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스물다섯의 우리는 - 1

글 입력 2022.06.1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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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이다. 별로 이룬 것도 없는데 학기는 또 끝나가고, 멀게만 느껴졌던 졸업이 목전으로 다가오자 기대보다는 불안이 스멀스멀 치닫기 시작한다.

 

나는 올해 봄에 스물다섯이 되었다. 갓 스무살 시절의 풋풋함은 빛바랜 지 오래지만, 그렇다고 어른이라 하기엔 남의 옷을 얻어 입은 듯 어색하고 부끄럽다. 가끔 이런 내 모습이 덜 익은 바나나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대충 푸른기가 가셨길래 한 입 베물어 보니 아직은 밍숭맹숭 맛대가리 없는 바나나.

 

친구들은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스물다섯의 너희는 무슨 색으로 익어가는 중일까.

 

 

 

스물다섯, 아직도 졸업을 못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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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밀히 말하면 아직 스물넷이야. 한 달 뒤면 스물다섯 살이 되지. 올해 생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보내보려고 해. 좋아하는 뮤지컬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할거야.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네!

 

요즘은 졸업 준비를 하면서 생애 가장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생각만큼 바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요즘이야. 믹서기 속 바나나 마냥 실없이 갈려나가고 있지. 요 근래는 정말이지 내 몸이 내 몸같지 않아서 뒤늦게 영양제를 먹기 시작했지만, 혼자 살다보니 약 챙겨먹기도 쉽지가 않네. 올해부터는 정말 운동을 시작해야 할까봐.

 

어릴 때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에 나오는 나미리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어. 노처녀 나미리 선생님이 스물다섯 살에 결혼했거든. 스물네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다섯에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는 게 내 꿈이었어. 꽤 구체적이지?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까지 일찍 결혼하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네.


스무 살 때의 나는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 그 때의 나한테 덜어내는 연습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 너무 머리 싸매지 말고, 단순한 곳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서른 살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직장은 구했을지 모르겠네. 다만 지금처럼 약간은 철없는 모습으로, 모쪼록 잘 견디며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 가끔은 철없이 살아야 견뎌지는 것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

 

 

 

하이힐은 발이 아프더라


 

스물다섯 하고도 절반을 지나고 있는 요즘, 나는 나무와 바다가 좋아서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 평생은 아니고, 일 년의 절반쯤? 난 영화도 연극도 좋아해서 대극장 앞에서도 살아보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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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스물다섯 살이 되면 하이힐 신고 자가용 타고 다닐 줄 알았어. 하이힐이 어른의 신발이라고 생각했거든. 갓 스무 살 되어 하이힐을 신어보니 뒤꿈치가 너무 아프더라. 나는 그래서 여전히 운동화 신고 자전거 타고 놀아. 그 대신 자바칩 프라푸치노 말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게 됐어. 이 정도면 어른 아닌가?

 

이 나이쯤이면 대단한 업적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뚜렷한 내 길을 찾아 그리로 향해 가고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학교도 졸업 못하고 여적 헤매고 있네. 아직도 내 힘으로 끼니 하나 해결 못하고 말이야.

 

5년 전의 나, 또 5년 후의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다면 "하나는 확실하게 하자!"라고 말해주고 싶어. 살다보니 한 번씩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이 오더라. 앞으로 내 길 앞에 놓인 선택지가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갈팡질팡하다 후회하는 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어. 5년 뒤, 서른 살의 나는 적어도 내가 선택한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해내는 사람이면 좋겠어. 그럴 수 있겠지?

 

 

 

고생했어, 조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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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어. 졸업하고 나서도 인턴을 일년이나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그래서 요즘은 회사 일과 취준을 병행하고 있어. 가뜩이나 바쁜 직장인데 틈틈히 면접도 보러 다녀야 하니까, 최근에는 보고 싶은 전시도, 그 좋아하는 영화도 한동안 못보고 지냈네. 광고 일은 재밌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

 

스물다섯 쯤 되니 달라진 건 내 안에 페르소나가 여러 개 생겼다는 거야. 어릴 때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이었어. 그런데 크면서 그런 내 성격이 사회생활 하는 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지. 이제는 여러 얼굴을 갈아끼울 수 있게 됐어. 친구 앞에서의 나와 직장 동료 앞에서의 내 모습이 조금씩 달라. 회사에서는 사회생활하기 편리한 얼굴을 만들어서 유용하게 쓰는 중이지. 너는 아마 본 적 없을거야.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건 취향이 아닐까? 난 아직도 해리포터를 보면 설레. 편식도 여전해서 치킨이 제일 좋고 채소는 싫어. 초록색을 보면 늘 기분이 좋고, 드라마만 보면 과몰입하는 건 십 년째 변함없는 내 모습이지.


불과 며칠 전이 내 스물다섯 번째 생일이었어. 이틀 뒤가 면접이라 하루 종일 집에서 면접 준비만 하며 생일을 보냈네. 지난 몇 년 간의 나한테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서른 살의 나에게는 아무래도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해야 할 것 같네. 내 삶에 여유가 오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거든.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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