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흔한 이름은 흔한 인생을 부른다 下

글 입력 2022.05.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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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해지고 싶었다.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진 역사가 꽤나 길었던 딱 그 만큼 특별함에 집착했다. 내게 이름 말고도 나를 규정지을 수 있는 어떤 것이 필요했다.


중고등학교는 내가 살던 지역에서 교칙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곳들이었다. 그곳에선 누군가 정해 놓은 모범상과 오차 없이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 귀밑 삼 센티미터의 똑단발도, 일명 '월남치마'로 불리는 담요 같은 교복치마도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태생부터 갈등은 되도록 피하는 게 익숙해 교칙만 대강 지켜가며 지냈더니 어느새 나에게 '모범생'이라는 되도 않는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확실히 사전적 의미의 모범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 아픈 숙제를 매주 끝내는 것보다 대나무 회초리로 매 한 대 맞는 게 더 버는 장사라고 생각했던 학생이었다. 미술 과제로 만든 지점토 덩어리를 통째로 휴지통에 처박아 넣고 반에서 유일한 0점을 맞아도 사람들에게 난 그저 착하고, 조용하고, 똑똑한 '범생이'였다.

 

그 시기엔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귀를 뚫곤 했었다. 멍청할 만큼 정석적으로 교복을 갖춰 입은 모습이 싫을 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반항이었다. 매주 숙제를 하지 않아 손바닥, 발바닥 가릴 것 없이 순순히 내미는데도 선생님은 늘 '얘가 그럴 만한 애가 아닌데…' 하고 말씀하셨고,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팽 쳤다.

 

'어쩜 나를 규정짓는 단어들은 죄다 맥없는 것들 뿐일까?'

 

이 세상엔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제대로 보는 사람도, 제대로 부르는 사람도 하나 없다는 걸 그때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어디서도 유일하지 못했다. 유일하지 않다는 것은 흔하다는 것이고, 흔한 것은 언제든 대체 가능하므로 나는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았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아주 뻔할 만큼 숱하게 존재하기 때문이고, 숱한 존재는 공기처럼 불시에 망각되고 만다.

 

존재에 대한 열등감이 혈류를 타고 전신을 돌았다.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끝내 나는 그냥 잊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에 정착했다. 태초부터 누구에게도 기억될 수 없도록 촘촘히 설계된 지구인1로 말이다.

 

내 존재의 증명이 고작 흐릿한 글자 뿐이라는 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거품처럼 커지던 두려움은 결국 차라리 영영 잊히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렴했다. 눈에 띄지 않게 눈에 띄고 싶어 안달하는 나의 모습이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어설픈 모습을 들킬 바에야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던 사람이 되는 편이 나았다. 오해받거나 약점을 내보이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개명을 결심했다. 이름도, 성격도, 나의 과거를 아는 지나간 인연도 미련없이 떨쳐낼 기회였다. 내가 아는 그 못나고, 초라하고, 구차한 모습이 정말 나의 전부이고 최선일까 두려웠던 날들이 떠올랐다. 구원은 셀프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 조잡하고도 성스러운 구원 앞에 서서 생각했다.

 

아, 눈치 보면서 숨어 지내는 거 정말 지겹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누구는 잘만 나서는데 왜 나는 지금껏 털끝만 건드려져도 둥그렇게 몸을 말아 쥐는 콩벌레 같이 살았을까. 역시 ID_민지3984는 해피엔딩의 가망이 없는 닉네임이었지. 다 끝났으면 좋겠다, 모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나 오래 기대했던 것과는 반대로 손에 쥔 패를 섣불리 던지지 못했다.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뜻을 가진 이름의 효력이 여기에서도 작동하는 것일까. 여전히 답은 몰라도 이 우유부단함은 스스로를 기대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니까, 내게 있을 또 다른 패를 기다리도록 말이다.

 

*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내 이름은 여전히 '민지'이고, 내 삶도 지난 삶과 별 차이 없이 고만고만하게 흘러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름은 그저 인질이고 범인은 바로 나였다는 생각. 이 깨달음에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을 뿐이다.

 

 
이 몸을 끌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에게 어울리는 세계, 나에게 어울리는 시간은 과연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 경향신문, <여성,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신문의 한 지면을 빌려 용감한 여성 '메데이아'를 발견한 크리스타 볼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었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메데이아와 작가 볼프는 시대의 희생양이 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끊임없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성찰했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삶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위의 한문장만 반복해서 떠올렸다. 내가 이름을 바꾼다고 정말 이 세계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처음으로 들었던 것이다. 남들은 손쉽게 건너뛴 삶의 단계를 왜 나만 고난도 퀘스트처럼 붙잡고 있는 것일까 화도 났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서 다시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어떤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연기를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도 막막했다.

 

돌이켜보니 사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내가 나를 더 이상 원망하고 학대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 날 잊든지 말든지 그깟 감상은 개나 줘버리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장 간절했다. 숨고 감추는 일에 한껏 지쳐 있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내 것으로 치장하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 바람에 졸지에 다른 사소한 일상들이 너무나도 버거워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름은 그저 인질, 범인은 바로 나.


개명을 위해 세워 둔 계획을 모조리 뒤로 미뤘다. 실험이라면 실험이고, 그 비슷한 무엇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내가 고작 그 흐릿한 이름 때문에 이 진창에 빠진 게 맞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처음으로 나의 지난 모든 사고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이름 탓 좀 그만두고 싶은 곪은 마음과 함께 어쩌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은근한 희망이 피어나는 꽤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첫번째 패는 그렇게 던져졌다. 지겨운 그 이름처럼 온화하게, 그러나 힘 있게. (旼支)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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