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해 여름 [사람]

가을을 맞이하기 전에 붙잡은 여름의 잔상
글 입력 2022.08.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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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立秋)를 이틀 앞둔 8월, 여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여전히 바이러스는 들끓었고 월동 준비하듯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내일을 기대하기 힘든 하루가 되돌아오더니 다시 한 번 계절이 바뀌었다.

 

지난여름을 회고하면 휴가 한 번 떠난 적이 없거늘, 과실을 거둔 느낌이다. 시원한 계곡을 찾는 대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대여했고 손꼽아 기다린 전시회로 향했다. 각종 영화제에서 좋은 평을 받은 영화들이 극장가를 점령했으며 개봉일에 맞춰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여름의 낙이었다. 그 모든 것을 즐기기까지 손풍기(휴대용 선풍기)라는 혁명적인 발명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사계절 중에 둘째를 맡고 있는 여름은 사실상 모두에게 주어진 방학 같다. 물론 직장인에게 방학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른이 되면 방학이 없는 일 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나 여행과 휴식만큼 기분 좋은 방학은 없을 것이다. 더위로 한층 더 무기력해지기 쉬운 여름은 활기가 필요했다.

 

에어컨이 풀가동 중인 집에 박혀있는 대신, 나는 선크림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녹음이 반짝이는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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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작년에 비해 강수량이 줄었다. 하루 이틀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세차게 쏟아지다가도 일제히 그쳐버렸다. 마른 장마였다.

 

시원한 빗줄기를 느낄 새도 없이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졌다. 출근길 다리를 스치는 우산과 무겁게 젖은 바짓단,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높은 습도까지. 모두 제쳐두고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단연 마르지 않는 빨래였다. 결국에는 내내 미루었던 제습기를 장만했다.

 

섬유 유연제를 들이부어도 세탁 후 사라지지 않는 꿉꿉함이 여름의 신호탄이었다면, 여름은 내게 그다지 좋은 계절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땀 냄새를 가득 안고 달리는 출근길과 산발적 비 소식. 기후변화 탓인지 조금 이르게 시작된 여름은 내게 관념적 여름에 지나지 않았다.

 

폭염특보가 내린 요즘엔 수조 안에 갇힌 금붕어가 된 것만 같다. 목이 꺾여버린 선풍기는 달달거리며 회전하던 것을 멈췄다. 여간해서 더위를 타지 않았는데, 밤이 되자 보란 듯이 잠자리를 설쳤다. 퇴근 후 샤워까지 마쳤는데 이토록 후텁지근한 날씨라니. 서늘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던 우리 집에도 에어컨 바람의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다. 어김없이 열대야는 찾아왔다.

 

열대야의 사전적 의미는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무더운 밤이라는 뜻이다. 막연하게 더위와 함께 찾아온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여름밤을 가리키는 줄 알았더니, 그 밤에는 정확한 수치와 기준이 있었다.

 

우선 해가 길어졌다. 이른 새벽, 밝아진 하늘에 출근시간을 착각해 깨어나곤 했다. 마찬가지로 저녁 해는 길어지고 짧았던 만남은 늦은 밤까지 유예되었다. 사람들은 귀가를 늦추게 되어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이었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원한 강바람이 부는 공원에 앉아 매미소리를 등지고 마시는 맥주 한 캔이 여름 낭만의 정수(精髓)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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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계절이 제공하는 불편함에서 온다는 소감이다.

 

불면은 최대 적이었다. 학생에게도 직장인에게도 정해진 생체 루틴을 벗어나는 일은 치명적이다. 밤새 돌아가는 에어컨 덕에 시원한 밤을 보낼 테지만, 만만찮은 전기세를 견디는 밤이 될 것이다. 예약이 꺼진 에어컨 대신 맞바람이 들이치는 창문을 열었다. 캔들 워머를 켜고 보리차를 마시며 낮에 읽다가 덮어두었던 책을 펼쳐들었다.

 

뉴스와 드라마에서 접했던 여름밤의 얼굴은 집 앞 골목에서 이부자리를 깔고 더위를 이기는 사람들이었다. 1994년 기록적인 폭염에 살기 위한 몸부림이 해프닝처럼 기록된 것이다. 90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에어컨이라는 가전기기가 상용화되지 않았던 무렵의 여름은 지금의 여름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하숙생들이 에어컨이 있는 거실로 한데 모여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디오를 들으며 잠을 청하던 장면이 그랬다. 나에게 그런 기억은 없지만 비슷한 추억은 존재한다. 어릴 적 맞벌이 부부 덕에 이웃 간 왕래 잦았던 낡은 아파트를 떠올렸다. 우리는 피부가 익을 때까지 땡볕을 이겨내며 놀이터를 점령했다. 어둑한 밤이 찾아오면 옆집으로 건너가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온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함께 보았던 영화는 지금 다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설픈 특수효과로 말도 안 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금은 시원한 영화관에서 극한의 공포를 체험하는 자극적인 영화가 넘친다지만, 그때는 선풍기 한 대 앞에 모여 함께 보았던 유치한 영화들이 꿈에 나올 것처럼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시원한 상영관에 모여 '공포'를 즐기는 것과는 달랐다. 다같이 모여 더위를 즐기는 것에 있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여름철 공포영화를 기다리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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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힐링 영화제>

 

 

공포영화가 아니어도 괜찮다. 매년 여름 열리는 야외 영화제에 참석하여 여름밤을 나기에 충분했다. 한낮의 열기가 가신 밤은 여름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역시 꼭 여름에 즐겨야만 재미가 배가 되는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들은 반드시 모기향과 눅진한 공기가 더해져 완성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야외 상영을 한 적이 있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 영화였다. 교실 의자를 끌고 나와 관객석을 만들고 엄마와 나는 부등켜 안고 영화를 감상했다.

 

작은 화면으로 보았다면 오늘의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 프로젝터로 쏘아 올린 커다란 영상은 바로 눈 앞에 재난이 닥친 것처럼 실감이 났다. 분명 찌는 듯한 날씨의 여름이었는데 두려움에 서늘했고 온기가 필요했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폭 안겨 보았던 영화는 몇 해가 지나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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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무시네마 별빛영화제>

 

 

비슷한 테마의 '별빛영화제'는 특정 주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루프탑에서 상영되는 영화제는 낭만과 즐거움을 동시에 잡을 것이다. 다만, 예매가 어렵다는 장벽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제쳐두고 도전해볼 가치가 충분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연차를 내고 북촌의 북카페에 들렀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이른 시간에 꽤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와 함께 가져온 책을 느리게 음미하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한 시간가량을 아무런 대화 없이 독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키만한 창문을 드리우는 햇빛과 느린 음악 그리고 느린 독서. 카페까지 걸으며 흘렸던 땀을 보상이라도 한듯 만연한 행복이었다.

 

다시금 깨닫는다.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계절이라고. 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여름은 마땅히 더워야만 했다. 퇴근길 붐비는 지하철에는 여전히 여분의 우산과 손풍기를 챙겨 몸을 싣고 있었다.

 

아직 여름이 한참 남은 것 같은데, 가을이 코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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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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