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골로의 문화초대 [공연]

계촌 클래식 축제, 휴콘서트
글 입력 2022.06.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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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밝힌 바 있듯 나의 고향은 시골이다. 강원도 어느 한 지점, 도시는 분명 아니고 그렇다고 논과 밭만 있는 완전한 촌도 아닌, 썩 불편하지 않게 살 순 있는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편리한 생활이 가능하지만, 여흥을 풍부하게 즐길 만한 인프라는 굉장히 부족하다.


아트인사이트의 일원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 중 하나는 문화 초대이다. 평상시 인지하지도 못했던 흥미로운 문화를 알 수 있고, 무료로 향유까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어쩌면 당연하게 문화 초대의 대상인 대부분의 전시, 공연, 연극은 서울에서 이뤄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방구석에서 쏟아지는 문화 초대를 보고 있으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왕복 대중교통비가 기본으로 필요하고, 돌아오는 대중교통의 막차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무리한 일정에 지치지 않으려고 숙소를 예약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이미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 자체를 훌쩍 뛰어넘는 부수비용, 사전 준비와 몇 시간의 이동시간을 생각하고 있으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생각에 먼저 지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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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투정을 부리기엔 애초에 내가 사는 시골엔 문화예술이 전무하니 초대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마저도 예전부터 관습처럼 이어져 온 단일한 지역 축제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특색을 반영해 흥미로운 문화를 생성할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시골에서 문화예술이란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가 아닌 먹느냐 마느냐, yes or no만이 존재하는 단일요리 전문점과 같다.


다양한 문화가 향유되지 못하는 것은 곧 단편적인 시선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시골을 떠날 수밖에 없는, 반대로 시골로 유입되기도 힘든 근원이다. 나의 고향 친구는 한국에선 서울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마포구와 용산구를. 그곳은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다닌다고, 옷을 키치하게 입는다고 눈초리와 웃음을 섞은 평가가 쉽게 면전에 따라붙지 않기에 그렇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사는 이곳이 ‘서울 같았다’면 굳이 서울을 가장 좋아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고향과 그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우리이기에. 사실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적인 자본에 잠식당하는 것을 보기 싫은 양가감정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점점 문화와 예술을 특정 지역이 독점하게 되는 것을 체감하는 것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문화예술을 표현할 공간의 부족, 주변 인프라의 부족, 자본의 부족, 문화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인지의 부족, 기회의 부족으로 인한 기회의 고립. 어디서부터 끊어내야 할지, 끊어낼 순 있을지 알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로 시골은 점점 과도한 지방층을 두껍게 늘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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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도 몇몇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도전과 애정이 모여, 내가 사는 시골에도 1년에 한두 번은 큰 규모의 색다른 축제가 열린다. 최근 이웃 시골 마을인 계촌에서 열린 클래식 축제에 다녀왔다.

 

계촌은 초등학교 폐지를 막기 위해 학생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을 기점으로 클래식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그러한 이유로 1년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다양한 음악인들이 초대되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다녀온 축제인 ‘휴 콘서트’는 8월에 있을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클래식 축제의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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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곳의 전경은 나에겐 늘 당연한 풍경이었지만, 그것이 다른 대상과 접목했을 땐 왠지 낯선 빛깔을 내는 풍경이 되는 듯했다. 도심 속 문화예술이 사람이 잘 정돈한 공간에서 주로 이뤄진다면, 시골의 문화예술은 자연이 무심히 만들어낸 장엄한 공간을 배경 삼아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1부였던 안희연 시인과의 토크 콘서트는 시 낭송과 시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위주로 흘러갔다. 청중이 시를 듣고 떠오른 자신만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창작자와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기회는 흥미로운 일이다. 창작자는 일상의 사소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적어 내리고, 때로는 부풀리고, 때론 이상하게 뒤섞어 놓고. 그렇게 문득 고유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인다. 그런 창작자의 ‘엉뚱한 예민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존재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그와 흥미롭게 교감하고 이야기 나누는 청중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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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 펼쳐졌던,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노부스 콰르텟’의 공연은 웅장한 자연과 인간의 순간적인 동화를 보여줬다. 근처 시골마을에서 노을이 질 때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며 보았던 반딧불이의 풍경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장엄하게 펼쳐진 초록의 향연과 부드러운 선율의 만남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감각의 세계이지 않을까.


오후 4시 가장 더울 때,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 앉아 있던 인내의 시공간은 그들의 음악으로 다르게 물들었다. 여름과 초록과 클래식 음악의 만남이라니. 이곳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촬영지라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몰입만 한다면 다른 세상으로 빠질 수 있었던 환경 속에서 한국의 계촌과 이탈리아의 크레마를 바삐 넘나들던 선율의 시간에 잠시 들어갔었다.

 

몰입의 순간 바로 옆을 지나가는 ‘방충망, 싱크대’를 홍보하는 트럭의 호객 소리에 정신이 바로 들었지만 말이다. 공연 중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돌발 상황에 분노보단 너털웃음이 나오는 것도 그 세계에 푹 빠져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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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계촌 부녀회에서 제공한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정으로 먹지 못했지만, 고향 친구의 후기로는 굉장히 맛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나물을 활용한 요리가 많아 맛있게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후기와 사진을 보고 굉장히 아쉬웠다.

 

항상 시골과 지방의 고립에 대해 속상한 마음을 갖고 있다. 시골스럽다고 핀잔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골만의 순수함을 바라보고 즐기다 오면 결국 이 공간의 매력과 잠재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고유의 방식으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임이 명확하고, 모두가 반할 수 있음이 자명하다. 말 그대로 참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결국 많은 이들을 시골로 초대하고 싶다. 분명히 아름다운 이 공간에 해를 가하지 않고 즐길 마음들을 초대하고 싶다. 나만 알고 싶기도 한 비밀의 정원에 다양한 존재들을 초대하고 싶다.

 

언젠가는 기이한 밀집을 분산시키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바람이 곳곳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 사진 출처

1. 현대차 정몽주 재단 공식블로그

2. 평창포토뉴스

 

 

[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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