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좀비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 [만화]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글 입력 2022.07.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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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좀비 물에 관한 글을 남겼다. ‘좀비’라는 감염병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나 편리해서 불편하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마치며, 좀비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작품을 하나 추천하고 싶었는데 지면상 그러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이번 글을 통해 해당 작품을 추천한다. ‘미역의효능’ 작가가 연재 중인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라는 웹툰이다.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의 신선한 포인트



"그냥 맘 편히 가지세요. 병 걸린 거잖아요."

 

이 만화는 분명히 좀비 물이지만, (작가가 만화 초반에 직접 언급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좀비 물이라고.) 인물들은 ‘좀비’와 ‘인간’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감염인’과 ‘비 감염인’으로 구분되는 것에 더 가깝다. 감염’인’이므로, 결국 좀비도 인간의 범위에 들어온다. 감염인들은 눈을 뒤집거나 관절을 꺾어 ‘기괴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감염 여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타자화하기 어렵다.

 

이들의 증상은 단순하다. 인육이 먹고 싶어진다는 것. 이 인육 선호는 단지 맛에 대한 것으로, 인간의 피부를 직접 이로 물어 갈기갈기 찢고 싶다는 폭력적인 충동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이들은 인육을 평범하게 시장에서 사서, 집에서 요리해서 먹고 싶어 한다. 스스로 그것이 병증임을 알고 있으며, 눈앞의 비 감염인을 해치고 싶다는 욕구도 이성으로 이겨낼 수 있다. 때문에 ‘물린다’는 행위는 생존의 ‘끝’이 아닌 생존 중간에 위치한 갈등이 된다.

 

‘물리기 전의 삶’과 ‘물린 후의 삶’이 있을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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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설정으로 다이나믹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싶지만, 인류는 좀비 바이러스 없이도 항상 다이나믹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좀비를 맞이한 인간의 절망과 생존 본능보다는, ‘좀비 바이러스’라는 사건의 씨앗을 각각의 인물들이 어떻게 꽃피우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감염인도, 비 감염인도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새롭지만 또 익숙하기도 한 형태의 사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약체 어벤져스와 일하는 경찰

 

재난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닥쳐온다고 한다. 약자일수록 재난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대한민국에 떨어진 장애가 있는 노인, 여성, 어린이, 소동물이 안전하게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사회적 약자인 이들이 재난 상황에서 함께 식구를 이루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이 연대로 인해 대단히 강해져서 외부의 위협을 다 튕겨낼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로를 지켜주려는 의지를 가지고 함께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며 정서적인 버팀목이 되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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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이들 스스로가 강함을 어떻게든 증명해 살아남아야 하는 방식이 아닌, 공권력이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개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는 사회는 언뜻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기 때문이다. 살아남을 힘이 없어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가 있는 재난 물을 본 적이 있는가.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에서는 그런 사회를 볼 수 있다.

 

 

생존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살아가는 이야기다. 처절하게,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재난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야기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편리한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심지어 살아남는 것조차 삶의 일부이기에, 살아남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다 붕괴되지 않은 법과 도덕을 어떻게든 지키려 애쓰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며,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야 할지를 어른들이 고민하는 것. 결국 이것은 피가 터지는 액션을 보다 눈을 돌리면 되는 판타지가 아닌, 철저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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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이 만화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에 추천하는 것처럼 적어뒀지만, 사실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그냥 만화로서 재미있다. 담백한 대사와 적절한 작가의 개입, 웹툰에서 흔하게 사용하지 않는, 미역의효능 작가의 특징적인 드로잉 등,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는 보고 싶지만 피는 보고 싶지 않을 때, 또는 좀비 세계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 빨리 안 아프게 물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어쨌든 시간이 있을 때 한 번 이 만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좀비 세상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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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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