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짙은 초록의 내음: 프네우마 아무르 핸드크림

글 입력 2022.06.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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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다소 뚝딱거렸던 첫 출근을 지나 상당 부분 적응을 마친 한 달 차 알바생. 마감 시간을 맡아서 사방이 눈부실 때 건물로 들어섰다가 새카만 하늘을 보며 퇴근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생각이 드는 거다. 왜 진작 안 해봤을까?

 

물음이지만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착각해서. 20대 초반까지 나는 나를 싫어했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어떤 일이든 소극적이고, 의사 표현을 제대로 못 하고, 불편한 사람들의 비위나 맞추고. 종합적으로 못났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이든 일이든 모르는 환경에 나를 두려 하지 않았다.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는 일. 그게 스스로 정의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종류의 싫어함은 애정에서 비롯된다.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지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위협이 될 만한 모든 요소를 제거했던 거니까. 이를테면 낯선 곳에 놓일 내가 느낄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아예 새로운 것을 도전하지 않는다던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예상보다 나은 결과에 안도감을 유도한다던가.


종종 그런 가정을 해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삶에 많은 방향이 변화했을까. 얼마나 바뀌었을까, 그 변화가 보장된다면 나는 내가 가진 무엇과 교환할 수 있을까.

 

언제나 비슷한 답을 내왔지만, 말을 덧붙였다간 아예 생뚱맞은 방향으로 흐를 것 같아 이쯤에서 마쳐야겠다. 그리고 다시, 카페 이야기다.

 

 

 

카페,

그것도 마감 시간은 음료 제조가 아니라 청소와 설거지의 연속이랬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듯하다. 음료를 제조하는 동시에 청소를 해가며 설거짓거리를 처리하는 게 마감의 일이니까. 시럽 등 무언가가 튀고 더럽혀진 공간을 닦는 건 마음에 든다. 청소와 빨래를 워낙 좋아해서인가. 이와 반대로 싫어하는 살림도 있었으니, 바로 설거지다.

 

손에 물 묻는 게 싫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감각이 예민해서 같다. 햇빛이 몸에 닿는 것도 싫어해서 양산을 꼬박꼬박 챙겨 다니니까. 약간의 소음에도 잠에서 금방 깨고, 그래서 알람 소리에 퍼뜩 몸을 일으키고. 하나의 특성엔 좋은 것과 불편한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이 카페엔 고무장갑이 없다. 처음 일하러 갔을 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거의 설거지 담당이었다. 블렌더와 믹서기, 온갖 크기의 계량컵, 용기들을 뜨거운 물에 닦고, 또 닦고, 닦고. 살면서 손에 물이 닿을 만한 일은 말 그대로 손 닦기를 위한 때였다. 그래서인가. 지난한 첫 시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데 핸드폰 지문인식이 안 됐다.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계속 일해도 되나. 뭐 문제 생기는 거 아닌가. 예전이었으면 불만과 불안으로 그득했을 일이건만 이제는 의연해졌다. 어디, 내가 얼마나 잘 이겨내는지 보자고. 성과의 증명은 뜻밖에도 주변 사람을 통해 얻었다. 카페에 일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빈자리를 신입들이 채웠는데, 하나같이 오래 일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새로 온 매니저님도 비슷한 말을 들려주었다. 카페 일은 처음 하면 대부분 어리바리한데 적응력이 굉장히 빠르다고. 잘한다고. 나의 능력을 알아가는 과정은 즐겁긴 하다만 도리어 일이 더 늘어난 느낌도 든다. 신입 교육을 또 다른 신입인 내가 하고 있었으니.

 

이러한 상황과는 별개로 익숙해지지 않는 건 딱 하나. 건조한 손. 이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평소에도 손등이 건조했다. 겨울철만 되면 금방 하얗게 피부가 일어났으니. 핸드크림을 한때 사용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귀찮고 번거로웠다. 묘하게 끈적이는 감촉과 묵직한 질감은 감각이 예민한 나에게 적절하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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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무르 핸드크림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그냥 한번 써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지. 종이 끈을 푸르고, 종이 포장재를 열어 숲처럼 생긴 패키지를 마주했을 때부터 느낌이 좋았다고 하면 기억이 미화된 걸까. 바디의 짙은 초록도, 나뭇결 같은 고동색 캡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보호캡을 빼고 펌프를 눌렀다.

 

곧장 퍼지는 아르간의 강한 내음. 나무에서 추출한 향이라 그런지 코끝을 찌르는 시트러스 느낌도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손등을 문댔다. 금방 스며들어 잔재감이 남지 않았다. 손끝으로 만질 때야 느꼈다. 아, 여기 남아있구나 하고.

 

카페에서 고생한 손이 핸드크림 덕분에 나름의 호사를 누린다. 마찬가지로 퍼석한 얼굴에도 자주 바른다. 원래도 바디로션을 얼굴에 발랐던지라 별다른 거부감도 없고. 첫 향이 센 편이라 향수를 얼굴에 바른 느낌이기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깔끔하게 건조함을 잡아주는 느낌이 참 좋다.

 

이건 '워크 어메니티', 즉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핸드크림인데 그 목표 설정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쓰임이라고 생각한다. 금방 손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무수한 노동 인구에게 적절한 선택지가 아닐까. 오늘도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핸드크림을 발라야겠다. 열심히 일한 나 자신을 다독여주며.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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