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my, your, OUR UNIVERSE :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

연극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
글 입력 2022.08.0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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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매일 밤 12시가 되면 파티에 참석한다.


어두운 곳에서 노래를 빵빵하게 틀고 번쩍이는 조명들 사이에 취기가 드문드문 드러나는, 그런 파티 말고. 왓챠 파티 말이다. 방금의 대화가 이다음의 대화로 밀려나 사라지고, 메시지를 보낸 시간이 뜨질 않고, 읽은 사람의 흔적도 없는 가장 아날로그스러운 디지털 채팅창에서 모두 같은 영화를 본다. 영화 동아리 부원들이 돌아가면서 호스트를 맡고, 함께 보고 싶은 영화 하나를 튼다. 단발성으로 드문드문 이루어지던 지난 연도와는 달리 매일 빠짐없이 진행 중이다.


이 파티가 나에게 일정이자 약속으로 자리 잡게 된 건 다름 아닌 <라라랜드> 때문이었다. 개봉 첫날 영화관에서 보았을 때 그다지 좋지 못한 인상을 가졌던 터라 별 기대 없었는데, 끝나고 나니 펑펑 운 사람은 나 혼자였다. 무엇이 그리도 눈물겨웠냐고 물으면 꿈과 사랑이라고 하겠다. 이 둘은 동일 단어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다. 오랫동안 공들이고, 자꾸만 부딪히고, 그래서 다치고, 완전히 끝내겠다고 다짐해놓고 결코 놓지 못하는.


여러 장면 중에서 인상 깊었던 건 스틸컷처럼 머릿속에 남았다. 영화 중반부였나. 미아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며 여성 1인극을 준비하고, 무대를 올리고, 무대 뒤에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듣는 씬. 몇 가지의 소품과 미아 한 사람만이 무대를 채우고,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은 관례처럼 박수를 쳤다. 미아의 친구들만이 열렬히 반응하던 짧은 컷도 기억난다. 실망감을 숨길 수 없던 미아의 멋쩍은 표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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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타이밍인지 <라라랜드>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1인 여성극인 <니나=빛나, 마이 유니버스>를 관극 했다. 건물 지하로 내려가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였던 작은 무대와 관람석. 첫 줄에 앉아 무대를 보니 미아 생각이 절로 났다. 니나, 빛나, 미아. 발음과 생김새가 엇비슷해서 연관성이 있다고도 느꼈고. 괜스레 응원하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미아가 느꼈던 슬픔과 허망함, 깊은 좌절감을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배우 분이 모르길 바라며.


자전적인 이야기라 했다. 그 말 그대로, 배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 속 ‘니나’의 이름을 빌렸다가 연극배우를 꿈꾸며 부업을 본업처럼 해나가는 ‘빛나’를, 그리고 끝내 자신의 석자 ‘유진희’를 꺼내었다. ‘나’의 이야기임을 내세울 땐 이런 부담감이 생기는 것 같다. 나만의 사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을까, 공감할 만한 소재일까, 이야기를 듣고자 할까. 온갖 의문과 의구심은 보편성을 지닌 인물(이 극에서는 니나)을 가져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 희곡을 읽지 않은 사람으로서 몰입이 된 건 그냥 사람인, 빛나의 이야기였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나의 하루를 내가 책임지다 보니 정작 하고 싶은 걸 할 시간은 없다. 피곤에 절어 몸을 누이고 나면 다음날. 또 똑같이 일어나 일하고, 먹고, 일하고, 쉬고, 자고, 또 다음날을 맞이한다. 하루하루 알차게 에너지 넘치게 살아가는데 속은 텅 비어만 간다.


매일을 해야 할 일로 채우며 바삐 사는 건 이래서 무섭다. 모든 본질을 흐린다. 순간에 충실히 사는 것 같아도 내면이 썩어간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샛길로, 도랑으로 자꾸 길이 샌다면 멈추어야 할 때다.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사람은 자신에게 보이는 대로 보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생각한다. 꿈은 좇기만 하지 이룰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주변의 말은 우리가 살면서 숱하게 듣는다. 어느 땐 주제 없이 떨쳐지는가 하면 또 다를 땐 그 생각에 잠식한다. 그때가 언제고 하니, 자기 안의 목소리도 외부와 똑같은 소리를 낼 때다.


끓는 물에 손이 닿으면 단숨에 뜨거움을 인지하지만, 천천히 온도를 높이면 눈치를 못 채다 어느 한순간 ‘어?’하는 지점이 생긴다. 인지를 할 때 순간적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제야 보이는 거다. 아, 여기 무너졌네. 긁혔네. 다쳤네. 짓밟혔네. 부서졌구나. 조각났다. 수동태로 이루어진 문장밖에 만들 수 없어서 그 무력함이 좌절스럽고. 세상이 나 보고 꼭 멈추라고, 그만하라고, 너는 할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염불을 외는 것 같고.


그러나.


그래, 그러나 가장 아래까지 내려가 봐야 방향이 틀린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맞는지 낱낱이 묻고 답해야 폭풍우 속 갈대가 된다. 줄기와 잎은 미친 듯이 흔들리도록 내버려 두고 뿌리는 절대 꿈쩍 않게. 주객전도가 되지 않는 삶을 위하여 조금 더 불안하고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어려운 길을 택하는 거다.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삶보다는 힘들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마음을 잃고 싶진 않기에. 이 마음을 ‘Lost Stars’만큼 잘 표현한 가사가 있으려나.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며 적는 중이다. 이렇게 영화-노래-연극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걸 보면 신기하다. 홀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사방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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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유니버스가 아워 유니버스라는 걸, 일에 관한 것이든 사람에 관한 것이든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다. 혼자가 아니니까 감추고 억누르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뜬금없이 말해도 괜찮다고. 누군가는 기꺼이 듣고자 한다고.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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