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MBTI, 중독된 걸까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7.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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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판단하는 사람들


 

최근 몇 년 사이 오해를 받고 있다. 나 자신을 꽤나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감성이 메마른 로봇 같다는 평가였다.


흔히 이야기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 보다 주로 MBTI를 토대로 성향을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말해주었다. 어쩜 결과지에 나타난 성향 그대로냐며. 내가 말하는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나의 MBTI를 근거로 삼았다. 분명 나를 알아가고 싶어 하는 이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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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나'를 소개하기에 앞서 MBTI 결과지를 빼놓을 수 없다. 단 4개의 알파벳으로 이 사람은 내향적인지 외향적인지, 계획적인지 즉흥적인지 금세 판가름이 났다.

 

MBTI 성향을 모르면 유행에 뒤처지는 것은 물론, 매끄러운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처음 만남에 이름 다음으로 묻는 것이 MBTI가 되었으니. 관련 저서부터 유튜브의 다양한 콘텐츠, 심지어 방송에서조차 MBTI 특집을 다루는 추세다. 나 역시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자주 접했다. 개중에는 '이건 정말 내 얘기다!' 싶었고 전혀 해당되지 않는 내용도 존재했다.


다양한 콘텐츠들은 검사 끝에 얻은 결과를 토대로 각자의 성격유형을 대표하여 열띤 토론과 함께 그들의 성향을 어필했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단지 MBTI가 같다는 이유로 한 데 묶여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반화에 반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공감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검사는 무료로 진행되며 영화와 소설 속 등장인물을 매치해 주는 MBTI 검사 등 종류도 다양했다.

 

 

 

회에서 격리 당하다


 

가장 잘 알려진 무료 성격유형검사는 약 10분여에 걸쳐 문답하는 형식이다.


 

Q. 파티나 행사에서 새로운 사람에게 먼저 자신을 소개하기보다는 주로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편이다. (동의/비동의)

 

 

나의 경우 위 문답에 '동의'했다.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새로운 사람 보다 익히 알고 지낸 관계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모임에 나가거나 단체생활을 할 때도 혼자가 편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싫어하느냐, 묻는다면 오히려 좋아했다. 사람과의 만남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으나 새로운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관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이는 에너지 방향을 결정짓는 문답일 것이다. 자신이 내향형 인간임을 인지하고 있다면 문답에 동의할 테고, 흔히 이야기하는 '답정너'식 검사였다.


 

Q. 감정보다는 이성을 따르는 편이다. (동의/비동의)

 


다른 문답도 마찬가지였다. '감정보다 이성을 따르는 편'이라고 무 자르듯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판단 및 대처는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감정을 끌어오지 않는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나 문화생활을 할 때에는 누구보다 감정에 따르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 두 가지 선택지를 두기에는 변화무쌍하지 않았다.


나의 MBTI는 '논리 술사'로 불리는 'INTP'이다. 벌써 수차례 검사를 해왔는데 검사 종류에 상관없이 한 가지 성향으로 귀결되었다. 논리적인 사색가로 불리는 이 유형은 다소 독특했다. 그 독특함 마저 사랑해버리는 유형이었다. 나와 같은 유형을 다룬 콘텐츠들은 하나같이 무심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사람들로 단정 짓더라.


"MBTI가 어떻게 되세요?" 명함 건네듯 물어오는 질문에 "INTP입니다"라고 답하면 상대방은 별다른 대화 없이 나를 파악하기 시작하였다.


창의력이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없으시군요.


나는 별안간 사회에서 격리된 사람처럼 수긍해야만 했다. 

 

16개의 성격유형으로 나뉘는 MBTI 검사지는 외향형(E), 내향형(I), 감각형(S), 직관형(N), 사고형(T), 감정형(F), 판단형(J), 인식형(P)의 선호 지표로 해석이 가능하다. 사회성이 없다는 평가는 주로 판단 기능에 속하는 F(감정형) 보다 T(사고형)의 비율이 높은 유형에게 내려졌다. 이들은 객관성과 합리성에 초점을 맞춰 논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다.


나 역시 논리에 근거하여 대화하는 것을 선호했다. 다만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 결과에 국한되어 감정이 결여된 사람으로 판단 지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사람 관계에 중점을 두기 보다 사실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것일까? 감히 T 성향을 대표하여 'No'라고 말하고 싶다.


MBTI가 처음 발병하여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 시점을 떠올리면 유사과학을 지양하는 이들이 다수였다.(나 역시 그중 하나였고) 근래에는 과학적이라며 신봉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MBTI, 중독된 걸까요


 

최근 미국 CNN 등 외신에서 다루기를 '대한민국 MZ 세대는 연애 상대를 찾는 것조차 MBT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라며 MBTI 과몰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특히 유형별 가상 소개팅이 가능한 선택형 스토리 게임 '스플(Storyplay 줄임말)'이 등장하게 되면서 MBTI 열풍에 가세한 것이다.


채팅 형식으로 진행되는 게임은 16개의 유형과 가상 소개팅을 진행하여 호감도를 얻는 방식으로 서로의 궁합을 알아간다. 시간은 1시간 남짓 소요되었다. 장장 16번의 길었던 만남이 끝이 나면 나와 잘 맞는 유형, 잘 맞지 않은 유형이 랭크된다. 이에 몰입하면 '이 유형과는 절대 만나선 안 되겠구나' 맹신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소개팅 상대의 MBTI를 알고 시작하기에 상대의 성향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라는 섣부른 판단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걱정이 되는 것은 스스로가 나 답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만약 상대의 MBTI를 모른 채 소개팅 종료와 함께 알려주는 방식이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한 술 더 떠서 회사는 기업과 맞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특정 MBTI의 채용을 내세웠다. 이는 특정 MBTI 유형을 꺼려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나의 유형이 그랬다. 내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할 것 같으니 단지 짐작만으로 채용에서 배제되었다. 물론 면접은 면접관의 선호도가 기여하는 바가 컸다. 하지만 능력과 상관 없이 지원 할 기회조차 박탈 당해야 한다니.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서



사실 MBTI 유형만큼 간단명료한 소개서가 없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전에 특정인의 성향은 물론이고 생각과 행동이 예측 가능했다. 다양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불편해하는 나는 내향적인 성향이라는 이유로 이해되었고, 사회성이 부족하여 스몰토크를 꺼려 한다는 주석이 달렸다. 이는 사회생활에 지친 내게 핑계 대기에 좋은 술수가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성격유형을 근거로 삼지 않았다면 이해시키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단지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재고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에너지는 내적으로 방출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 시간을 보낸 뒤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유롭게 책을 읽고 혼자 영화관에 가거나 여가활동으로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다. 내게는 재충전이 맞을 것 같다.


여전히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고 멋진 장소로 떠나고 싶어졌다. 함께 하면 즐겁고 행복한 마음뿐이었다. 내게 휴식은 배터리 충전과도 같았고 충전이 완료되면 방출하고 싶었다. 꼬집어 생각할수록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다는 건 MBTI를 핑계로 방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4.5(외향):5.5(내향) 비율의 간소한 차로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프 막대기는 내향성을 가리켰으나 나머지 4.5가 차지하는 외향성을 없던 일로 만들 순 없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선입견 제쳐두고 오가는 대화에서 찾을 수 있었고 그저 마음 가는대로 보여준 행동에서 알 수 있었다. 무 자르듯 단정 지어 과몰입하기에 앞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몰입합니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이토록 MBTI에 몰입하는 것을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함으로 이야기했다. 팬데믹이 도래한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는 불안정했고 생존 역시 불투명해졌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체감을 느끼며 안정을 찾고 싶을 테고, 이는 MBTI를 맹신하는 이유가 되었다.


약 3년 전만 해도 나는 F의 비율이 높은 MBTI 유형을 선고받았다. 퇴사 등 일신상의 이유로 지금의 유형으로 바뀌게 되었지만, 그 말인즉슨 결과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을 의미했다. 나는 끊임없이 변화했고 변화한 모습 역시 '나' 였다.


MBTI 열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꾸준히 소비하고 판단의 지표로 삼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나 자신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동시에 외면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결과지에 휩쓸려 소중한 인연을 놓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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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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