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토록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 - Heartstopper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2.05.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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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배경으로 한 하이틴 로맨스는 판타지나 다름없다. 프롬 킹과 존재감 없는 소녀가 사랑에 빠질 확률은 호그와트에서 입학 편지를 받게 될 확률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 ‘말이 안 되는 전개’ 때문에 하이틴 로맨스를 좋아한다. 내 인생을 바꿔놓을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쉽게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조금이라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미래가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꽤 큰 희생을 요구한다. 아마 하이틴 로맨스와 로맨틱 코미디 장르 전반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은 것은 모두가 그런 사랑을 한 번쯤 꿈꿔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두’에는 ‘성소수자’도 포함된다. 내가 좋아하는 저 여자아이가 레즈비언이기를, 그래서 나와 사랑에 빠지기를 바란 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성소수자의 삶을 볼 때면 심란해지곤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스 젠더 헤테로 섹슈얼 간의 사랑이 아닌 다른 사랑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것은 좋았지만, 왜 언제나 그렇게 미완성이고, 고통스럽고, 숨겨져야만 하는지 궁금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성소수자를 다룬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만이 주목받는 것은 그들의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제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 정체성과 성 지향성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도, 고민 끝에 남들과 다른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벅찬 일이다. 그래서 성소수자의 사랑이란 시작부터 끝까지 장애물투성이이고, 특히나 그 배경이 학교처럼 폐쇄적인 공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Heartstopper(하트스토퍼)’는 특별하다. 이 드라마는 거의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사랑스럽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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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 닉과 찰리는 서로 정반대에 있다. 닉은 인기 있는 럭비팀 스타이자,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리지만, 선량한 사람이다. 찰리는 커밍아웃한 뒤 심하게 괴롭힘당하던 범생이로, 가까운 몇몇 친구를 제외하곤 다른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지도 않는다. 둘은 학기 첫날 짝꿍이 되면서 가까워진다. 찰리는 다른 남학생들과 달리 친절한 닉에게 호감을 느끼고, 닉은 범생이인 줄만 알았던 찰리에게서 의외의 매력을 발견한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찰리를 여성 이성애자로 바꾸면 모든 설정은 기존의 하이틴 로맨스 장르가 가진 클리셰를 거의 그대로 답습한다.


그런데도 이 둘의 이야기는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사랑에 빠지는 두 인물의 성별이 같을 뿐인데 이성애 로맨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흐름을 가진다. 이성애 하이틴 로맨스에서 두 주인공의 차이점이 주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하트스토퍼’에서는 닉과 찰리가 게이 커플로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주해야만 하는 문제들이 갈등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닉은 찰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동안 의식하지 않았던 친구들의 동성애 혐오 발언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싸움을 벌이고, 찰리는 커밍아웃하지 않은 닉을 배려하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준다.


기존의 이성애 하이틴 로맨스에서 두 주인공의 갈등은 극 후반부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갈등이 발생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 결국 모든 것이 잘 풀리는 형태이다(‘쉬즈 더 맨’,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등이 대표적 예다). ‘하트스토퍼’에는 그런 종류의 전개가 등장하지 않는다. 둘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은 3화로, 시즌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어쩌면 이것도 두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둘은 이어질 듯 말듯 줄다리기하지도 않고, 거짓말 때문에 오해를 사지도 않는다. 당장 연인 관계가 되는 것보다 그것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한 관계에서, 닉과 찰리는 자신을 숨기려 하기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낸다. 오해가 쌓이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풀어가고자 한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밤낮으로 고민한다. 닉과 찰리, 그리고 주변인들이 갈등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그 나이대의 순수함이 오히려 의젓하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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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에 걸맞게, ‘하트스토퍼’는 퀴어 프렌들리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바이 섹슈얼인 닉, 게이인 찰리를 비롯해 레즈비언, 무성애자, 트랜스젠더, 이성애자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인물들에게 부여한 소수자성을 이용하기만 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게이’, ‘레즈비언’, ‘바이 섹슈얼’, ‘트랜스젠더’ 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닉과 찰리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의 삶에서 성 지향성과 성 정체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닉은 여전히 럭비를 좋아하고, 찰리는 드럼 연주에 재능이 있다. 레즈비언인 ‘태라’는 커밍아웃한 뒤, ‘난 그저 내 삶을 살고 싶어’라고 말하고, 트랜스젠더 ‘엘’은 오랫동안 친구였던 ‘타오’와 사랑에 빠진다. 자연스럽게 BL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여자 지우기’도 보이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가 게이 커플을 이어주기 위한 소모품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레즈비언인 ‘태라’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이 크게 와닿았다. 태라는 오랜 시간 친구이자 연인인 ‘달시’와의 관계를 숨겨왔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태라의 커밍아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는 ‘그저 숨기지 않기로 결정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친구와 가족에게 전부 찾아가 레즈비언임을 말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애인이 있냐고 물어볼 때 ‘달시’의 존재를, 또 달시가 여성임을 숨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떤 이성애자도 두려움을 안고 주변인에게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밝히지는 않는다. 여성에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는 것에 더 익숙하고,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여성을 보면 연인보다는 친구를 먼저 떠올리는 사회에서 이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동성애나 양성애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사랑 역시 이와 같은 정도로 다뤄져야 한다. 내가 연애와 결혼을 하기로 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굳이 밝혀야 할 필요는 없고, 다른 사람의 특별한 상대를 함부로 유추하거나 단정 지어서도 안 된다.


(태라의 이야기에서 또 눈에 띄었던 것은 그가 레즈비언임을 밝히고 직접적으로 들었던 말들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올린 사진에 ‘레즈비언이라기엔 너무 예쁘다’, ‘레즈비언이라니 네 외모가 너무 아깝다’ 등의 댓글이 달리자 태라는 불편해한다. 사회에서 ‘게이 같다’, ‘레즈비언 같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 이유다. ‘레즈비언이라기엔 너무 예쁘다’는 말에는 레즈비언이 이성애자 남성에게 어필할 수 없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여성과 교제한다는 편견이 깔려있다. 외모만으로 누군가의 성 정체성, 성 지향성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이고, 그것이 절대 칭찬이 될 수도 없다)

 

‘직접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동성애자임을 숨기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태라에게 더 쉽게 몰입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좋았던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하트스토퍼’는 성소수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자기 삶을 긍정하게 되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닉은 찰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바이 섹슈얼’이라는 것을 깨닫고, 태라는 막 커밍아웃을 한 뒤 주변의 시선에 아파하며, 엘은 트렌스젠더로 정체화하여 이미 1화 첫 부분에서부터 여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그려진다.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결론에 도달하고, 그렇게 발견한 진정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모두 녹아있는 셈이다.


30분짜리, 고작 8개 에피소드로 이뤄진 이 미니 시리즈에서 닉과 찰리의 로맨스는 성별만 바꾼 이성애 하이틴 로맨스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고민과 아픔까지 생략되는 것은 아니다. 극 중 찰리는 남학교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받고, 폭력적인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한 뒤 성폭력을 당할 위험에 처한다. 물론 가벼운 분위기의 작품인 만큼 그 표현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실제 성소수자가 겪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는 언제나 아웃팅 당할 위험에 놓여있고, 소위 ‘자만추’는 불가능에 가깝다. 성소수자 앱, 커뮤니티가 이성애보다 폐쇄적이면서도 늘 활발한 것은 그 때문이다. 폐쇄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제나 더 큰 위험에 놓여있기도 하다. 데이트 폭력을 쉽게 밝힐 수도 없고,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기 어렵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워버린다고 해서 성소수자와 그들이 겪는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트스토퍼’는 이렇게 간질간질한 10대의 사랑과 성소수자가 마주하는 차가운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다. 드라마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남들과 다를 것 없이 행복하지만, 외부의 편견과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만 한다. 이 커플을 마음 다해 응원하고 싶은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지지하는 친구들, 가족들, 어른들 틈에서 풋풋하고 귀여운 연애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끝이 여느 커플들과 다름없이 이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들의 평범한 ‘연애담’이 더 듣고 싶다.


‘하트스토퍼’를 시청한 한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할 용기를 얻었다고 밝힌 것을 보았다. 미디어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누군가는 ‘하트스토퍼’를 두고 유치하고, 클리셰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하트스토퍼’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흔한 하이틴 로맨스에서조차 성소수자들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던 과거에 고하는 작별이자, 그들의 삶이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 이런 드라마가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제 자라나는 어린 퀴어들에게, 또 그들을 맞이해야 할 수많은 어른에게 이 드라마가 하나의 교본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하트스토퍼’는 이 사회에 다채로운 색깔을 더해줄 것이다.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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