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다에 뛰어들기 전 추천하는 준비운동 - 콘텐츠 만드는 마음

글 입력 2022.07.3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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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천 개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현상에 질려 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레드오션에 풍덩 빠져드는 기이한 시대에 살고 있다. 미디어 세상이 현실의 삶만큼 중요해졌음을 코로나 이후로 더 절실하게 느낀 탓이라 생각한다. 한창 붉어진 바다에 뛰어드려는 무모한 사람 하나가 여기에도 있다. 바로 나다.


이 책의 저자 서해인은 한 달에 평균 120여 개의 콘텐츠를 보고 있다고 한다. 세 자리가 넘어가는 숫자를 보자마자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저렇구나' 감탄하면서도, 한 편으로 나의 게으른 일상을 되돌아보면 나도 엇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돋기도 했다.


같은 양의 콘텐츠를 보더라도 시간을 축내기 위해 보는 이와 애정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남겨지는 인상은 전혀 다를 것이다. 그것이 저자와 나의 차이이고, 콘텐츠 크리에이터 준비생인 내가 이 책을 하나의 콘텐츠로서 읽어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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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콘텐츠를 둘러싼 세 부류의 유형을 소개한다. 1부는 콘텐츠를 보는 사람, 2부는 만드는 사람, 그리고 3부는 일하는 사람으로 저자는 모든 유형에 속해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느 관점에서든 오랜 시간 경험했기에 우러나는 진득한 진정성을 발휘한다.


저자 서해인은 지인들의 거듭되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귀찮아 페이스북에 콘텐츠 리뷰를 카드 뉴스로 올리던 것으로 시작해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중문화 전반을 다루는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발행했다. <콘텐츠 로그>는 그가 10일 동안 접한 콘텐츠들을 나열하고, 그 중 가장 좋았던 것을 선별하고, 앞으로의 기대를 품은 것을 이야기하고, 따로 담아 놓은 도서 목록을 소개한다.


한 편의 뉴스레터를 만드는 네 가지의 카테고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저자가 독자들에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를 책에서 발췌하여 ‘건강한 냉정함’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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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콘텐츠로그 웹사이트

 

 

<콘텐츠 로그>가 보여주는 모든 콘텐츠들은 모두 발행인에 의한 주관적 선별 과정을 거친다. 10일 동안 제작되는 무수한 콘텐츠들, 그리고 그 이전에 생성되어 있는 것들까지 모두 본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그중에 나의 가까운 곳에 널려 있는 것, 손이 가는 무언가를 골라내는 데는 개인의 취향이 분명하게 발휘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뉴스레터에서는 발행인이 개중 가장 좋았던 콘텐츠에 대한 리뷰 외에는 굳이 무언가를 고른 이유를 덧붙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일과를 보여주고, 자신이 앞으로 소비할지 모르는 것들에 대한 아주 간략한 정보들만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이러한 결정에는 큐레이션이라는 부연 설명으로 인한 왜곡 없이 자신의 콘텐츠 생활을 보여주겠다는 마음과 그럴듯한 명칭 하에 누군가의 취향을 넘겨짚지 않겠다는 신념이 담겼다고 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나의 선택을 기다리는 무수한 콘텐츠 사이에서 누군가 먼저 건져 올린 덕분에 선택지를 확 좁힐 수 있고, 그중에 가장 이목을 끄는 무언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제한적 자유도를 얻게 된다. 이러한 점이 책 속에서도 저자가 소개하는 여러 콘텐츠들을 따로 정리하게 했다. 작가의 ‘건강한 냉정함’은 이와 같은 설득력으로 빛난다.


저자가 발행하는 콘텐츠의 주관적 객관성은 책의 전반에서 나타나며 그것이 작가가 삶을 대하는 태도로 느껴진다. 함부로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나쁘게 바라보지 않고, 나와 다른 생각과 위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멋대로 우월감을 표하지 않으려 한다.


산발적으로 콘텐츠를 시청한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친근함을 느꼈다가 심하게 주관적으로 살며 생각이 요동치는 내게는 앞선 태도들이 동경을 표하게 하기도 했다. 책에서 저자는 소설 <페어플레이>의 주인공 욘나의 ‘건강한 냉정함’을 갈망했다고 하는데, 나는 저자에게서 또 다른 ‘건강한 냉정함’을 마주하고 이를 갈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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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프롤로그를 담은 7페이지의 어느 문장은 정확히 나의 고민을 관통한다. 목차가 나오기도 전부터 요즘 말로 “뼈를 맞고” 얼얼했다. 어쩌면 세상에 꼭 필요한지 않은 일, 나의 삶 대부분은 그 일을 꿈꿔왔고 행하고 있기에 나 역시 오래도록 의문을 품고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하는 난제다.


콘텐츠를 비롯한 여러 문화생활을 책임지는 예술들이 그렇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이왕이면 예쁘고 멋진 것이 좋으니 보고, 듣고, 구매하는 것이지만 애써 욕심낼 필요는 없는 것들이다. 그저 그런 중요도를 가진 것들이 세상을 더 풍요롭고 아름다운 쪽으로 이끌 수 있다는 무식한 믿음을 가진 나는 여전히 그것들에 집착하고 있다.


아무도 쥐여주지 않은 사명감을 홀로 묵직이 짊어지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특히 나의 전공인 디자인을 무시하는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울분을 품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왜 우리가 하는 일들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할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하는 해결하려 할수록 무력감만 들게 하는 질문에 깔려 우울해했다.


삶의 우선순위, 관심도가 다를 수 있음을 그때도 알았겠지만 “아니 근데!” 하는 반발심으로 똘똘 뭉쳐 사방이 안 보였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 무식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다만 이제는 모두를 설득시켜야 한다는 희망찬 욕심을 버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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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내가 하는 일,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일들이 앞으로도 필수 조건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에 종종 회의를 느끼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미 넘쳐흐르는 붉은 바다에 뛰어들고자 한다. 아직 어떠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구상 중에 있지만 소비하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무식한 믿음을 조금씩 설득해 보고자 한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끝없는 망망대해에 뛰어들 사람들에게 먼저 헤엄쳐 간 이야기를 전하는 이 책 <콘텐츠 만드는 마음>을 추천한다. 내게 이 책은 불타는 의욕과 자아를 잠재우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것을 명심하게 했듯, 당신에게도 이 책은 당신에게 필요한 준비 운동을 안내할 것이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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