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 영화가 부끄러우니 부디 모르는척해 주세요. [영화]

단편영화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를 보고.
글 입력 2022.06.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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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배우 기환은 노란색 바탕의 체크무늬 쇼핑백을 들고 다니며 자신이 출연한 독립영화 DVD를 받으러 독립영화감독들을 다닌다. 하지만 감독들은 하나같이 DVD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모두들 과거에 영화를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다.

 

 

영화를 하게 되면 변할 수 밖에 없는 걸까.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기환이 만나는 감독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의 차이였다. 영화를 위해서만 살 것 같았던 한 선배는 현재 치약을 판매하기 위해 약간의 광기 넘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삼형제처럼 똘똘 뭉쳐 영화를 만들던 세쌍둥이 필름의 세 사람은 결국 시간이 지나 흩어졌다.

 

순지는 다른 감독들에 비해서 분량이 많다. 그녀는 아날로그를 추구하며 디지털 작업은 싫어한다. 그녀의 과거 영화 만드는 모습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 기환과 함께 영화를 찍을 때 그녀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확성기에 대고 윽박을 지르는 호랑이 감독이었다. 현재는 일본어 억양을 따라 하는 듯하고 전과는 다른 과장된 밝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밝음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다. 지금 그녀의 모습은 본모습을 숨기고 싶은 방어기제에서 나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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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하나로 나 판단하지 마."

 

순지가 한 이 대사는 웃음이 나오면서도 공감이 됐다. 걸작이 될 줄 알았는데 망작이라니. 여러 가지 작업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를 짤 때만 해도 정말 좋은 게 나올 것 같았는데 실현시키려다가 보면 좌절감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서 단번에 "아" 하고 탄성이 나왔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말을 안 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이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독립영화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 것일까?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는 많이 공감이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영화감독은 왜 결과물을 보여주기가 어려운 걸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여러 사람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혼자 하는 개인 작업보다도 잘 해내서 여러 사람에게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예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완성도에 대한 부끄러움뿐이겠지만 이 작품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고 헌신해 준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배로 힘들 것이다.

 

 

나는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영화 마지막에는 특별 영상으로 봉준호 감독 작품의 지브이로 보이는 곳이 나온다. 봉준호 감독이 하는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게 맞다, 밀어 붙여라."라는 말을 듣는 기환은 어딘지 사뭇 비장해 보인다. 밀어붙이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맞는 걸까.

 

영화를 함께 만들며 함께 20대를 보낸 다른 감독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는데 기환은 꿋꿋이 버틴다. 영화 내내 기환의 복장 또한 한결같다. 기환은 DVD들이 담긴 쇼핑백을 지하철역에 두고 와서 헐레벌떡 쇼핑백을 찾으러 지하철역 플랫폼에 갔는데 쇼핑백은 그대로 있고 그 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담겨있다. 나의 소중한 열정과 시간이 담겨있는 DVD가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쓰레기와 같이 느껴진다는 것. 그 비참함이 잘 묘사돼서 그 장면에선 마음이 조금 먹먹해졌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감독들도 과거와는 변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좌절감도 큰 것일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고 주인공 기환을 연기한 구교환 감독도 독립영화 영역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고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하는, 또 넓은 범위에서는 창작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면서 느낄 수 있는 좌절감과 수치심을 당신만 느끼는 것은 아니니 부디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이건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다. 창작자들의 용기에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김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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