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기 시작한 고양이를 평생 그린 남자 - 루이스 웨인展 [전시]

고양이의 의미
글 입력 2022.06.1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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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웨인은 고양이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초창기부터 고양이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가장이 된 루이스 웨인은 다섯 명의 여동생과 어머니를 부양해야 했고, 미술 교사 월급만으로는 그들을 책임질 수 없었다.

 

루이스는 양손을 사용하여 빠르고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인정받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정규 삽화가로 발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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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게재한 그의 동물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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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구석에 희미하게 있는 그의 사인.

 

 

그는 전문 삽화가로서 전국 박람회를 돌며 삽화를 그리다가 어린 동생들의 가정교사 에밀리와 사랑에 빠진다.

 

이미 한참 기울어진 가세였으나 귀족이었던 루이스와 에밀리의 사랑은 시대 통념상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에밀리는 루이스보다 10살이나 많았기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둘의 결혼을 모두 반대했다. 가족의 반대도 무릅쓰고 에밀리와 결혼한 루이스는 둘만의 신혼집을 마련해 분가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에밀리는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두 사람은 힘든 투병 생활을 시작한다. 비 내리는 어느 날 루이스와 에밀리는 산책을 하다가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 당시 고양이는 단지 쥐를 쫓는 존재에 불과했는데 부부는 고양이에게 피터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기꺼이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피터로 인해 다시 밝게 웃기 시작한 에밀리를 본 루이스는 그녀를 위해 다양한 자세의 피터를 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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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와 에밀리의 반려묘 피터

 


루이스가 그린 피터의 그림에서 가능성을 본 에밀리는 편집자들에게 그 그림을 보여줄 것을 제안한다. 아내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러 편집자들에게 고양이 그림을 보여준 루이스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사장에게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실을 두 장 분량의 고양이 그림을 의뢰 받는다.

 

루이스는 장장 11일 동안 150여 마리의 고양이를 그렸고, '새끼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라는 작품으로 하룻밤 만에 고양이 스타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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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작품 속 150마리의 고양이들은 각자 다른 표정과 행동을 하고 있다.

 

 

루이스는 그림 한 점으로 명성과 성공을 쟁취했으나, 그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며칠 뒤 에밀리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슬픔에 잠겨 아내와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피터를 모티브로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린다.

 

풍부한 표정과 다양한 행동으로 그려지던 고양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사람처럼 바뀐다. 고양이들은 소다병으로 장난을 치고, 두 앞발로 손잡이를 잡으며 썰매를 탄다. 이러한 그림들은 루이스 웨인이 그린 고양이 의인화의 시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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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서서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 고양이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들은 감정과 표정을 감추고 점잖은 척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그린 고양이들은 고상한 신사처럼 차려 입고만 있을 뿐, 감정과 행동을 숨기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고양이가 사람보다 더 사람같이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풍자로 루이스의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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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익살스럽게 표현된 고양이들

 

 

이후 고양이 그림만 기고하던 루이스는 영국 왕립 예술가 협회의 회원으로도 등록된다. 1891년에는 ‘국제 고양이 클럽’의 회장으로 추대된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사이가 틀어졌던 가족과도 화해하고 같이 살게 된다.

 

그는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고 나날이 유명해졌지만, 나날이 부채만 쌓였다. 그림 그리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던 루이스가 출판사와 작화료, 저작권 협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린 고양이 그림은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기에 그의 그림이 그려진 다양한 상품들이 수십 만장 팔렸지만 루이스는 단 한 푼도 벌지 못한다. 반려묘 피터까지 세상을 떠나고, 평소 정신병 증세를 보이던 여동생은 증세가 심각해져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고난은 계속 됐으나, 루이스는 여전히 가장이었다. 그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계속 그림을 그리지만 결국 가계 부채 소송에서 패소하고 만다. 루이스는 이 빚을 갚기 위해 ‘뉴욕 아메리칸’에서 들어온 제안을 받아 미국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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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 1,100여 점의 고양이 엽서를 제작했다.

 

 

루이스는 미국에서 홀로 지내며 신문사에 만화를 게재하다가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미국에서 번 돈으로 여러 사업에 투자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설상가상으로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던 첫째 누이동생까지 독감까지 사망하자 루이스의 정신 상태는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평소 별난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은 그의 병세를 초기에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그는 손쓸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어서야 정신이상 판정을 받고 정신 병동에 입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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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장모 고양이는 루이스의 후기 작품의 특징이다.

 

 

역설적이게도 루이스는 정신병원에 갇히고 나서야 평생토록 그를 억눌렀던 가장으로서의 압박과 빚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소 새로운 것을 만들기 좋아하던 그의 성정은 벽지 무늬, 만화경 패턴 연구로 이어졌다.

 

그가 그로테스크하게 분해하여 그린 고양이 그림은 조현병으로 인한 것이라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그는 직물 디자이너였던 그의 어머니와 태피스트리(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를 추억하며 양손으로 동시에 대칭적인 패턴을 그려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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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 고양이

 

 

그가 정신병원 극빈자 병동에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며,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도움으로 루이스는 왕립 베들렘 병원으로 전원하게 된다. 이후 그곳의 이사 문제로 루이스는 말년에 냅스베리 병원으로 이동하여 여생을 보낸다. 냅스베리 병원은 루이스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다.

 

루이스는 그곳의 넓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고양이와 함께 지내며 병원의 정원이 담긴 풍경화와 고양이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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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년에 그린 그림은 모두 따뜻한 색감에 몽글몽글한 분위기이다.

 

특히 병원을 대상으로 그린 그림들은 평생 그가 보여준 것들보다 훨씬 섬세한 붓터치 돋보이는데, 실제로 작품을 마주하면 물감으로 그림 그림이 아니고 자수로 보일 정도이다. 마감 시간이나 상업적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베들렘 병원에서 그린 그림이야말로 그가 그동안 정말로 그리고 싶어했던 그림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기 시작한 고양이를 평생 그린 남자, 고양이를 그리는 동안 에밀리와 피터가 떠오르지는 않았을까? 떠난 소중한 이들을 상기시키는 존재를 죽을 때까지 그려온 그의 심정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의 전기 영화를 보고 전시를 감상해서일까 나는 고양이들이 마냥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색감으로 둘러싸인, 어딜 봐도 고양이 그림 투성이인 전시장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고양이는 잠시나마 루이스를 행복하게 해주었지만, 고양이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유명세를 안겨주었다. 에밀리는 루이스에게 고양이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라고 했으나, 세상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곳이었다.

 

루이스에게 고양이는 진정으로 어떤 의미였을까? 포근한 그의 말년 작품은 나를 더 슬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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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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