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따뜻함에 가려진 기구한 우여곡절 : 루이스 웨인展

글 입력 2022.06.1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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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 안에서 작은 전시회가 열렸다. 10층이라는 높은 층도 낯설었는데 전시장을 찾으러 가는 길목은 더욱 낯설었다.

 

대리석 바닥과 낮은 천장, 그리고 노란빛이 도는 조명. 누가 봐도 백화점인 광경. 이윽고 전시장 입구를 마주했다. 티켓 발권처는 어디 있는가 하니 백화점 고객센터가 즐비한, 마치 은행 창구처럼 생긴 공간의 가장 안쪽이었다. 신기했다. 전시회가 열린다기엔 지나치게 백화점다웠달까.

 

그러나 주변 경관이 고양이 이미지와 어우러져서 의외이기도 했다. 황토색에 가까운 나무 장식과 초록색 조화, 백화점 특유의 흰색을 베이스로 둔 천장과 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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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전시 관람을 시작했다. 작가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는 언제나 그러하듯 개인의 이력을 훑는다. 언제 태어나 어떤 일을 겪으며 언제 사망했는지. 텍스트와 숫자로 나열된 흐름을 읽는데 눈에 띄는 대목이 몇 보였다. 구순구개열, 죽음, 파산, 병원.

 

하나만 있어도 고달픔이 배로 늘어날 삶인데 루이스 웨인은 삶의 시작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의 생애를 연민 그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다. 이러한 삶을 살았기에 사랑스럽고 따스한 고양이 그림이 탄생했을 테니까. 다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으로서 일생이 얼마나 지난했을지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기에 그런 면에선 안타까움이 일었다.

 

어린 시절, 루이스 웨인은 구순구개열이 있었다. 우리가 문학작품에서 '언청이'라는 단어로 보았던, 입술이 갈려 위로 들리는 선천성 기형이다. 얼굴 기형 중 가장 흔한 것이기는 하나 이를 겪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을 뿐이다. 때로는 옳고 그름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아동/청소년기에 잔혹한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 잠자리 날개를 우악스럽게 떼어서 날지 못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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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집단에 속할 수 없었던 루이스 웨인. 시간은 흐르고 흘러 열일곱 무렵이다. 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9세기 후반답게 집안의 가장은 여성인 어머니가 아닌 큰아들인 루이스 웨인이었다.

 

원래 음악 관련한 공부를 하고 싶어 했으나, 생계유지를 위해 미술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의 그림은 당시 사실적이고 세심하다는 평을 받으며 뉴스, 전시회 홍보문 등을 강아지로 채워 넣었다. 이땐 고양이보다는 개를 많이 그렸다.

 

그러다가 인생의 전환점인 에밀리를 만난다. 10살 연상에 가정 교사인 에밀리는 그때 시대상으로는 모두가 쑥덕거릴 만한 결혼 상대였다. 남성 가정 교사와 달리 여성 가정 교사는 사용인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그러니까, 자신이 채운 지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과 배움을 전하는 역할은 남성만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정 교사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여성이 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또 한 번, 주류의 사람들과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고양이 피터를 가족으로 들인 것이다. 지금은 고양이가 숨만 쉬어도 귀엽다며 우호적인 태도가 만연하지만,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은 때였다. 늙고 결혼 못한 여성이 키울 만한 대상으로 여기기도 했고. 문득 전시장 초입에서 보았던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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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말 못하는 동물들을 좋아합니다."
 

 

번역이 잘못되었나 했는데 정말 dumb이라고 쓰여있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람들이 작가를 지겹도록 입방아 찧었나? 방점은 '말 못하는'에 찍혀있는 걸까? 예상한 대로였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말을 끝없이 조잘거렸을 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똑같이 사람이니까.


나름대로 순항을 보내던 삶은 에밀리의 죽음으로 꺾이고 만다. 루이스가 좌절을 극복하는 방식은 피터였다. 피터를 자세히 관찰하며 그리던 고양이 그림은 어느덧 의인화된 고양이로 발전한다. 공통점은 생동감이었다. 따뜻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에밀리의 빈자리를 함께 겪는 피터가 소중했기 때문 아닐까.

 

고양이에 대한 이미지가 이토록 나빴던 때이지만, 우습게도 고양이 그림으로 루이스는 유명 인사가 된다. 다만 현명한 조언을 해주던 에밀리의 존재가 없어서인지 그 명성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저작권 등록하지 않아 그림을 그려도 경제적으로 전혀 보호 받지 못했다. 큰맘 먹고 했던 투자도 실패하고, 제1차세계대전 발발로 새로운 도약에도 실패한다.

 

결국 말년엔 생활고에 시달린다. 이 무렵 조현병이 찾아왔는데 원체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그의 상태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주 심각한 모습을 보고서야 대응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후원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그리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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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 더. 태피스트리 패턴을 활용한 고양이 그림은 한때 인터넷에서 '조현병을 앓는 작가의 그림'으로 유명했다. 기괴하다, 무섭다,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등의 반응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 그림들은 루이스 웨인이 정신병동에 있을 때 그린 게 아니다. 직물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태피스트리 작가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게 가장 강력한 추측이다. 오히려 정신병원에서 그렸던 그림은 평화롭고 따뜻한 정경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보이는 대로 믿는다. 그가 살면서 들었던 무수한 말과 핀잔 중에서 진실은 얼마나 차지했을까?

 

**

 

전시회를 보면 보통 전시 동선이나 짜임,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에 집중했다. 이번처럼 작품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작가에게 포커스를 맞춘 건 처음이다. 모르는 사람에 관한 모든 정보는 관심 밖이라 자서전을 비롯한 사람 개개인의 이야기엔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아서.


자세하고 깊게 알아봤다고 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사람'을 알고 작품을 보면 또 다르게 보이는 재미를 배웠다. 고양이는 귀엽고, 삶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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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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