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이라는 도화지에 예술을 불어넣은 전시. - 바티망

글 입력 2022.08.0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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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아트 전시를 몇 번 관람한 적이 있다. 감쪽같이 나오기 위해 다양한 포즈를 궁리하면서 뇌도 자극되고, 동심으로 돌아가서 재밌게 관람했었다. 트릭아트는 재미로만 즐겼던 전시였는데, 어느 날 다르게 느껴졌다. 포즈를 취하느라 정신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한 그림이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고, 착시현상의 위대한 힘을 실감했다.

 

트릭아트는 작품을 시각과 사고 외에 몸으로도 향유하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새로운 자극과 색다른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 이런 예술을 또 경험할 수 있는 문화초대를 받고, 매우 반가웠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 참여하는 경험은 특별할 것 같아서 문화초대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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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바티망>은 관람객 참여•몰입형 설치 예술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시 생활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작품에 활용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개된 후, 18년간 전 세계 대도시들을 투어하며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어로 ‘건물’을 뜻하는 ‘바티망’은 실제 건물 모양의 거대한 파사드와 거울로 구성된 작품이다. ‘바티망’ 외에 ‘잃어버린 정원’, ‘교실’, ‘세계의 지하철’, ‘비행기’, ‘야간 비행’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설치 및 영상작품 외에 뇌, 뿌리째 뽑힌, 퍼니처리프트, 계단, 수영장 등 다양한 사진 작품들도 접할 수 있다.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이다. 그는 주로 일상적인 공간을 주제로 거울이나 프로젝터 등의 장치를 활용하여 익숙한 일상의 모습들을 색다르게 표현했다.


전시 <바티망>은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서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정확한 장소는 노들서가 2층으로, 2층에서 먼저 관람 후 1층으로 내려와 나머지 작품들을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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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하철(Global Express, 2011)

 

 

나와 일행을 맞이해준 것은 ‘세계의 지하철’이었다. 처음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어서 집중도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이 작품은 지하철 창문을 표현했는데, 창문에는 빠르게 지나가는 밖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 플레이되고 있었다. 영상에는 뉴욕, 파리, 도쿄의 각 도시 풍경이 담겨 있었다. 작품 앞에 서서 영상을 보며 포즈를 취하니 외국에 여행하러 와서 지하철을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덜컹 덜컹대는 효과음과 함께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을 보며 여행 기분을 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것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세계의 지하철’보다 더 여행 기분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있었다. 그 작품은 ‘비행기’와 ‘야간비행’이다.



(좌) 비행기(El Avión ,2011) _ (우)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jpg

(좌) 비행기(El Avión ,2011) _ (우) 야간 비행(Night Flight, 2015)

 

 

이 작품은 낮 비행과 밤 비행의 기내 창문을 표현했다. 낮 비행기의 창문에는 하늘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있었다. 밤 비행기의 창문에는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야경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비행기를 탄 것처럼 비행기가 가는 속도와 방향에 맞춰 영상에 담긴 풍경이 움직였다. 구름이 스르륵 지나가면서 파란색과 하얀색의 조화를 이룬 하늘 또는 구름만 보이는 하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밤 비행의 풍경도 진짜 하늘 위에서 보던 야경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암흑 속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예뻤다.


‘비행기’와 ‘야간비행’은 여행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서 낮과 밤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동했던 순간들이 기억났다. 그때의 설렘과 기쁨, 벅찬 감동이 느껴지면서 잠시나마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현재에서 벗어나 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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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Class Room, 2017)

 

 

‘교실’이라는 작품은 동일한 사이즈의 마주 보는 2개의 방, 책상, 의자, 칠판으로 우리가 어릴 때 다녔던 학교의 교실을 표현했다. 거울을 매개로 한 참여형 작품으로 하나의 방으로 들어가면 거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암흑 속에서 거울에 비친 나를 비롯하여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니 무섭고, 신기하기도 했다. 거울에 비친 어엿한 성인이 된 현재의 내 모습과 과거 학교 교실을 닮은 공간을 번갈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있는 듯했다.


의자에 앉아 나름대로 선생님 몰래 딴청을 피우는 연출을 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를 회상하게 됐다. 지금보다 앳되고 풋풋하고, 싱그러움이 있었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오르니 과거의 내가 부러워지는 것과 현실이 답답했던 시절이 생각나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교실 분위기를 담았다고 하는데, 정말 한국 교실의 포인트를 잘 살린 작품이었다.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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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정원(Lost Garden, 2009)

 

 

‘잃어버린 정원’ 작품은 유리창을 통해 숨어 있는 정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푸릇한 식물들을 보다가 시선을 돌리면 반대편에 보이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멀리서 힐끗 보고 일행과 함께 한 바퀴를 돌았다. (창피하게도) 뒤에 어떤 공간이 또 있는 줄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마치 존재하는 듯 인지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과 다름없었다. 만약 그 모습을 작가가 직접 봤다면 어땠을까. 풉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작품은 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거울로 보는 것과 다른 기분이었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또 다른 나를 보면서 반대편의 세상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잃어버린 정원’을 감상하는 순간만큼은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쳐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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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레안드로 에를리치 작가의 대표작인 ‘바티망’을 관람했다. 거대한 파사드와 거울을 보자마자 가슴이 웅장해졌다. 파사드 위에는 어른, 아이, 남녀 할 것 없이 다양한 포즈로 건물에 매달린 연출을 하고 있었다. 나와 일행도 여수 예술 랜드에서 건물에 매달려본 경험을 살려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거울에 비친 관람객들의 얼굴에는 ‘신. 남’이 쓰여 있었다. 모두가 ‘바티망’이라는 작품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즐겼다. 바티망 시리즈로 각 나라의 건물을 표현하기도 했다는데, 서울의 건물로 표현했다면 더욱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영상, 설치 작품 외에 여러 사진 작품도 관람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뇌’였다. 일상에서 자주 보는 에스컬레이터를 인간의 뇌로 표현한 것이 놀라웠다.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하니 정말 인간의 뇌는 에스컬레이터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층을 연결해주는 에스컬레이터, 하나라도 빠지면 다음으로 갈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뇌도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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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현실, 중력,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관람객이 참여하면서 색다르게 변하는 작품을 관람한 경험은 머리와 가슴을 말랑하게 했다.


<바티망>은 일상이라는 도화지에 현실에 대한 의문을 그리고, 우리가 색을 칠하면 예술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전시회 관람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가볍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라서 많은 사람이 관람했으면 한다.


*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에 도착해 한 카페에 들어갔다. 우연히 들른 곳이었는데, 찾아보고 간 것처럼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독특했다. 홍대나 합정의 카페 분위기와 비슷했다. 천장에 매달린 자전거, 테이블 위의 자전거 바퀴는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았다. 비건 스콘이 꽤 맛있어 보였는데, 위장병 때문에 맛볼 수 없었다. 인상 깊었던 곳이라 다시 방문하여 꼭 비건 스콘을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카페 안을 둘러보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가는 길에서 우연히 여러 공간을 발견하게 됐다. 뮤직라운지, 스페이스445, 노들 오피스가 있었다. 전시회를 진행했던 노들서가 주변에는 레스토랑이 있었고, 모두에게 열린 공간인 식물도가 있었다. 식물도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였고, 독서나 휴식 또는 개인 업무를 할 수 있었다. 곳곳에 미니정원도 있어서 비만 오지 않았다면 인증샷을 찍고 싶었다.


문화생활, 휴식, 독서, 업무, 식사까지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곳곳에 둘러볼 거리가 많았다. 전시 관람하기 전이나 후에 노들섬 복합문화공간을 천천히 둘러본다면, 좀 더 알찬 문화생활의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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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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