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메일함 속 기쁨 한 통 [문화 전반]

글 구독 서비스의 기쁨에 대하여
글 입력 2022.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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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

 

난생처음 ‘영어로 요가 티칭하기’에 도전한 배우 이하늬가 황홀한 웃음과 함께 한 말이다. 유튜브에서 이 영상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그대로 흡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새로운 것들을 경험할 때마다 나의 젊음과는 무관하게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

 

최근 학업과 노동이라는 반복적인 일상에 ‘새로운 기쁨’을 찾지 못했다. 매일 새로운 하루지만 이하늬처럼 외칠만한 새로운 것은 없었다. 몇 개월째 그런 생활을 이어가던 5월 초, 처음 맛보는 기쁨을 만났다.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하고 외칠 수 있는 그런 기쁨. 이전에는 전혀 몰랐던 기쁨. 바로 ‘글 구독 서비스’다.

 

*

 

2018년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를 필두로 ‘글’ 구독 메일 서비스 시장이 열렸다. 글 구독 서비스란 말 그대로 글을 구독하는 것으로, 금액을 지불한 독자의 메일로 작가가 직접 글을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출판사 등의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작가의 글을 받아볼 수 있다는 특별한 서비스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현재 다양한 작가가 메일링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나 또한 근 몇 년간 글 구독 서비스를 진행하는 다양한 작가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직접 구독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들 중 글을 구독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잘 정제된 책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또 무엇이든 잘 잊는 내가 메일을 꼬박꼬박 읽을지도 자신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기쁨의 기회를 계속 미뤄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유지혜 작가의 메일링 서비스 ‘유지혜 페이퍼’를 구독했다. 작가의 여행 에세이 <쉬운 천국>을 읽고 그의 팬이 되던 때 마침 ‘유지혜 페이퍼 시즌 12’의 구독자를 모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뉴욕에서 여행 중인 작가의 따끈따끈한 글 18편을 단돈 만 원에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받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7편의 글을 받았다.

 

전체 글 중 반도 받지 않았지만, 감히 고백하건대 근래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이다. ‘왜 이제야’라는 후회의 마음보다도 이제라도 글 구독 서비스의 기쁨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다. 대체 뭐가 그리 좋은 건지, 어느 부분이 만족스러운 건지 아직 이 기쁨을 모르는 이들을 전도하는 마음으로 이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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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다리는 기쁨, 미루는 기쁨


 

‘기다리는 메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삶이 더 풍성해진다. 내가 구독한 글은 매주 월수금 오후 1시에 전송된다. 메일이 도착하는 요일이 오면 괜히 핸드폰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이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는 황지우 시인의 시처럼, 메일을 기다리는 동안 울려대는 모든 알람이 웅웅거린다. 그런 마음은 싫지 않고 기쁘다.

 

그렇게 오전 내 긴장하다가 막상 실제 메일 알람은 다른 일을 하던 중에 받는다. 나는 그때 보통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데, 수업을 듣던 중 핸드폰 화면에 알람이 뜨면 머릿속은 일상의 빈틈을 찾아 바삐 돌아가기 시작한다. 글을 집중해서 ‘정독’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을 찾는다. 어떤 일정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직 이 메일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시간. 계산 끝에 그런 시간을 찾으면 기쁜 마음으로 미룬다. 그러면 또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기다리는 마음과 미루는 마음이 만나 기쁨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 내가 선택한 글을 읽는 기쁨


 

나는 작가의 글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분명 글을 받아보는 것에 대한 보상을 치르는 것인데, 어째 그 보상 덕분에 읽는 것이 더욱 즐거워진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나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텍스트를 읽는다. 인스타그램 포스팅, 유튜브 댓글…. 알고리즘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처음 읽은 포스팅과는 너무나 멀어져 있다. 첫 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분명 무언갈 많이 읽었는데 채워지는 것은 하나 없다. 무작위한 글자들 사이에서 나는 그렇게 자유를 잃는다. ‘선택하여 읽을 자유’, ‘보고 싶은 것을 볼 자유’를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메일링 서비스는 100% 나의 선택이자 결정이다. 나는 이 글을 위해 값까지 지불했다. 파도를 타고 어딘지도 모른 채 흘러 들어가 만나는 글이 아닌 나의 가장 사적인 공간 –메일함-에 직접 흘러오는 글. 그런 글을 읽을 때 비로소 나의 자유의지가 실현된다.

 

‘유지혜 페이퍼’가 도착하는 월수금, 내가 선택한 시간에 내가 선택한 글을 읽는 동안 나는 자유하다. 엄지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쓸며 글을 다 읽고 나면, 피로감 없이 개운하다. 한 통만으로 내 안이 가득 채워진다. 읽기 전과 같아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글을 읽는 기쁨은 바로 그런 것이다.

 

 

 

3. 답장할 수 있는 기쁨


 

모든 글 메일링 서비스에 해당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구독하고 있는 ‘유지혜 페이퍼’는 답장이 가능하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당장 작가에게 전화해 “당신 미쳤어요? 어떻게 이렇게 근사한 글을 쓸 수 있는 거예요.”라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내가 쓴 듯 공감 가는 글을 만났을 때나, 나의 세계를 확장해주는 글을 만났을 때 그렇다.

 

물론 어떻게 해서든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겠지만, 글을 읽은 직후의 감정을 온전히 전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터질 듯 벅찬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어 항상 다른 이의 리뷰를 찾아보거나 개인 SNS에 올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왔다.

 

그런데 메일로 도착한 글은 또다시 메일로 답장할 수 있다. 따끈따끈한 마음으로 곧바로 나의 감상을 쏟아낼 수 있다. 하물며 그 수취인이 이 글을 쓴 ‘작가’라니! 작가의 글을 읽고 바로 답장할 수 있는 기쁨. 메일링 서비스를 구독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기쁨이다.

 

나는 6번째 메일을 받고서야 처음으로 답장을 보냈다. 답장해야겠다고 사전에 계획한 것이 아니라, 글을 끝까지 읽자마자 벅찬 마음을 안고 고민할 새도 없이 답장 버튼을 눌러 답을 했다. (물론 당신 미쳤어요?라고 보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답장을 전송하고 나니 그 글은 단순히 ‘읽을 수 있는 글’에서 ‘답할 수 있는 글’로 확장되었다. 나에게 답할 기회와 권리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답장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 글의 수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띠링- 오늘의 기쁨 한 통이 도착한다. 일상의 빈틈을 찾기 위해 머릿속이 바빠진다. 기다리고, 미루고, 선택하고 답할 차례다. 이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아는 기쁨'이 된다 해도 나는 계속해서 읽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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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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