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산책가의 노래, 이고은 에세이

산책의 의미
글 입력 2022.06.2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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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의미


 

걷는 것

시간을 보내는 것

생각하는 것

주변을 감상하는 것

숨을 돌리는 것

 

산책은 내게 이렇다. 이외에도 하릴없이 공원을 걷는 것. 공원이 아니더라도 걷는 길이라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새로운 곳을 보는 것. 마실 가고 싶다며 습관적으로 창밖을 훔쳐보는 나에게 산책은 잠시 시간을 멈추는 것과 같다.

 

모두의 공통 시간은 흘러가지만, 나의 시간은 멈춘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잠시 나의 것을 멈추고 내 주변의 것을 눈으로 담아 내 사람들을 챙기던가 평소에 놓친 것들을 올바르게 바라본다. 어떨 땐 일상을 재정비하기 위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문득 떠오른 키워드나 영감을 기록하고 구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최근 산책을 떠올려본다. 업무로 꽉 막힌 생각을 환기하기 위해 서울숲 공원을 거닐었다.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일상을 마주하는 나의 마음이 더 유연해졌다. 그래서 나는 산책의 의미를 사유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발견한 <산책가의 노래>에 호기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작가의 에세이라 하니 산책이 다른 이에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작가의 산책을 표면적으로 적자면 다음과 같다. 작가는 연이어 겪은 슬픔을 산책의 경험으로 다듬었고 이를 수채화와 토막글로 승화해 산책을 사용했다. 상실을 겪은 여름 이후로 세 번째 여름에 다다르기까지, 산책을 통해 보이기 시작한 주변을 글과 그림으로, 그리고 책으로 탄생시켰다.

 

작가에게 산책은 책에 담긴 모든 내용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제 시간을 무던히 보내는 자연을 본다. 그리고 본인의 슬픔을 떠나보내며 대신 채워 넣은 산책은 우리도 흔히 접하는 것과 같지만 작가의 산책은 더 느리고 세세하다. 각자의 산책을 공유하며 산책의 의미와 쓰임은 날이 잔뜩 선 우리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산책이 포착한 발견은 우리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꽃향기에 취한

새 한마리가

가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고

멍하니

봄을

바라보고 있다.


<산책가의 노래> 중 30쪽, 새

 

 

 

풀어진 경계


 

작가는 산책 속 발견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추상적인 그림이라 처음 보고 이게 무엇인가? 생각하다 한참을 보다 그림 옆의 시 한 편을 읽으며 이해한다. 그림은 물을 잔뜩 머금은 붓질로 그린 수채화다. 내가 그렸던 물먹음은 종이가 일어난 그런 수채화였는데, 그런 그림과 달리 작가가 그린 수분감은 섬세하고 녹진한 차분함이 느껴진다.

 

작가의 그림에는 선이 없이 색과 면으로 존재한다. 산책에서 만난 자연을 기교 없이 편안한 색감으로 풀었다. 그림의 소재로 삼은 주제도 마찬가지다. 길다가 만난 이름 모를 들꽃과 수국 사이에 숨은 작은 개구리, 수면위로 비친 자연물, 흩날리는 꽃잎 등. 사진으로 담기 어려운 자연 속의 작은 순간을 포착했다 기억 속에 남은 잔상처럼 그림으로 희미하게 책에 실렸다.

 

 

산책가의 노래_앞표지.jpg

 

 

이 순간을 그리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름다운 것을 그리고 싶다.

 

<산책가의 노래> 중 56쪽

 

 

닿을듯 어른거리던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다시 산산이 흩어진다.

담아 놓고 싶다.

 

<산책가의 노래> 중 108쪽

 

 
 
발견의 쓰임

 

수많은 산책과 계절이 함께 흐른다. 우리는 에세이를 읽으며 색과 소재를 통해 사계절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에 쌓인 작가의 감정도 덜어지고 흘려보내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글도 그림처럼 마찬가지로 편안함을 느낀다.

 

<산책가의 노래>에는 작가가 산책하는 방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내가 산책하며 보지 못했던 것들을 조곤조곤 옆에서 말해주며 이처럼 포착한 발견을 놓치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그 발견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흘러가는 시간을 인지시킨다. 그렇게 지나가는 계절 속에서 시간을 견뎌낸 자신에게 놀라며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본다.


 

바스락 소리에 아래를 보니 마른 낙엽이 바스러져 있다.

무심한 척 발을 옮겼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곳곳에 떨어진 낙엽을 밟지 않도록 조심스레 걷는다.

그러고보니 나뭇가지마다 노랗게 바랜 잎이 부쩍 늘었다.

혹시나 하여 휴대폰을 꺼내 날짜를 보았다.

아, 역시 그랬구나. 어느덧 가을이 되었구나.

 

<산책가의 노래> 중 139쪽, 어느덧

 

 

작가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주를 가졌다. 작가가 보는 목련과 라일락, 수국, 그리고 방아깨비 같은 풀벌레도 있고 어떨 때는 낚싯배도 보이는 곳에서 추억을 회상하며 앞으로 시간을 보낸다. 작가는 우리가 쉽게 스쳐 가는 순간을 발견하여 섬세히 풀어낸다. 작지만 확실한 발견을 통해 생동감을 느껴보자.


 

다시, 봄이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겨우내 애타게 봅을 기다렸다.

그리고 봄이 되어 꽃이 피어났다.

다시 돌아온 이 봄에도 이렇게 나는 살아 있다.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고

설레지도 들뜨지도 않고

봄이 오면 묵묵히 피어나는

저 나뭇가지의 꽃처럼

가만히 이 자리에서

다만 살아가고 있다.

 

<산책가의 노래> 중 185쪽

 

 

 

전문필진_이서은.jpg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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