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자기소개 매뉴얼

2022년 현재의 나, 잘 부탁드립니다.
글 입력 2022.07.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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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모임에 참석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즉석으로 자기소개를 하고 나면 늘 찝찝한 느낌이 남아있었다. 허겁지겁 자기를 소개한 후에 청중의 박수를 받고 나서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왜일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침 아트인사이트에서 자기소개 특집을 한다길래 이참에 자기소개 매뉴얼이라도 하나 만들어둘까 싶었다. 그러면 어디서 자기소개를 하든 간에 ‘아, 이 말을 미처 깜박하고 하지 못하고 왔구나.’ 하며 후회할 일은 줄어들 게 분명하다.


또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적어도 그런 믿음을 갖고 자기소개를 한다면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여러모로 이로운 점이 있지 않을까? 교차로에 신호등도 없이 계속해서 도로를 연결 짓는다면 어떻게 될까. 교통 체증이 생기거나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생각도 마찬가지로 이따금씩 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되어서 나중엔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그러한 경우엔 누군가 나서 일정한 질서에 따르도록 지도를 해줘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를 소개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이름부터 밝히는 게 순서다. 내 이름은 이정욱. 엄청 흔하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희귀한 이름도 아니다. 이름 세 글자에 전부 ‘ㅇ’이 들어간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마지막 ‘욱’을 발음하려면 힘들지만 모음이랑 합쳐지면 부를만하다. 누구든 평상시에 나를 ‘정욱’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보통은 ‘정욱아’라고 한다. 꽤나 단호하게 끊어지는 끝맺음이라 좋다. 괜한 여운을 남기지 않아서 한번 불리면 그걸로 끝인 줄 안다.


만약 누군가의 이름이 ‘유하’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누군가 ‘어이, 거기 유하’라고 유하를 부르면 단체로 사람들이 뒤돌아보면서 ‘유하... 뭐?’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유하이?’라고 되물어보는 생뚱맞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이름은 그럴 일이 없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아, 내 이름이 불렸구나.’ 하는 정도야 단번에 알 수 있다. 괜히 애매한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면 이름이 불리는 게 귀찮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이름은 한자 이름이기도 한데 뜻이 참 마음에 든다. 성은 오얏나무 이(李)다. 성보다 이름에 담긴 뜻이 중요하기 마련이다. 내 이름 ‘정욱’은 부모님이 지어주시길 조정 정(廷)에 아침 해 욱(旭)이라고 하여 지어주신 것이다. 조정 정(廷)은 ‘공정하다’라는 의미도 가지는데, 아침 해 욱(旭)과 합쳐지면 ‘공정한 아침’ 이런 뜻의 단어가 된다. 내 MBTI가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인 것을 떠올리면 꽤나 긍정적인 메시지를 가진, 희망을 상징하는 이름이 완성된다.


그렇지만 희망과는 상관없이 학창시절 때에는 곧잘 ‘우기부기’라거나 ‘우가우가’ 따위의 별칭으로 불리곤 했었다. 유치한 별명으로 불린다고 크게 신경을 쓰거나 좌절했던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내게 무언가 별명을 붙여주고 싶었던 것이라면, 보다 어감이 좋거나 개성이 드러나는 것으로 붙여주는 게 어땠을까 싶다. 물론 별명이라는 것은 대개 어떻게 하고 싶다고 하여서 어떻게 되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동급생들의 편의대로 붙여지곤 하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 ENFJ가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는 표현을 보고 흠칫했었다. 스스로가 정의롭다는 생각은 평소에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ENFJ의 단점을 보고 나름대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ENFJ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인 유형이 많다고. 그렇다면 결국, ENFJ는 ‘내가 하는 게 곧 정의로운 행동이고, 남이 하는 행동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습성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갑자기 MBTI를 의심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요즘에는 자기를 소개할 때 이름만큼이나 중요한 게 MBTI가 아닐까 싶다. 조금 과장 보태어 말하면 통성명 후 상대방의 MBTI 조사에 나서는 게 요즘 시대의 풍속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나름대로 ENFJ의 희귀성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엔프제’라고 속삭이듯 말해주면 그만이다. 그러면 누군가 꼭 옆에서 이렇게 참견한다. ‘오, 엔프제(ENFJ)셨어요?’ ‘저는 인프피(INFP)인데 궁합도 보니까 저랑 잘 맞는 유형이시더라고요.’ 금세 내적 친밀감이 생기고 만다.


MBTI의 좋은 점은 그동안 자기소개를 하면서 내심 피하고 싶어 왔던 주제를 다루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어요?’라거나 ‘어떤 대학교에 다니셨어요?’하고 묻는다. 기본적인 인적사항이라고 하면서도 상대방을 곤란케 할 수 있는 주제이다. MBTI는 누구에게나 공정한 앎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의 첫 만남에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 회사의 어른들은 학벌이나 사는 곳부터 묻는다.


이름이랑 MBTI까지 말하고 나면 요즘 세대 자기소개의 절반은 끝난 셈이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취향이나 관심사로 밀고 나간다. 당시의 인기 영화나, TV 프로그램, 스테디셀러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세인 듯하다. 이 콘텐츠를 모르고 있으면 제대로 대화 나누기 어려운 자리가 있을 정도이다. 나는 어떤가 하면 주류문화보다는 서브컬쳐를 선호하는 쪽이어서 참견하기 난감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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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가는 KTX에서 독서를 하고 있는 나> (한번 작품명처럼 지어봤습니다.)

 

 

서브컬쳐 중 어떤 음악 장르를 선호하는가 하면 재즈나 힙합이긴 하다. 그렇지만 훵크도 있고, 소울도 좋아한다. 누군가 만약 사이키델릭 락이나 시티팝을 듣지 않고 살아가게 강제한다면 삶의 흥미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얼마 전, 내가 이어폰에 생각보다 의존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기존에 오랫동안 사용하던 이어폰이 고장나서 새 이어폰을 주문하는 동안, 나는 시간이 굉장히 무디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음악 장르를 주로 듣느냐고 하여도 나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가 어렵다. 어떤 장르인가 보다 어떤 뮤지션을 자주 듣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나를 설명하기에 더 적합할 듯하다. 그렇다면 어떤 뮤지션의 팬인가요? 어떤 아티스트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오셨나요? 엄밀하게 따지면 비틀즈, 빌 에반스, 마이클 잭슨, 동경사변, 피쉬만즈, 프랭크 오션 정도가 아닐까. 각각의 사운드에 빠지게 된 시점이나 계기는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계속해서 듣게 된다.


라디오헤드, 언니네이발관, 시규어로스, 에픽하이, 오아시스, 칸예 웨스트, 다프트 펑크, 기리보이, 켄드릭 라마 외 여러 뮤지션들의 팬이라고 자처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10대의 어느 순간, 20대의 한 시기에만 깊게 빠져있었던 것 같다. 어느 시기를 넘어가게 되면서 잘 듣지 않았다. 정확한 원인은 알기 어렵지만, 나의 가치관을 변화시켰던 여러 중요한 사건의 다발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의 화학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취향이 될 수 있다. 똑같은 책을 읽은 뒤에 의견을 나누는 활동 비슷한 것을 대학 생활 내내 꽤 성실히 해왔다. 개인적으로는 고전문학 시리즈를 군대에서부터 독파해왔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편독에 가까웠다. 스펙트럼이 넓어지게 된 계기는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만나 토론을 하며 여러 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 요즘엔 에세이나 비문학 종류의 글을 가볍게 읽거나 경제/경영 파트가 궁금하여 관련된 서적을 탐독하고 있다.


요즘에 비문학만 읽는다고 하여도 과거에 읽어놨던 문학책들과 권수를 비교했을 땐 현저히 적다. 그런 탓인지 마음이 가거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들의 대부분은 ‘옛날 외국 작가’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나는 사실 국문학에 취약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말로 쓰인 문학을 읽으면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몰입하기가 어렵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근래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아예 한국산은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한창 소설을 읽을 때는 폴 오스터, 커트 보니것, 무라카미 하루키, 비톨트 곰브로비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프란츠 카프카 등을 즐겨 읽었다. 이렇게 작가들의 면면을 늘어놓고 보니 어째 전체적인 인상이 조금은 어둡고, 축축하고, 알쏭당쏭한 느낌이다. 내가 선호하는 작가 리스트를 남들이 본다면 나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아, 정욱 씨는 블랙유머를 즐기시는 분이군요. 우리 인생에는 알 수 없이 흘러가는 신비한 운명이 있다고 믿지 않으세요?’


신비한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기 보다는 맛있는 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는 편이다. 그만큼 애주가를 자처하면서도 최근에는 운동을 하느라 술을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무엇보다 맛있는 술은 역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요즘 물가에 만만한 게 무엇이 있겠냐 하지만 내가 애정하는 주류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자주 마시는 술의 비중은 순서대로 맥주, 하이볼, 칵테일, 소주, 와인, 사케 순인 듯하다.


이렇듯 나는 음악, 책, 술을 좋아하고 세 개를 다 같이 하거나 두 개씩 나눠서 같이 하는 것도 재밌어한다. 예컨대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거나, 책을 읽는다. 또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 동시에 술을 마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문학의 경우에는 독한 술을 마시게 되면 독해가 점차 어려워지므로 시나 소설 등의 텍스트를 주로 읽는다. 술을 마시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것도 재밌다. 잘 맞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는 말할 것도 없이 재밌다.

 

*


나는 이외에도 옷이나 전시, 영화에 관심이 많다. 내 주변 친구나 가족들, 사랑하는 이들을 소개하는 것도 어쩌면 나라는 세계를 구성하고 존재하게끔 해준다는 차원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항목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에 대해 풀어내려면 적어도 책 한 권 분량의 자기소개가 돼야 한다. 자기소개는 초면인 사람들끼리 진행하는 종류의 것이다. 1분이라는 제한시간도 오버 페이스를 방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국룰이 아닐까.


1분이라는 시간 동안 즉석에서 자기소개를 이어가는 것은 언변이 아주 뛰어나지 않은 이상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그래도 이제 이렇게 매뉴얼을 제작해놨으니 앞으로는 어디에 가서 자기를 소개하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퇴장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이정욱’이란 사람은 이런 것을 좋아하고, 이런 성격을 지닌 28세의 직장인 남성입니다. 그 이상의 교류를 원한다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내 인생 이야기를 푸는 것은 더욱 친해진 다음의 순서입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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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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