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름의 목적: 어거스트 버진 [영화]

글 입력 2022.07.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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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여름은 우울의 계절. 여름의 덥고, 축축하고, 끈적이고, 늘어지는 날들은 진흙처럼 질퍽질퍽 들러붙어 걸음을 지체하게 한다. 그러나 왠지 올해는 유독 잠잠하다. 골몰해야 하는 대상이 분명하기 때문인가?

 

여기, 여름의 마드리드에 머무르며 진정한 나를 고민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있다. 본디 덥고 습한 여름 밤은 영화 보기 제격이다. 겸사겸사 영화 속 주인공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성싶어 고민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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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마드리드



이야기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수도이자 문화와 예술의 도시 마드리드에서 진행된다. 8월의 무더위로 인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 가운데 혼자 남은 ‘에바’는 2주간 새로운 거처에 머무르며 평생을 살아온 도시를 마치 여행하듯 걷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스스로에 대해 사유한다.

 

숫자 8은 종교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한다. 힘과 젊음을 상징하는 계절인 여름에 발을 담근 채 성숙과 거둠의 계절인 가을을 앞두고 있는 8월. <어거스트 버진>은 ‘진정한 나’에 대해 고찰하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거나, 받아들이는 과정을 섬세히 추적해 간다.

 

또한 그 모든 과정에 대하여 적극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숨기지도 않는 태도를 고집한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삶과 관계와 애정과 결핍이 눈에 자꾸만 밟힌다.

 

따라서 정리하면, 아름다운 영상미로 스페인을 함께 거닐고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가며 긴 호흡을 나누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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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와 머무르는 자


 

‘에바’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어딘가로 이미 떠나버렸거나 혹은 어딘가로부터 떠나왔거나,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식을 받아들이며 일종의 ‘떠남’을 경험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에바’는 이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머무르는 사람’이다. 그녀는 평생 마드리드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이 사실에 대해 ‘에바’는 명확히 긍정 혹은 부정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내 지난 날의 오해들을 잠재운다. 떠나지 않으면 영영 정체된 사람으로, 용기없는 사람으로 돌처럼 굳어버릴 것만 같았던 나의 허상 같은 두려움도 지워낸다. 떠나야만 새로워질 수 있고, 그래야만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도피성 위안도 떨쳐낸다.

 

‘에바’의 친구 ‘올카’의 대사가 인상 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 기인한 것일테다.

 

 
‘그렇지만 떠나지 않는 사람들도 존경해. 익숙한 환경에서 자유를 찾는 건 대단한 용기야.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이 훨씬 자유롭잖아.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쉽고. 원래의 환경에서 그렇게 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머무른 채 자유로워지는 법이 간절히 알고 싶어졌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이곳에 머무르거나, 혹은 아주 멀고 낯선 곳으로 떠나더라도 어디서든 자유로운 사람으로 지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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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존재


 

분명 미성숙과는 또 다른 영역을 다룬다.

 

우리는 미완의 존재인 스스로를 이해하고, 퍼즐을 맞추듯 차차 ‘진정한 나’를 완성시켜가는 과정을 삶이라 부르는 듯하다. 진정한 나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바’는 왜 그것에 대해 고민한 걸까? ‘나’라는 존재는 영영 헤어질 수 없는 타인이기 때문 아닐까?

 

나를 이해하는 과정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다만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더 용이할 뿐. 따라서 미우나 고우나 평생 함께해야 하는 존재로서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작업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 필요할 것이다.

 

‘에바’처럼 우리 또한 어떤 날에는 타인의 걸음을 쫓고, 타인의 시선을 쫓아 세상을 달리 바라보기도 한다. 낯설고 익숙지 않은 공간으로 이동하기 전,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미완의 존재로서 세상을 경험하는 장면이 하나 둘 쌓이며 작은 관계들을 연결해 간다.

 

다소 수동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처럼 보이는 카메라를 따라가며 나로부터 줌 아웃 하며 삶을 관조하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실수, 지나간 관계, 움츠러들었던 과거들은 저 멀리 작은 점이 되어간다.

 

*

 

언제나 불분명 했던 내 여름의 목적. 더위와 습기에 지쳐 현재 없이 미래만 바라보던 날들.

 

이번 8월은 조금 달랐으면 한다. 아주 거창할 것도, 화려할 필요도 없이 새로운 시작과 혼란한 변화 앞에 서있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끈덕지게 쫓아 사랑해보고 싶다. 그럼으로써 굳이 이곳을 박차고 나가지 않아도 좋고, 서툴러도 좋은 그런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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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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