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따로 또 같이 세상을 살아보자고 '컴온 컴온'

글 입력 2022.06.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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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영화는 화려한 시각적 자극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볼거리가 풍성한 영화라 하면 쏟아지는 색채와 반짝이는 빛, 환한 미소와 펑펑 터지는 폭죽 같은 사건들을 기대한다.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군무나 군무에 준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화려한 화면이 넘쳐나는 시대에 흑백의 무언가를 볼 일이 많지 않다. 대체로 시각적인 자극은 강력하고 시선을 사로잡으면 잡힌 대로 보게 된다. 저마다의 반짝임으로 사람들을 붙잡으려는 어필 속에서 흑백 영화는 어떤 매력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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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야단법석을 떠는 이유는 관객을 쉴틈없이 집중하고 영화 속 세계로 불러들이기 위함이다. '우리를 계속 봐줘...'라는 염원이 경쾌하게 녹아있을 때 이에 호응하며 볼 수 있다.

 

이런 단순한 관객으로서 극장에서 <컴온 컴온>이 흑백 영화하는 걸 확인했을 때 아주 조금 걱정했다. 열심히 볼 수 있을지, 집중할 수 있을지 등등 온갖 걱정으로 타이틀 화면을 바라보았는데 이 모든 건 기우였다. 화려하지 않아도 풍성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상 가족 에세이


 

영화는 어린이의 삶과 미래에 대해 인터뷰하는 라디오 저널리스트 조니가 서먹하던 여동생 비브와 비브의 9살 아들 제시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비브가 남편의 일로 LA를 떠나게 되어 제시를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어머니의 임종을 둘러싼 갈등과 여동생 부부 사이에 대한 의견 차이 등으로 소원했던 만큼 조니는 조카 제시와도 친하지 않다. 하지만 삼촌된 도리(?)로 제시를 돌보기로 결심하며 지난한 육아에 들어서게 된다.


영화의 구성은 크게 세 줄기로 흘러간다. (1) 조니-제시의 친해지길 바라 스토리와, (2) 조니의 다큐멘터리 촬영, (3) 비브의 이야기. 조니를 중심으로 조니의 일과 가족이 얽히며 거대한 매듭처럼 상황은 복잡해진다. 엉킨 이어폰 줄을 풀듯이 줄을 하나씩 풀어보지만 조금 풀리다가 다시 꼬이길 반복한다. '포기할까' 싶을 때쯤에 매듭은 풀리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조금만 당겨도 쉽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컴온 컴온>도 꼬이고 풀리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각자의 자리를 잘 찾아간다. 이어폰과 다른 점이라면 서로 다른 줄을 타던 조니와 비브와 제시가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것, 그 연결고리가 기억으로 빚어졌다는 점이다.


가족은 친구나 지인들과 다르게 좀처럼 떨어지기가 힘들다. 매일 마주쳐야 한다거나 멀리 떨어져 살다가도 만나야 할 일이 생기곤 한다. 이를 '천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지긋지긋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거리를 두면 관계 유지가 더 편할지도 모르는데 부딪혀야 하니 더 다투고 싸우고 각박해진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보다도 인내심을 조금만 발휘하고, 서로에 대해 소홀해지기 쉽고 서로에게 이해받고 싶기도 하다.


그런 만큼 가족 간의 일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은 '부대낌'일지도 모른다. 사람 사이라는 것이 다들 그렇겠지만 만나기 쉽고 깊게 연결되기 쉬운 가족 사이야 말로 부대껴야 죽이 되고 밥이 되고 같이 밥도 먹고(?) 식구도 되고 그런 것 아니겠는가. 처음엔 어색했던 조니와 제시도, 조니와 비브도 부대낀 끝에 꽤 괜찮은 사이가 되었다. 조니와 비브는 과거의 일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묵은 감정을 털어놓는다. 말하지 않았던 일들도 꺼내며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사이에서 이해하는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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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가 만날 때



가장 큰 변화는 조니와 제시의 사이일 것이다. 둘의 관계도 변화했지만 각자도 달라졌다.

 

일단 제시를 돌보는 일은 조니에게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조니가 아니라도 제시를 돌보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나도 모르게 '레전드 금쪽이..'라고 중얼거리고 말았으니... 같이 관람하던 친구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제시는 금쪽이 그 자체였다며 동의했다. 9살 아이다운 장난꾸러기면서 '어린아이 답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 간혹 남다른 감수성도 드러내는 제시와 친해지고 제시를 '잘' 키우기 위해 조니는 공부도 하고 엄마 비브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한다.


조니는 육아라는 공통분모가 생기며 비브와 대화가 더 많아지고, 서로가 알지 못했던 시간 속 비브에 대해 제시와 이야기하기도 한다. 몰랐던 점을 알아가며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고 느끼던 것들이 그저 하나의 특성임을 깨달아간다. 어른의 기준에서 발칙하고 순수하고 굉장히 솔직한 제시의 질문에 대답하며 견고하게 쌓아올렸던 조니의 세계는 자꾸만 침범받는다. 그럭저럭 유지되던 일상에 제시는 (어른의 기준에서) 자꾸만 훼방을 놓고 흠집을 낸다.


흠집이 나고서야 조니는 자신의 일상이 연약하게 지탱되어 오던 것임을 알게 되는지도 모른다. 살짝만 건들여도 덮어두었던 고민과 상처가 떠오른다. 들쑤셔진 자신의 세계를 정리하면서 꺼낼 것은 꺼내고,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롭게 만들 것은 만든다. 그렇게 조니의 세계도 튼튼하고 한 걸음 더 커진다.


또래 친구가 없다던 제시는 친한 친구로 조니를 꼽는다. 조니가 제시와 비브를 이해하게 된 만큼 제시도 점점 조니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가까워졌다고 믿었을 때마다 사건이 발생하고 제시는 조니를 그때마다 멀리하지만, 다시 마음을 터놓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조니에게 솔직히 자신의 기분을 말하고 조니는 제시의 기분을 존중해준다.


영화를 보다보면 제시가 9살 아이라는 걸 쉽게 잊어버린다. 마지막에 이르러 숲에서 화가 난다고 말도 못하는 이 아이를 보면 아무리 직관이 뛰어나고 감수성이 예리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시간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니는 무엇이 문제인 줄 몰라 문제가 없다고 믿는 아이에게,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 살펴보고 표현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다. 이처럼 표현하지 못한 생각과 감정에 대해 없는 것처럼 취급하지 않고, 내면을 함께 발견해주는 것이 아이의 세계가 고유한 세계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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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꾸며진 화면과 배경음악



영화 연출이나 음향에 대해 무지한 일반 관객이 보아도 <컴온 컴온>은 영상미와 음악이 모두 좋았다. 역시 흑백으로 색을 차단하고 명암과 형태로 화면을 채웠다. 짐짓 화면이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지만 카메라의 이동이나 거울과 소품을 이용한 연출이 극적으로 작용하며 긴장감을 유발했다.


거울이나 가구 등으로 프레임이 만들어지며 인물이 놓이는 장면은 마치 연극 화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껏 의도된 연출 속에서 화를 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작위적이다. 갈등을 기억할 때 갈등의 발단이나 결말보다는 내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과정을 곱씹고 반복하며 조금씩 왜곡된 모습이 표현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조각난 화면에 따로 위치한 인물과 이들을 말소리를 대신하여 극장을 채우는 클래식 음악은 인물 간 갈등이 봉합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만 같았다. 지나간 갈등을 회상할 때 다투는 대화를 빼고 음악을 틀자 어떠한 이유로 이들이 다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졌다. 인물이 갈등을 떠올릴 때 구체적인 내용은 남지 않고, 기억 저편에서 '심하게 다투었다'는 감정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보정일지 왜곡일지 모를 과정을 거치며 과거는 나만의 사실로 기억된다. 흑백 영상을 택한 이유도 색이 주는 선입견과 감정을 빼고 형태만을 바라보길 바라는 의도는 아니었을지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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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온 컴온>은 관객을 시청각으로, 이야기로 사로잡는다. 마이크 밀스 감독도 잘 모르고 그의 전작인 ‘우리들의 20세기’, ‘비기너스'도 몰랐다. 사전 정보를 찾지 않는 게으름 덕분에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라는 점도 알지 못했다. 그 어떤 정보도 없이 본 영화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기에 함께 해준 이들을 떠올리고 누군가의 기억 못할 순간에 함께했음에 감사했다.

 

이런 영화라면 누구라도 푹 빠져서 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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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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