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시각적인 착시를 이용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호기심을 갖게 해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작품을 매개로 함께 웃을 수 있는 놀이공간을 구현한다.

 

안과 밖을 구분하면서도, 두 장소에 위치한 사람들이 소통하게 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보려 하는 광경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내는 것도 작품의 묘미다. 어느 누구에게나 색다른 경험이 되는 모습이다.

 

앞서 언급한 작품에서는 사회문제를 담아내 사람들의 삶을 조명했다면, <수영장(Swimming Pool)> 1999의 경우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려는 작가의 고군분투함이 보인다. 레안드로 에를리치에게 '사람'이란 작가 자신의 오랜 가치관과 예술 활동에 있어 중요한 존재인 듯했다.

 

그렇다면, 바티망에서는 사람의 '어떠한 모습'을 끌어내고자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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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망: Bâtiment'을 확실히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려

누워있는 상태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던 친구와 나

 

 

마지막 섹션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 <바티망>은 실제 건물 모양의 거대한 파사드와 거울로 구성된 작품 안으로 들어가 마치 중력에서 벗어난 듯한 창의적인 포즈를 취해야 하는 관객 참여 100퍼센트 설치예술이다.

 

사실적으로 포즈를 취하고, 상황에 맞는 표정을 얼마나 잘 짓느냐에 따라 즐거움은 배가 된다. 하지만 막상 그 공간에 들어가면, 알면서도 머쓱해지기 마련이다. 가로로 된 평면의 공간에 누워 자세를 이리저리 취해야 한다는 체험방식에 전시에 동행한 친구와 괜스레 민망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누우면 다시 몸을 일으키기 힘든 편안함과 동시에, 작품에 서서히 매료된다. 또한 사진을 찍으면서 작품을 즐기면, 실제 난간에 기대어있는 것처럼 찍히고 싶은 욕심에 포즈를 취하는 데 진심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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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망: Bâtiment'은 프랑스어로 '건물'을 뜻한다

 

 

이토록 재미있는 바티망에서 발견한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사람에 대한 가치관도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바티망을 경험해본 결과,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바티망: Bâtiment'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구축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혼자서, 또는 두세 명의 사람이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서로를 붙잡으면서 놓지 않으려는 '일종의 상황극'은 우리의 현실 같았다. 혼자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람한테서 상처받고 멀어져 혼자이고 싶은 나날도 있지만, 우리는 결국 사람이 모여있는 세상 안에서 부딪치고 위로받으며 의지하는, 모두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임을 일러주는 따듯한 작품처럼 느껴졌다.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 작품을 통해 예술적으로 써 내려간 '사람'의 서사를 온전히 마주해보면,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이 눈앞에 찾아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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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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