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스물다섯, 임용고시생, 헬스 초보자

13년지기 친구 Y를 만나다.
글 입력 2022.06.3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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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현 동네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전학 첫날, 단지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기심 어리게 바라봤던 주변 아이들의 눈빛이 기억난다. 그런데도 낯을 가렸던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그때 Y라는 친구가 “화장실 같이 갈래?”하고 물어왔다. 당시 우리는 정말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은 채 어색함 속에서 손만 씻었다. 그게 우리의 시작이었다. 신기하게도 Y는 이사 온 아파트 위 층에 살았고, 장녀라는 것이나 동생과 3살 차이가 난다는 것까지 나와 동일했다. 그렇게 닮은 점이 많던 우리는 매일같이 서로의 집을 들락날락하면서 거리를 좁혀갔다.

 

Y를 떠올리면 각종 사건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싸우고 서로 데면데면해 있을 즈음 마침 학교에서 ‘사과의 날’ 이벤트가 열렸고, 진짜 사과와 함께 편지를 건네면서 얼싸안고 운 기억. 중학생 때 좋아하는 가수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슈퍼스타K 도전을 결심해, 빈 교실에서 함께 노래를 연습했던 기억. 함께 첫 부산 여행을 간 날, 계획 세우고 실천하기를 좋아하는 Y의 손에 이끌려 악착같이 동네를 누벼야만 했던 기억 등등. 어릴 적부터 키가 비슷했던 Y와 나는 매일 뒤를 맞대고 서서 서로 얼마나 컸는지를 쟀는데,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동안 키뿐만 아니라 마음도 함께 무럭무럭 자랐다. 결국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해 각각 문과와 이과를 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내가 전학 온 그 어느 날처럼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으니까.

 

물론 중간에 연락이 뜸해졌을 때도 있었다. 바쁜 고3 시기를 보내고 성인이 됐을 때, 우리는 그렇게나 좋아했던 곱창집에 갔다. 그런데 그간의 공백이 만들어낸 어색한 분위기가 자꾸만 속이 타들어가게 했다. 결국 나는 체했고 그 뒤로 곱창을 먹지 못하지만, 이 사건을 추억 삼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관계는 곧 안정을 찾았더랬다. 물론 닮은 점이 많아 급속도로 가까워졌던 초등학생 때와 다르게, 우리는 분명 변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작가와 선생님을 꿈 꾸며 걸어온 12년의 시간이 방증하듯이. 그러나 동시에,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 어느새 스물다섯이 된 Y는 최근 선생님이 되겠다는 오랜 꿈을 위해 매일 노량진을 왕래하는 중이다. 그런 Y와 인터뷰를 빌미 삼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Y를 만나기 전 나는 Y에 관한 데이터를 토대로 질문지를 준비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내 관점에서 선별한 것과 Y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다소 다른 곳에 방점을 찍혀 있단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결국 방향을 전환했다. Y와의 대화를 통해 편하게 흐름을 끌어내는 식으로. 그 과정에서 내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Y에 대한 인터뷰이기도 하지만, 스물다섯의 나이를 함께 통과하고 있는 우리 둘의 담소 기록에 가깝다. (필자 본인은 S로 표기하였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나는 Y에게 불편하거나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 있다면 건너뛰어도 좋다고 했다. 애초에 Y가 없었다면 이 글도 나오지 않았을 거고, 이 글은 후에 볼 Y의 행복을 위한 것이므로. 

 

Y와 만나자마자 나는, Y로부터 받은 편지를 역으로 그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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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Y는?



S: Y가 쓴 편지를 다시 보니까 어때?

Y: 진짜 나는 매번 생각하는 게 다른 거 같아. 이렇게 써놓은 말을 보니까 '내가 괜찮은 생각을 갖고 있었네' 싶어. 쓸 당시가 연말이라 생각이 정리돼서 그런가? 너는 네가 생각했던 거랑 했던 말을 잘 기억하잖아. 나는 누가 해줬던 말이랑 내가 생각했던 게 잘 기억 안 난단 말이야. 그래서 이 편지를 봤을 때 새록새록 했던 거고. 그런데 네가 지금 내 생각을 글로 적어주면 나중에 봤을 때 또 지금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거 같아서 좋아.

 

S: 낯간지러울 수도 있지만 간단하게라도 자기소개 좀 해줘. 인스타그램에 Y에 대해 올린다고 하면 어떤 해시태그를 달 거 같아?

Y: 스물다섯 살, 임고생 (임용고시생), 헬린이(헬스 초보자). 지금의 내가 목표를 갖고 하는 건 딱 두 개밖에 없어. 공부랑 운동. 원래의 나는 여행을 진짜 좋아해. 편지 주고받는 것도 좋아. 또 이번 연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비원에이포를 엄청나게 좋아했잖아. 나는 내가 할머니 될 때까지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연애를 시작하고 보니까 내 삶에서 엄청나게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진 않더라고. 당연히 노래 나오면 좋지만.

 

S: 운동 목표는 어떤 거야?

Y: 일단 첫 번째 목표는 다이어트야. 본질적인 목표는 운동하면서 피티 선생님이 해준 말씀 덕분에 생겼어. 사람은 살면서 계속 퇴화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좀 늦추기 위해선 운동이 필수라는 말. 나도 운동하면서 더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또 요즘 내가 임용고시 공부를 하고 있잖아. 공부하다 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몸도 많이 아픈데 운동하면서 확실히 좋아졌단 말이야. 원래 1월에는 하던 운동도 다 그만뒀었는데 그러다간 공부를 오래 못 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유튜브 보면서 시간 낭비할 바에야 운동에 시간을 쓰자 싶었어.

 

S: 가끔 운동이 공부에 방해되거나 그러진 않아?

Y: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내가 지금 가장 목표를 두고 있는 우선순위가 뭐인지에 따라 달라질 거 같아. 운동은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방해된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 그런데 내가 공부랑 운동을 제1의 목표로 두니까 괜찮은 거 같아.


S: Y가 재수할 때 너무 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니까 감정을 잃는 거 같다고, 끝나고 나서도 메마르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었잖아. 그래서 내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고 하면서, "오히려 당장은 메마른 게 공부에는 도움이 될 거 같아. 나중에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랬었고. 어떻게 보면 그때랑 비슷한 고시 생활을 하고 있잖아. 지금도 그래? 아니면 달라졌어?

Y: 그때는 진짜 인류애를 상실한 게 아닌가, 공부만 하는 기계가 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찔러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았어. 그런데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거 같아. 재수 학원 체제 자체가 그랬어. 옆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랑 말도 하면 안 되고, 이성이랑은 눈빛 교환도 안 되고, 밥 먹으러 갈 때는 말도 하면 안 되고, 내 자리에서만 먹어야 하고. 아침 7시에 가서 밤 10시까지 될 때까지 말 한 마디도 못 했거든. 그런 상황에 있으면 당연히 누구라도 기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 지금은 나를 억압하지 않고 애인이랑도 공부하고 학원에서도 친구들이랑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러니까 괜찮아. 

 나도 가끔 애인이나 친구랑 공부하는 건 좋은데 합격에 방해되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긴 해. 그래서 최근에는 사람들을 만나서 공부하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나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


S: Y의 얘기를 듣다 보니까 정말 어느 한쪽이 정답은 아닌 거 같고 시기마다 바뀌는 거 같네. 

Y: 맞아. 어쩔 땐 100퍼센트 몰입하다가, 어쩔 땐 이렇게 다운되다가, 어쩔 땐 워라밸 맞추다가, 또 어쩔 땐 워라밸을 맞추는 게 맘에 안 들어서 또 몰입하다가 그런 거지. 그래도 너무 놔버리는 순간은 줄이고 하기라도 하는 게 좋은 거 같아.


S: 지금 Y한테 중요한 목표는 운동이랑 공부라 했지만 어쨌든 애인과 함께하고 있잖아. 고시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공부랑 연애랑 병행하고 있어?

Y: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 같아. 애인도 나도 공부해야 하는 타이밍이고 서로 어디를 놀러 가지 못 한다는 걸 잘 아니까, 같이 만나서 밥 먹고 공부하고 운동하는 게 데이트가 돼. 사실 연애 초에는 무조건 어디를 가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어서 충돌이 잦았단 말이야? 지금은 그냥 같이 만나서 공부만 하는 것도 좋아.

 

 

 

#여행


 

S: 여행은 왜 좋아?

Y: 예전에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어서인 경우가 있다.’ 뭐 그런 식의 글을 봤거든? 만약 내가 여행을 과하게 좋아한다면 내 일상이 도피하고 싶은 일상은 아닌가 한번 생각해보라는 얘기였어. 그걸 보니까 내 일상이 여행할 때만큼 즐겁지는 않아서 여행을 좋아하나? 싶긴 해.

 뭐 그런 걸 떠나서 내가 여행이 즐겁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 여행을 가면 어떤 변수가 있어도 다 좋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좋아. 2018년인가 2019년쯤 친구랑 둘이서 제주도에 간 적이 있거든. 그때 비도 오고 바람도 엄청나게 불어서 우산이 다 뒤집어지고 망가졌었어. 앞으로 걸어갈 수도 없을 정도였는데, 그때 찍은 영상을 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야. 우리는 걷지도 못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웃긴다고 웃고 있고, 눈 시려서 눈물 나는데 웃긴다고 웃고 있고. 진짜 여행은 그 순간순간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거 같아. 근데 이것도 일상 도피인가?


S: 글쎄 동기가 그렇게 단편적인 건 아니지 않을까? 진짜 어떤 게 보고 싶어서 떠난 걸 수도 있고. 나도 요즘 여행 가고 싶은데 일단 도피 욕구가 제일 크지만, 일상에서는 소재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기도 해. 내가 매너리즘에 빠진 이유가 맨날 똑같은 글만 써서 그런 거 같거든. 맨날 분석하고 앉아 있는데 분석하는 틀도 똑같으니까. 그렇게 해서 잘 쓴 글을 낼 수는 있겠지만 같은 작업만 반복되니까 기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러다 새로운 장르를 쓰기 시작했는데 리프레쉬가 되더라고. 지금은 내가 매일 갇혀있어서 글도 갇혀 있으니까 거기선 탁 트이겠다 하는 거지. Y도 겸사 겸사이지 않을까? 

Y: 맞네. 오히려 너는 진짜 배낭 매고 떠나보는 것도 좋은 거 같아. 글 쓰는 게 사실 공간 제약이 없잖아. 기차 안에서도 쓸 수 있는 거고. 

 

S: 맞아. Y는 가고 싶은 장소가 있어? 

Y: 나 있어. 미국. 특히 미국에 있는 해변에 가고 싶어. 미국 왼쪽에 있는 데거든?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사람들이 다 해변에 누워서 선탠하고 있는데, 오후쯤이야. 한 서네 시쯤인 거지. 바람도 조금 불고, 사람들이 옆에서 서핑하고 있고 그런 데 가고 싶어. 여행은 여유로워서 좋은 거 같아. 마음에 여유가 생겨.

 

S: 그런데 나랑은 거의 연예인 스케줄 소화하듯이 빡빡하게 여행했었잖아. 나 아침에 못 일어난다고 화내고. 그건 뭐야? 해명해.

Y: (웃음) 내가 isfj잖아. 나는 진짜 j 성향이 강했는데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p 성향이 강해졌어. 물론 아직도 계획을 많이 짜긴 하지만 이제는 아침쯤은 안 먹어도 괜찮아. 그때는 리스트 정해놓고 여기 가야 해, 저기 가야 해 했었거든? 지금은 아쉬우면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그런 마인드로 바뀐 거 같아.

 

S: 예전에 나는 여행할 때 같이 가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고, Y는 어딜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그랬었잖아. Y는 왜 장소가 중요한 거 같아?

Y: 사실 계획을 세울 때는 누구랑 가냐가 아니라 어디 가서 뭘 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 어떤 게 하고 싶고 어떤 게 보고 싶어서 거기에 가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나도 같이 가는 사람들이 많이 중요해졌어. 뭔가를 혼자 보거나 혼자 맛있는 걸 먹거나 해도 그렇게 재미는 없을 거 같더라고. 똑같은 걸 먹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먹는 거랑 혼자 먹는 거랑은 맛이 다르고, 기억에 남는 정도도 다르니까. 이것도 애인을 만나면서 알게 된 거 같아.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 나 혼자 가능했던 때도 있는데 너무 의존적으로 변한 건 아닌가.

 

S: 의존적인 건 맞는데, 의존적이지‘만’은 아닌 거 아니야? 그냥 이전과는 다른 행복을 하나 더 알게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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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S: 애인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Y는 사랑이 뭔 거 같아?

Y: 아, 너무 어려워.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운 감정이야. 반대로 언제 애인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는지를 생각해보면, 운동하고 땀을 엄청나게 흘렸는데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함이 없을 때? 본인도 힘들 텐데 내가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해줄 때? 둘 다 가방 메고 있고 둘 다 무거운데 내가 무겁다고 하면 들어줄 때? 또 뭐 있지? 모르겠어. 넌 언제 느껴?

 

S: 느낄 때야 많지. 그런데 나도 사랑을 명확히 정의하라 하면 못 하겠어. 좀 다른 얘긴데, 나는 좋아하는 거랑 사랑하는 거의 차이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한 번은 애인한테 그 차이를 물어보니까, 본인은 누나를 좋아하고 엄마를 사랑한대. 누나가 뭐 먹고 싶다고 하면 “그래? 그럼 사 먹어.” 하고 마는데, 엄마가 뭘 먹고 싶다고 하면 그걸 사 간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좋아하는 건 관심은 있지만 굳이 거기에 맞추려고 희생하진 않는 정도고, 사랑하는 건 무언가를 내어주는 건가? 싶더라고. 그런 말도 있잖아. 좋아하는 건 그 사람이랑 있는 게 좋고 재밌지만,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은 있어서 그 사람을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는 거라고. 그런데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그 사람 자체를 받아들여 주는 거라는 말.

Y: 네 말 들으니까 나를 돌아보게 되네.

 

S: 그치. 그런데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고 해서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다고 사랑 안 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사람마다 받아줄 수 있는 부분이나 내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는 거지, 그걸로 사랑의 유무를 논하는 건 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도 어렵다.

 

 


#선생님



S: Y는 어쩌다가 선생님을 꿈꾸게 됐어?

Y: 나 중학교 1학년 때 수학 선생님이 되게 멋있으셨거든. 그래서 원래 꿈이 수학 선생님이었지만 수학이 적성이 아니란 걸 깨닫고 화학으로 돌렸어. 중학생 때는 애들한테도 많이 가르쳐주고 그랬는데 고등학교 2, 3학년이 되면서 성적이 크게 떨어지더라고. 화학 선생님이 돼야겠다고 결심한 건 재수할 때야. 매번 3등급이 나오다가 수능 때 1등급이 나왔단 말이야. 그때 내 노력에 따른 성공이 맛있었다고 해야 할까. 뭐 고등학교 2학년 때 화학 선생님이 멋있으셨던 것도 있고. 이런 거 보면 나는 정말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아.

 

S: 예전에 한 번 선생님이 되어야 할지 교수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잖아. 어쩌다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졌어?

Y: 학부 3학년 때부터 실험실에서 실험했단 말이야. 그때 실험이 잘 됐는데, 그걸 바탕으로 논문 쓰는 것도 재밌으니까 교수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교생실습 나가고 난 뒤에 달라졌어. 수업이 끝나면 애들이 찾아와서 “선생님 방식대로 공부하면 잘 될 거 같아요”, “선생님이 말해주신 거 되게 이해 잘 돼요.” 그랬었거든? 한 번은 어떤 애가 자기도 화학교육과에 가고 싶다면서 어떻게 공부했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걔한테 주고 싶은 거야. 나는 내가 공부한 거 하나도 안 버렸거든.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정리해놓은 거 보면서 내가 9월 모의고사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떠올리기도 하고 있고. 그런데 그걸 그 애한테 다 줬어. 어떻게 공부했는지 참고하라고. 그때 느꼈던 뿌듯함이 컸던 거 같아. 학교 생활하면 재밌겠다, 싶었어. 급식도 너무 맛있었고.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되게 예쁘게 남아 있다고 해야 하나.

 심지어 내가 1학년 5반이었는데 실습 때 들어간 반이 그 반이었거든. 그래서 교생 실습 마지막에 “사실 선생님도 1학년 5반이었어, 얘들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야. 내가 학생으로 있던 교실에 선생님으로 들어와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도 벅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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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 실습 당시 Y가 먹었다던 급식 사진

 

 

S: 교생 실습 당시에 Y는 어떤 선생님이었어?

Y: 원래는 4주인데 코로나 시국이어서 2주밖에 못 했거든? 담임 반 애들은 1주일밖에 못 만났고. 그런데 그 일주일 동안 누구보다 애들이랑 친해져야 하겠다 싶었어.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애들한테 가서 이름을 외웠어. 이름 불러주면 애들이 되게 좋아하더라고. “ㅇㅇ아, 어디가?” 하고 부르면, “쌤, 제 이름 어떻게 알아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는데 너무 귀여운 거야.

 밤새서 수업 준비하면서는 애들한테 내가 갖고 있는 걸 전부 전달해주려고 노력했어. 그리고 한명 한명한테 편지를 써서 줬어. 나도 학생 때 교생 선생님이 일일이 써주셨던 게 기억 나는데, 애들한테 그 좋은 기억을 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애들도 다 나한테 답장을 써서 준 거야. 개중에 “쌤 항상 열심히 노력해주시고, 저희한테 먼저 다가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런 얘기도 적혀 있었어. 나는 실습 기간이 너무 짧아서 애들은 내가 노력하는 걸 모를 줄 알았단 말이야? 그런데 애들도 다 알고 느끼고 있었구나 싶더라고. 

 

S: 와... 그때 Y를 보면서 선생님을 꿈꾼 학생들도 있겠다. Y는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어?

Y: 우선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싶어. 능력 있어서 애들이 믿을 수 있는 선생님. 그게 가장 커. 선생님이 열심히 하면 애들은 ‘선생님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된단 말이야.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해. 고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엄청 열정적이셨는데, 거기에 맞게 우리 반도 제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반으로 유명했거든. 

 

S: 학부생 시절에 Y는 가르치는 동아리를 했던 걸로 아는데, 기억에 남는 일화 있어?

Y: 엄청 특이한 기억은 없지만, 봉사활동으로 일대일 멘토링을 한 적이 있거든? 내가 가르친 학생이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딱히 수학에 흥미 있는 애는 아니었어. 내가 공부하기 싫냐고 물어보니까 “당연히 하기 싫죠!” 그러더라고. “그럼 너는 뭘 잘해?” 물어보니까 자기는 노래를 잘한대. 그래서 노래를 해보라고 시켰는데 너무 잘하는 거야. 나는 학생이면 무조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얘는 노래를 잘하는 거지.

 나는 사람 볼 때 단점을 먼저 보거든. 그런데 그 일을 겪은 뒤로는, 선생님이 되면 장점을 먼저 발견해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더라고. 학교 가서 다양한 애들을 만나면 학생들마다 가진 장점을 잘 알아봐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것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됐어.

 

S: 그래서 내 단점은 뭐야? 궁금하다.

Y: ...내가 다른 사람 단점은 잘 보는데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해.


S: 알았어. (웃음) 1년 전에 Y가 동생 두고 고민했던 적이 있잖아. 정확히 어떤 고민이었던 거야?

Y: 그게 정확히 언제였지.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 동생이 좀 방황했어. 진로도 확실하지 않았는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고등학교에 가야 친구들 따라서 하게 되기도 하잖아. 그런데 코로나 시국이다 보니 학교를 안 갔단 말이야. 엄마는 나한테 네가 지나온 것들이니까 동생한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라고 그러셨는데, 난 개입하고 싶지 않은 거지.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는 선생님으로서 올바르지 않은 생각 아닌가? 싶기도 했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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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Y의 카톡 내용. 동생 이름은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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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S: 당시에 어떤 식으로 해결했었어?

Y: 그때 그런 고민을 했던 게 신기해. 지금은 선생님이 돼서도 이래라 저래라하고 싶지 않아졌어. 누군가 나한테 조언을 구한다면 말을 해줄 순 있지만, 내가 먼저 나서서 “너 이렇게 해야 해! 이렇게 하는 게 좋을걸?” 이렇게 강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됐어. 그때는 충돌했던 거지. 가족이다 보니까 그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할까 봐 부담되는데, 선생님이라면 그 애가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길이 옳은 길일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길이 항상 정답일 수는 없는 거잖아. 누군가 나한테 물어보면 조언을 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게 선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생각하는 게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니까.

 

S: 그거 말고도 선생님 가치관을 두고 겪었던 딜레마 같은 거 있어?

Y: 딜레마는 모르겠고 요즘 걱정되는 건 있어. 내가 화학 공부를 하고는 있는데 양이 엄청 많단 말이야. 임용고시에서 합격한다고 해도, 물론 일반인에 비해서는 전문가겠지만 나보다 더 잘난 학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애들이 질문하는 걸 모르면 어떡하지? 싶기도 하고. 사람이니까 모를 수 있지만, 선생님은 당연히 알려줘야 하는 입장이잖아.

 그래서 피티 선생님께 그런 경험 없으시냐고 여쭤봤는데, 당연히 있지 왜 없겠냐고 하셨어. 당신보다 운동 열심히 하는 회원들도 있고, 헬스트레이너만큼 잘하는 사람도 있고, 수준이 정말 천차만별이래.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하신대. 그러면서 선생님이 되면 사실 쪽팔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고 하시더라고. 

 또 임용에 합격하는 것도 문젠데 맨 처음에 가서 어리바리하면 어떡하지? 싶기도 해. 선생님이 너무 되고는 싶지만, 막상 됐을 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함이나 막연함은 있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른을 향한 발걸음



S: 어렸을 적에 상상한 어른 Y의 모습이 있을 거 같은데, 지금 그 바람대로 잘 가고 있어?

Y: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왜 되고 싶었지? 자유로워 보여서 그랬던 거 같아. 지금의 나는 그때그때 생각이 성숙해지는 걸 느끼면서 ‘아, 내가 또 어른에 가까워졌구나.’ 생각해. 전에는 이렇게 가는 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걸 겪으면서 '어, 이 방향으로 가는 것도 괜찮네?' 하는 거지.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어른의 삶대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 적은 없는 거 같아.

 

S: Y가 정의하는 어른은 뭔데?

Y: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S: 그럼 사랑을 안 하면 어른이 아닌 거 같아?

Y: 응, 어른은 아닌 거 같아.

 

S: 꼭 사람 간 사랑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인류애 뭐 그런 거?

Y: 뭐 인류애도 될 수 있지. 나에 대한 사랑도 될 수 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일에 대한 사랑이 될 수도 있고. 근데 나는 나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아닌 남에 대한 사랑까지 아우른 게 맞아. 나를 사랑하기도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거 자체가 어른인 거 같아. 그 사람한테 어느 정도 나를 희생할 수 있단 뜻이잖아.

 

S: Y는 그런 어른이 돼가고 있어?

Y: 아예 만족하진 못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렇게 가려고 하고 있지.

 

S: 그럼 Y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Y: 나 그거 사람마다 좀 다른데, 일단 부모님께는 다 큰 딸로 인식됐으면 좋겠어. 아직 내 모습 자체가 다 큰 딸은 아닌 거 같지만, 돈도 벌고 그러면 뿌듯해하셨으면 좋겠어. 동생들한테는 친근함이 제일 컸으면 좋겠어. 어렵지 않고. 친구들한테는 말 하고 싶은 거나 고민이 있을 때 주저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애인한테는... 이건 좀 어렵다. 어려워.

 

S: 버킷리스트 있어?

Y: 일단 번지점프를 해보고 싶어. 내가 진짜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데 언젠가 한 번은 해보고 싶어, 애인이랑 같이. 그리고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시절에, 친한 친구들이랑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바깥 창문을 내다보면서 30살을 맞이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어. 또 나는 책을 정말 많이 읽을 거고, 교사가 되면 블로그랑 브이로그 하는 것도 버킷리스트야.

 

S: 인생 목표 있어? 단기적 목표는 임용고시 합격하는 거고, 장기적 목표.

Y: 인생의 목표라 하면 거창하게 말해야 할 거 같은데 난 평범하게 살고 싶어. 나는 규칙적인 일상이 좋아. 별일 없이 일하고, 학생들이랑 잘 지내고, 일 끝나고 와서 운동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무슨 일 있었는지 얘기 듣고, 그렇게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고 싶어. 그리고 선생님이 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잖아. 나는 대학원도 가고 싶고, 담임 교수도 알아보고 싶고, 여러 가지 진로를 찾고 싶어. 선생님이 최종 목표가 아닌 거 같아.

 

S: 내년의 목표를 이룬 Y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어?

Y: 두 가지로 나눠서 해도 돼? 만약 합격해서 선생님이 됐다면,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으니까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시험에서 떨어졌다면...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한 번 더 하면 된다. 원래 한 번에 붙는 사람보다 두 번 더 해서 붙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냥 내 꿈을 위해 도전하는 시간 한 번 더 가진다 생각하면 된다. 그만큼 더 지식이 깊어진 후에 학생들을 만나는 거로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말해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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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S: 이건 사심으로 넣은 질문인데, 나는 Y한테 어떤 친구였으면 좋겠어?

Y: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는 친구였으면 좋겠어. 그 시절의 것들을 공유할 수 있고,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친구. 사실 그게 안 돼서 헤어진 친구도 있잖아. 너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힘든 일 있으면 서로 들어주고, 기쁜 일 있으면 축하해주고, 같이 여행도 가고, 추억도 쌓고 그럴 수 있는 친구였으면 좋겠어.

 

S: 예전에 내가 '나를 의심한다'라는 책을 보다가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거든.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의 친구가 10년, 20년 뒤에도 같이 갈 거란 생각은 대부분 틀렸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관계로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분명한 착각이다.' 그런 식의 이야기였는데, 맞는 거 같아?

Y: 응. 우리도 몇 개월? 몇 년 단위로 계속 바뀌는 거 같지 않아?

 

S: 그치 계속 바뀌고는 있지. 그걸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우린 같이 가는 거고. 근데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부터 헤어지나봐. 그럼 변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 각자 자리마다 주어지는 게 있으니까.

Y: 맞아. 그래서 나는 너랑 내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변화를 겪는 친구였으면 좋겠어. 그것도 결국 타이밍이니까.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나보다 성숙한 생각을 먼저 해서 멀어져야만 했던 적도 있었거든. 그런데 너는 잃고 싶지 않으니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해서 꼭 할머니 될 때까지 같이 갔으면 좋겠다 싶은 거지.

 

S: 그럼 다른 일을 겪게 되면 우리는 갈라서는 거야? (웃음)

Y: 솔직히 너랑 나는 생각이 비슷해서 계속 같이 갈 거 같긴 해.

 

S: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소감 한마디 해줘.

Y: 내가 나에 대해 생각을 안 한 지 오래된 거 같아서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 이게 꼭 글로 탄생할 수 있길 바라. 예솔이의 외장 하드 속에 묻히지 않길...

 

 

 

#마치며



인터뷰 마지막에 나는 Y에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Y는 6학년 때 전학 와줘서 고맙고, 나랑 손 씻으러 가줘서 고맙고, 친구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사람은 정말 물리적 실체를 제외하면 기억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만 같다. 우리가 그렇게 숱한 기억과 추억을 쌓지 않았다면 위 문장이 주는 감정의 무게를 체감 못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글로 기록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우리가 함께 축적해온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걸 새삼 알겠다. 

 

인터뷰 당시 Y는 임용 고시까지 4,500시간 14분 47초가 남았다고 했다. Y가 지난하고도 고된 시간을 잘 견뎌내어 멋진 선생님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물론 잘 해내리라 믿는다. 초등학교 6학년 이래 옆에서 지켜봐 온 나는 Y가 얼마나 단단하고 멋진 사람인지를 아니까. 학부생 시절, 학원 선생님 알바를 하고 동아리 임원을 겸하면서도 높은 성적을 유지할 정도로 늘 꿋꿋하게 잘 견뎌왔으니까. 나는 우리가 앞으로도 이렇게 크고 작은 산을 넘으면서 계속 같이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 서로 걷는 길이 달라 간격이 조금 벌어지더라도 지금처럼 가만히 손을 잡아주면서 함께 평행선을 그려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Y의 로망처럼 스물아홉의 끝자락에는 함께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서른을 통과하기를 바란다.

 

끝끝내 글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도와준 Y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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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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