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운이란 말은 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다.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8.0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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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첫 만남, 첫 월급, 첫 작품.

 

‘처음’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나에게 ‘첫 화가’였다. 작품이라고는 스스로 접는 종이접기밖에 몰랐던 어린 ‘나’에게 고흐는 넓은 예술 세계를 알려준 최초의 화가였다. 고흐를 알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엄마가 사 준 한 권의 위인전에서였다.

  

책에서는 고흐의 일생을 중점으로 다뤘다. 그의 작품은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의 작은 삽화로 실려 있었다. 어린이 서적이었기에 고흐의 삶은 순화된 언어로 설명되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삶은 어린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슬프고도 비극적인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여운을 남겼고, 그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을 불러일으켰다.

 

강렬한 기억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그 뒤로 ‘어떤 화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습관적으로 ‘고흐’라고 답했다. 하지만 '고흐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답할 수 없었고, 고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떠올려 보니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 몇 개와 삶의 단편이 전부였다. 나는 고흐를 좋아하는 '화가'라고 말할 자격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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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화가라고 불리는 반 고흐


 

고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비운의 화가’라는 말이다. 아마 그건 내가 어렸을 때 고흐를 알게 된 경로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고흐의 예술 세계보다는 그의 죽음을 설명하는 고독과 슬픔의 사건들을 먼저 접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 고흐의 작품은 가장 비싼 작품으로 팔리니, 그의 가난했던 일생과 대조되며 '비운'이라는 말에 더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으니 고흐에게 ‘비운’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를 표현하는 다른 수식어가 필요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고흐가 자신의 동생인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을 그의 제수인 요한나가 모아 엮은 책이다. 편지 속에는 일상 속 사색이나 예술에 대한 철학, 작품에 대한 설명 등이 담겨 있었다. 고흐의 뒤늦은 유명세로 그에 관한 정보는 어디서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고흐를 진실하게 표현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고흐 자신의 머리와 마음에서 나온 언어들의 집합체이기에 모든 것을 신뢰하며 읽을 수 있었고, 책을 다 읽고 난 뒤 그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단어만 떠올랐던 그의 삶에 '의지와 희망, 사랑과 신념'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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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모든 것을 나누고 싶었던 화가


 

죽은 뒤에야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이유로 고흐에게 '비운'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고흐는 단 한 번도 예술을 돈과 명예를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흐에게 예술은 삶의 목적 그 자체였고, 돈은 예술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고흐에게 예술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고흐는 진정성 있게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에 공감하고 위로받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고흐는 자신만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예술을 했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특별한 시선을 나누고 싶은 열망은 그만의 개성적인 화풍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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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화풍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거칠고 투박한 붓 터치, 둘째 겹겹이 쌓아 올린 물감, 셋째 대상의 변형과 재구성이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캔버스에 온전히 담아, 관객들에게 소중히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고흐는 현장에서 느낀 감동과 전율을 놓치지 않으려고 빠르게 붓을 움직였고, 대상에 느껴지는 입체감과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여러 차례 덧발랐다. 누군가는 성의 없게 그렸다거나 실수를 지우기 위해 물감을 덧발랐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모든 것은 고흐의 의도로 진행된 것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관객들은 고흐의 작품을 보며 생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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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실제 대상을 그림 속에 변형하고 재구성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대상의 세부 사항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일부의 특성을 강조하여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담아내려고 했다. 이는 색채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고흐는 실제보다 색채를 다채롭게 사용함으로써 대상이 지닌 분위기나 대상에게 느낀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고흐의 작품 중 파란색 배경에 금발 여인이 앉아 있는 초상화가 있는데, 실제 공간은 흰색 벽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흐는 금발 여인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고, 별이 떠오른 밤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생각하며 뒷배경을 과감히 파란색으로 칠했다. 금발 머리와 푸른 배경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렇게 고흐는 자기 생각과 느낌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당시에는 고흐 작품을 보며 그의 의도를 이해한 사람이 없었지만, 고흐의 화풍은 시간이 지나 현대 미술의 큰 특징인 추상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로지 자기 생각과 느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픈 순수한 열망이 의도치 않게 예술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것이다.

 

 

 

비운이 아닌 '사랑'과 '열정'의 화가


 

그렇다고 고흐가 성공을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흐는 성공하고 싶었다. 아니 성공해야만 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과 동생 테오를 위해서였다. 고흐에게 유일한 후원자는 동생 테오였고, 그런 테오에게 고흐는 늘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꼈다. 자신이 동생의 앞길을 막고 짐이 될까 하는 두려움은 고흐의 병을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고흐가 성공을 이루려는 방식은 우연한 행운이나 화려한 인맥이 아니었다. 고흐는 오로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성공을 얻고자 했다. 화가로 산 9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879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작품을 남겼고, 병세가 심각한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다. 고흐는 노력과 성실의 힘을 믿었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되 테오가 전하는 칭찬에는 늘 겸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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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고흐에게 사랑하는 것을 지킬 정도의 금전적 보상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동생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고, 작품 활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면 그의 미래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고흐가 바란 것은 지금과 같은 엄청난 부와 명예가 아닌 삶을 유지할 정도의 소박한 비용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고흐에게 '비운'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진 않다. 비운이라는 말은 고흐의 생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고흐는 사소한 것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순수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삶을 살면서 작은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한 가지를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생각해보면 고흐는 전혀 불행한 사람이 아니었다.

 

또다시 '어떤 화가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고흐를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다. 이어 '고흐를 왜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고흐는 그가 사용한 색채만큼이나 다채로운 삶을 살다 간 화가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위 사진들은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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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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