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이 시국 교환학생 일기 11

글 입력 2022.07.2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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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 오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돌아온 지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순조로웠다고는 말 못 하지만 그래도 별일 없이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방심했던 것 같다. 한달 반 동안의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고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데서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리 북역에서 샤를 드골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눈앞에 두고 일이 터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날은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별것도 아닌 물건을 잃어버린 줄 알고 친구에게 내가 그거 어디 뒀는지 기억하냐고 물어보지를 않나,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한 정거장 뒤에 바로 내리지를 않나. 이제 다 끝나고 집에 간다는 생각에 들떴던 걸까? 떠올리기도 싫지만, 그 사건이 있었던 때로 돌아가 보자면 이렇다. 일단 친구와 나는 한 달 반이라는 여행 동안 짐이 잔뜩 늘어나 원래 기내용 캐리어 하나와 배낭 하나만 매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26인치 캐리어가 하나 더 생기고 커다란 에코백까지 매고 있었다.

 

숙소 위치가 약간 애매해서 무조건 한 번은 갈아타야 했는데 구글이 추천해 준 방법은 지하철을 탔다가 다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에서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는 방법이었다. 친구는 굳이 그렇게 가지 않고 파리 북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면 바로 거기서 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고 말했다. 파리의 미친듯한 폭염과 여행객들에게 가혹한 계단들에, 그냥 실내로만 빨리 갈 수만 있다면 뭐든 다 괜찮았던 나는 그러자고 했다.


파리 북역에 도착한 우리는 비행기 마크가 있는 쪽이 공항으로 가는 곳이겠구나 싶어 짐을 끌고 그쪽으로 갔다. 그런데 그 옆에도 똑같이 비행기 마크가 있어서 친구에게 진짜 여기 맞아?라고 물어보고 그래도 확신이 들지 않아 휴대폰으로 확인을 해보려고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휴대폰이 있었다. 친구가 확신을 하며 가자길래 다시 짐을 끌고 출발하기 전에 지하철역에서 산 기차표를 넣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리고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지금 몇 시지? 하고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없다. 휴대폰이 없어졌다.

 

분명히 몇 분 전만 해도 주머니에 있었던 휴대폰이 사라지다니. 이제 이 기차만 타면 공항에 가고, 짐을 부치고, 진짜 우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처음에는 아니겠지 설마 하며 미친 사람처럼 가방, 에코백, 쇼핑백을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손이 벌벌 떨렸다. 솔직하게 말하면 휴대폰 자체는 사라져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스페인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사진을 백업한 적이 없다. 내 6개월이 통째로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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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3주 전에 파리 여행을 했던 언니에게 다시 받은 애증의 사진.

 

 

우리가 파리 북역 플랫폼에 들어왔던 시간은 오후 4시 반. 비행기 시간은 오후 7시 50분이었다. 그래도 친구는 위에 경찰서가 있는 걸 봤다며 가보라고 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는 줄이 끝이 안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민폐지만 그때는 눈에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옆 사람에게 진짜 미안한데 너무 급한 일이 있다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그렇게 다시 역사로 올라와 내가 지나왔던 길들을 다시 보는데 비참할 만큼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내 도우미처럼 보이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파리 북역 관계자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발견해서 경찰서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경찰서도 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밖에 서 있는 걸 본 경찰이 안에서 문을 열어줘야 내가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아니, 밀고 들어가서도 앞에서 경찰이랑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였다.


너무 당황했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와중에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다 보니 도난당했다고 말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잃어버렸다고 말한 모양이다. 경찰이 듣더니 지금 경찰서에 일하는 사람 수 보여? 나랑 저 경찰관 두 명이야. 근데 잃어버린 네 휴대폰 하나 찾으러 경찰서를 비울 수는 없어. 역에 있는 에이전트한테 말하면 도와줄 거야. 라고 말했다. 에이전트들이 어디 있는데? 물어보니 역 어디든 있으니까 니가 돌아다니면서 찾아봐. 하고 나를 돌려보냈다.


쌍욕을 하면서 또 뛰어서 내려가보니 안내데스크가 있었다. 안내데스크 직원에게는 어떻게 똑바로 설명했는지, 직원이 니 폰을 누가 훔쳐 갔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나를 다시 그 경찰서로 데려갔다. 가는 길 내내 경찰이 자기들은 도움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나를 돌려보냈다고 하소연을 했는데, 그 직원이 다시 경찰에게 잘 말해줘서 경찰서 안에서 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찰은 나에게 니가 아까 나한테 설명했을 때는 잃어버렸다고 했잖아. 잃어버린 거랑 도난당한 거랑은 다르다며 한참 뭐라 했다.


나는 그 경찰이 아닌 옆에 있던 다른 경찰에게 인계됐고, 그 경찰은 나에게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휴대폰의 시리얼 넘버를 아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도대체 누가 자기의 휴대폰 시리얼 넘버를 외우고 다닐까. 모른다고 하니 그걸 알아야 폴리스 리포트를 쓰고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데, 모르면 아무것도 시작을 못한다고 말했다. 만약에 안다면 폴리스 리포트를 작성하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한 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그때 경찰의 손목시계로 시간을 보니 이미 5시 10분이었다. 여기서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작성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니 경찰이 비행기 시간이 언제냐, 다시 프랑스에 안 돌아올거냐, 프랑스에 사는 친구 없냐, 한국에 돌아가면 그쪽 경찰서에 가서 영어로 리포트를 써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영어로 쓴 리포트를 프랑스 경찰서에 보낼 수 있으면 보내라며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같긴 했다. 별 소득 없이 플랫폼으로 내려가며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왜 나는 이때까지 휴대폰만 의지하고 백업 해놓지 않았을까, 왜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어놨을까 온갖 자책을 했다.


친구의 휴대폰을 빌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그전에 엄마랑 나눴던 카톡은 공항에 도착하면연락할게 였다. 공항에 도착했을 시간쯤 전화를 걸었으니, 엄마는 당연히 공항에 잘 도착했겠거니 싶었을 것이다. 우물쭈물하며 휴대폰을 소매치기 당했다고 말하니 엄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나를 책망하는 그 톤으로 나를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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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누워만 있다 나와서 산책하면서 봤던 하늘.

 

 

비행기를 타고서도 계속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계속 눈물이 났다. 친구네 가족 차를 얻어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친구가 빌려준 휴대폰으로 엄마와 연락을 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부산역으로 갔을 때 엄마가 마중 나와있었다.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집에 와서도 거의 일주일 내내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었다. 난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이제 현실로 돌아오라고 등 떠밀린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교환학생을 가기 전 사진들은 예전 폰에 있어 복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난 내 사진을 찍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아서 파리 빼고는 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주기는 했지만 찍어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았고 셀카도 몇 장 남기지 않았다. 그냥 내가 본 것들을 더 많이 담아두고 싶어 건물, 풍경, 그림만 주야장천 찍어댔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그런 사진들은 다 나오는데 니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뭐라 했다. 생각해 보면 사진을 다 날렸어도 내 기억 속에는 있고 인스타그램에도 꽤 올렸고 내가 담긴 사진을 날린 게 아니니까. 파리 경찰서, 분실물 센터에 밑져야 본전으로 글도 올려봤지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 소식이 없다. 하나 배웠다고 생각해야지.


지난 에세이에서는 런던 여행을 얘기하겠다더니 갑자기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에서 일어났던 일을 줄줄이 썼다는 게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유럽 여행 예정인 사람들에게 이 정보가 제일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이야기는 그냥 건너뛰려고 한다. 어차피 그런 얘기들은 충분히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여행 제한이 풀리고 있는 요즘, 유럽 여행을 많이 계획하고 있을 텐데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경계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의 이 시국 교환학생 일기는 여기서 이만 마무리하고자 한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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