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종로 스케치 4 - 종로3가, 인사동

사물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글 입력 2022.05.3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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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들과 쇠락한 공간과 송해길과 낙원상가와 낭만극장이 내게 젊음에 대해 이야기하는듯 하다. 과거의 젊음이 지금에게 말해온다. 하하 젊은이, 지금은 지나가는 것이고 지금도 자네의 손 틈 사이로 흐르고 있는 것이라네.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도저히 다 알 수란 없는 것, 그렇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요 속으로 물어보았다. 기억하는 것이지, 그리고 지치지 않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누군가 이렇게 답했다.

 

- 지난 에세이, 종로 스케치 3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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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 4층, 야외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그곳엔 이미 인사동이 있었다. 당연한 것처럼 이어진 길을 따라, 아마 벌써 가닿아 있었을지도 모를 그곳. 아직 피로는 다 가시지 않았다. 아마 저곳에는 당당히 흡연할 수 있을 곳이 적겠지, 있다 한들 내가 아직 모르는 곳이다. 길어진 볕의 시간을 따라, 나는 조금 더 늑장을 부렸다. 아직 피곤했기 때문에.


계단을 따라서 낙원상가를 걸어 내려왔다. 그리고 차들이 다니는 지하도를 따라 반대편 빛이 드리우는 곳으로 걸으면 거기부터가 인사동이다. 인사동,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언제나 인사동에 오면 그때 생각이 든다. 자주 오지 않은 탓이겠지.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초입 初入만을 전전하다가 지루함을 느끼곤 이내 돌아 나갔었지. 지금에 그때를 궁금해 보면, 내가 아직 어린 탓이었던지, 아직 늦가을냄새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인지, 이 거리에 불어오는 이질감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었던지, 아니면 혼자 있을 자신이 없었던 탓이었던지, 그중 어느 하나였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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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찻집이 많은 거리다. 아·아가 여긴들 없겠냐마는 여긴 아·아가 지배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수정과의 있을 곳이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는 계피향으로 칠해져 있다. 그 쌉싸름한 갈다홍색의 뉘앙스, 그래서 어린 나에겐 아직 버거운 것, 늦가을의 감각으로 밀어댔을 테다. 이미 바깥의 거리는 아·아가 지배하고 있다. 아·아가 어울리는 공간으로 모조리 탈바꿈되었다는 말이다.

 

아·아는 물론 맛있지, 그걸 맛이라고 칭하는 것이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 거리는 말하자면, 정돈되어 있다 못해 지루해져 버린 세련됨, 먼지와 비 때가 말라붙은 매끈함, 눈을 감은 회색빛, 적절한 무관심과 규격화, 이 땅을 위에서부터 바라볼 때, 격자무늬로 구획한 다음 일제히 꽂아내린 철근, 빽빽한 밀도, 그래, 출근 지하철. 아·아는 그런 거리에 어울리고, 그래서 뿌리내리게 되는 하나의 문화 같다. 


모든 공간이 아이덴티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해보기엔 우리 사는 이곳에 사람 담을 그릇이 충분치 못하기에… 규격화와 아·아는 자연스러움이자 다행스러움으로 지금 느껴지기도 한다. 아·아는 물론 맛있지, 그러나 그 감각은 해소되는 갈증이 주는 감미로움이고, 종국엔 탈수를 일으켜 다시 앗아가 버리는 일시적인 것들이기도 하다. 참 많이 마셨다. 갈증은 거리 내내 있는데, 아무리 마셔도, 마실수록 깊어지는 갈증이라니. 그렇다고 시종 청량음료를 마실 수도, 실론티나 솔의 눈을 마실 수도, 더욱이 우유로 된 것들을 달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아는 그러므로 우리들의 피치 못 할 선택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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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을 추억하며 글을 쓰는 지금, 여전한 갈증이 택한 것은 그러므로 아예 생뚱맞은 것, 1리터 남짓 되는 커다란 야쿠르트이다. 커피를 이미 2잔이나 마신 탓이다. 서설이 길었다. 그래서 인사동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수더분하니 놓여나는 까닭이란, 수정과 냄새가 온 건물에 칠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옥을 이루는 목재가 내는 빛, 고동색이라기엔 붉고, 검붉다고 하기에는 갈색 빛을 놓치게 되고, 갈색이라기에는 깊다. 나는 차라리 그것을 '빛을 머금은 수정과 색'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어린날 어머니가 태워주신 것, 밑동에 붉은칠이 된 유리잔 안에서 빛난 그 색은, 내 유년의 팔레트에 편입된 가장 황홀한 색, 바라만 보아도 황홀한 빛. 색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먹지도 못하고서 눈을 가까이 댄 채 우-와하던 나를 보며 어머니는 무슨 말인가 뱉으셨다. '우리 상덕이, 뭐가 그렇게 좋아?'거나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더 타달라고 해~'였겠지? 어떤 생각이 드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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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칠해진 거릴 거닐고 있으면,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동행도 없이 미어터지는 사람들을 헤치고 가는 것이 순간 피로함을 낳기도 했지만, 완전히 비어버렸더라면 더없이 쓸쓸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건져 올리곤 이내 웃었다. 쓸데없이 핸드폰을 켤 소요, 그래서 거리에서 내 눈을 떼이는 아까운 소요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검정치마를 한 곡 반복으로 틀어두고, 한쪽 귀에서만 울리게 해두었다. 뚱-땅 뚱-땅, 뚱-땅 뚱-땅, 그 박자처럼만 걷고 싶었다. 뒤뚱거리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찻집들이 되게 많았다. 2층, 3층으로 된 찻집 창가 변으로 이마에 난 나이테들이 또렷이 보인다.


개량한복도 많이 보인다. 거리에는 이런 예쁜 상점으로 가득하다. 아디다스와 에잇세컨즈, 슈펜이나 컨버스 등에는 걸리지 않는 내 시선이 걸음걸음마다 덜커덕 걸려댄다. 나는 이런 마네킹 앞에 서면 자주 얼어붙는다. 언젠가 고운 님께 꼭 선물하고픈, 내 얼마 안 되는 갖고픈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선물이 아니라 갖고픈 것, 소유하고픈 이미지이다. 다르게 말해보자면, 아직 얼굴이 비어 있는 심상이다, 저 마네킹 위에 흰 동그라미 하나와 검은 선들이 덧대진, 혹은 귀가 없는 뒷모습으로 있는… 그러고 보면, 나는 소비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갖고 싶은 것이 적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마음속에 덮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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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강렬히 욕망하는 사물은 내게 귀한 감각을 선사한다. 무언가 그렇게까지 갖고 싶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비는 거의 필요에 따라, 긴 망설임 뒤에나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모아야지, 아깝잖아, 정말 필요한 거야? 성인이 되고선 부족하게 살아본 적이 없지만, 오히려 차고 넘치게 쓴 것 같은데, 정작 사물을 구매한 일은 잘 없었다. 먹고 마시는 것과 피우는 것이 8할쯤 되는 것 같다.

 

구매를 망설인 만큼, 구매 이후의 일은 더욱 긴요해진다. 그러니까 정말 필요했던 것인지를 검증하고 안심하거나 실망하고 후회하고 다짐하는 일의 비중이 더욱 커졌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는 잘 사지 않게 되었다. 먹어치우면 곧 눈에서 사라지는 것 말고, 구매하는 순간부터 의도찮게, 혹은 의도치 않았다고 간신히 여겨보는 식으로 그것을 잃어버리는 때까지 사물은 거기 있고, 내 안에 지속적으로 그런 생각을 지펴 올렸기 때문이다.


욕망의 그림자가 흩어지기 시작하는 감각이, 옛날에는 통쾌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것은 갖기 전까지 갈망이라는 스트레스를 드리우고, 갖고 나서는 곧 실망이나 싫증으로 귀결되기가 십중팔구였기 때문이다. 나는 고요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자가동력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란, 이미 그것이 충분히 사그라들어 내가 멈춰버린 순간에나 찾아온다. 좋은 회사를 가겠다는 욕망, 충분한 수입을 벌어들이겠다는 욕망은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을 가고, 좋아하는 것을 갖겠다는 욕망에 뒤잇는 것들이었다.

 

또 그리 재밌지도 않은 격무激務를 버티게 하고, 그 상태를 오래도록 지속시키는 것들의 뒤에도 그런 것들이 자리했다. 나는 고요하고 싶었지만, 멈춰 있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바람은 더욱 구체화 된다. 고요히, 원하는 방향, 원하는 속도대로 떠다니고 싶었구나. 하지만 바람이 멎고 모터가 먹는다면 어떤가. 자연스레 인도하는 누군가의 손이나 열심히 물을 밀어 차는 두 발이 모두 없어진다면... 그래서 요즘의 나는 노 젓는 손을 지으려 고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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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구매한 것은 뭐가 있었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워낙에 적고 드물어서, 퍼뜩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의 방식을 틀었다.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무엇이 있었지? 옷 중에는 잘 없다. 나무시계, 골덴 스니커즈, 서재 書齋와 빔프로젝터, 선물 받은 빈백, 선셋 조명, 시트러스향 섬유 향수, 이 정도다. 1년 동안 소유해본 것 중 아직도 귀히 여겨, 매일 더부는 것은 이 정도가 다이다. 많은 건가? 

 

구매도 어려운 일이지만, 구매한 것과 오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런 사물들은 나의 매일을 이루고 덮는다. 한쪽 팔, 두 발, 등, 가슴과 손목에 매달려 같이 걷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나를 모조리 덮어, 내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겠지만, 아직은 더 걸치었으면 좋겠다. 함께할 것들이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언가 좋아할 것, 사랑할 것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욕망하는 사물. 내가 사물을 욕망하면, 사물에 비치어 그 욕망이 내게로 돌아온다. 그럼 나는 저 사물이 나를 욕망한다는 착각을 가장 먼저 받게 되지. 욕망을 사랑의 얼굴 조각이라고 치자면, 바꾸어 써볼 수도 있겠다. 아침 출근길 2층 버스 앉은 자리서, 걸어놓고 잊어둔 시계가 햇빛을 반사해 저를 알리는 때,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아 땀이 찬 등을 들썩이는 순간 풍기오는 향기가 자신을 알리는 때, 잠깐만큼 기분이 좋아졌듯, 나는 그런 걸 두고 사랑을 한다고 이야기해보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잠깐만 사랑을 느끼고 다시 일상의 감각에 묻히어 잊히고, 또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일련이 빈번해졌으면 좋겠다. 다 다른 감각으로, 여러 가지 사랑으로 왔으면 좋겠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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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어렵게 쌈지길에 도착한다. 인사동 벽돌길을 밟는 순간부터 이미 인도되고 있는 곳, 수많은 수공예품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 끊이지 않는 길을 드리운 곳. 2층부터 4층까지 분절된 길이 없다. 창문에 시선을 박아두고 찬찬히 거닐며, 이따금 매장에 들어서고 나오고 하다가 보면 꼭대기에 도착하는, 그래서 주의가 분산되지 않고서 넉넉히 걸어볼 수 있는 긴 길이다. 매장이 참 많다. 생산하고 짓는 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뜻이다. 서비스업을 하는 나로서는 만드는 이들을 동경하게 된다.


그건 기술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고 창출한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여행 서비스업을 하던 친구가 일을 때려치우고 무작정 농사를 하겠다고 양양히 떠들어대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친구의 말이 참 인상 깊었다. 생산수단을 단단히 소유하고, 직접 무언가를 생산하는 능력을 단단하게 소유하고 싶다는…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흔들리자, 곧바로 회의와 두려움을 느끼곤 뱉어본, 치기 어린 말들이었다. 결국 이듬해 홍수로 산 중턱의 밭뙈기로 이어진 길이 유실되자 그는 충분했노라며, 전부 팔아치우곤 지금 선생이 되었다.


이런 전처로 업이 생기고, 정확하게는 서비스업을 하게 되고 난 지금, 이 매장 매장들이 더 깊게 다가온다. 그건 꼭대기까지 닿는 시간이 더욱 늘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쌈지길에서 걸어본 동선을 빨간 실에 빗대어 머릿속에서 쭈욱 풀어보면, 예전의 그것보다 훨씬 길어져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매장을 들락거린 만큼 들어서고 나오는 동선은 위에서 바라볼 때 매듭같이 촘촘히 나 있을 것이다. 긴 쌈지길을 걷는 동안, 나는 호흡과 맥박과 걸음걸이의 속도를 바라보게 되었다. 지난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하여 훨씬 느리고 완만해져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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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가 급한 편이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해체해오던 것들, 다 열거하면 지루할 것 같다. 천천하고 싶었다. 그래야 굼뜬 동체시력 위로 더 많은 세상이 걸려들 테니. 이날만 봐도 그렇다. 쌩- 지나갔으면 놓쳤을 것들이 너무 많다. 아기자기할수록 그렇다. 또한, 사물 하나하나 눈에 충분히 머금고 지긋이 바라본 다음에 이별하는 반복됨이 가리키는 것, 그 부유함이 갖고 싶었다. 시간은 똑같이, 아니 더 한정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 시간을 사용하는 부유한 태도가 갖고 싶었다. 


나선형태로 쭉 이어진 길인만큼 층을 특정할 수 없지만, 2층 어귀쯤에서 만났다. 가죽 공방 창가에 착 달라붙었다. 가죽으로 된 수첩. 동그란 버튼에 끈을 빙글빙글 둘러 여닫는 가죽 노트다. 관성이 발을 떼려 했지만, 결국 자연스레 이별하는 데 실패했다. 매끈한 가죽, 우둘투둘한 질감의 가죽, 스웨이드, 물에 젖혀 말린 종이, 파피루스 질감의 종이, 여러 번 접어 압착한 종이, 하나같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것, 사물에 열렬한 사랑의 시선이 부딪혀 돌아왔다. 매끈한 것도 좋았지만, 열렬한 이 시선이 난반사 되어 돌아오지 않는 곳, 거기 머물고 머금어지는 곳으로 고개가 고정된다. 스웨이드의 결에 나 있는 보드라운 융털들이 그랬다고 수첩이 설명했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가만두었다. 영업하지 않아도 구매할 거란 걸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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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이드 예찬을 조금 더 늘어뜨리고 싶지만, 그날 구매한 게 많아 생략한다. 사랑하는 사물이 하나 더 생겼다. 글을 자주 쓰는 만큼, 이 수첩은 가방 안에 잊혔다간 영감이 떠오르는 어느 길목에서나 나를 놀래켜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로써 내가 글 쓰는 일을 더 사랑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마저 들었다. 그것만큼 좋은 일이 있을까? 그 길로 인석의 품에 안겨주기 위해 만년필을 찾아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사동 어느 구석에도 만년필을 파는 곳이 없었다. 직접 만들기는 어려운 까닭일 테지.

 

**

 

내가 예상한 것보다 글이 훨씬 길어졌다. 인사동이야 가장 사랑하는 곳이고, 종로 스케치의 구상 단계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이니만큼 당연하다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종로 연작을 하나로 묶는 대주제를 '시간'으로 설정하였지만, 지금 이 글에는 그 주제가 끼일 틈이 없다. 너무 촘촘히 눌러쓴 까닭이요, 도사린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까닭이다. 

 

써놓은 많은 이야기들 중 한 끄트머리를 붙잡아, 글의 뒤꽁무니에 구부려대고 시간에 대해 늘여 쓰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억지스러운 일이 될 것이고, 그 연결작업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과와 매끄러운 마감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문단이 소비되어야 할지 어림잡으면, 비생산적이고 너무 피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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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인사동이야말로 내게 어떤 속성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 그것은 자연스레 이어진 글의 길을 통해 드러나지도, 증명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쓰인 글 중에 어느 것 하나를 빼보자니, 온 문단이 처연하게 '정말?'하고 되물었다. 이 길은 성큼성큼 이어진 길이라서 어느 돌멩이 하나를 빼어도 건널 수 없는 징검다리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이 글에 적어둔 것들 중 의미화를 마무리짓지 못한 것도 아직 남아 있다. 그러니까 인사동 초입의 인상, 아·아와 수정과에 대해서도 해야할 말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것마저 글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그 외, 이 공간을 두고 해 보이고 싶은 의미화 작업이 아직 더 남아 있으니... 전부 담아버리면, 어느 것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만큼 주제가 많아졌다. 그러나 주제는 많아선 안 된다. 그래야 관심을 오롯이 집중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인사동의 여남은 이야기들은 4-2에서 다루고자 한다. 시작은 쌈지길 2층, 가죽공방의 문을 나선 시점부터 다시 이어가겠다. 



계속,

 

다음글 - 종로 스케치 4-2, 인사동 쌈지길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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