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 지하철 1호선 [공간]

그 안에 어려있는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들
글 입력 2022.05.16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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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시절을 회상하다가 문득 지하철 1호선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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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대학생이 되어 통학을 경험한다고 하지만 나는 고등학생일 때 이미 왕복 세 시간의 통학을 겪었다. 어쩌다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원래 있었던 이사 계획이 막상 입학을 하고 나니 귀신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꼼짝없이 3년간 왕복 세 시간을 통학에 바치게 되었다.


집이 멀다고 해서 전학 가는 건 이미 사귄 친구들이 눈에 밟혀 내키지 않았다. 셔틀버스도 타 보았는데, 막상 셔틀버스를 탄다고 해서 시간이 절약되는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무엇보다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지나가는 1호선을.


매 학기 초 선생님들과의 상담 시간에 어디 사는지 얘기하면 모두들 한 번씩 인적사항을 다시 확인하고 되물어보곤 하셨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 학교까지 오는 게 신기하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다니는지 물어보시면 3호선 타다가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서 쭉 오면 된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학교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리냐는 물음에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대답했다. 나는 매년 반복되는 물음에 1학년 때는 생각하다, 2학년이 되고 나서는 능숙하게, 마침내 3학년이 되어서는 자판기 음료 나오듯 아주 자연스럽게 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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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간에는 기억이 어려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 말처럼 학교에 오고 가며 함께 지낸 1호선에는 나의 고등학교 3년이라는 시간이 녹아 있다.

 

유난히 피곤하던 날에는 졸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다음 역에서 급하게 내려서 지각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반대편 지하철을 탔다. 시험 기간에는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손에 시험범위를 요약한 종이를 쥐고 웅얼거렸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이 나오면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열차의 덜컹거리는 소리에 가사를 놓쳐 5초 전으로 재생 바를 돌리기도, 어쩌다 친구와 중간에 마주친 날에는 친구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떠들면서 학교에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1호선이 배차간격도 너무 넓고, 덜커덩대고, 고장도 자주 나서 집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는 날이 많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이제까지 탈 만큼 탔으니 1호선을 졸업한 이후에는 절대 타지 않을 거라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종 1호선을 탄다. 여전히 1호선은 배차간격이 너무 넓고, 덜커덩대고, 고장이 나서 자주 지연된다. 그럼에도 1호선을 타면 내 나이의 뒷자리 수가 7에서 8로, 8에서 9로, 마침내 9에서 0으로 되던 순간들이 동묘앞역을 지나면서, 회기역을 지나면서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좋았던 기억이 더 좋게, 나빴던 기억마저 어느 정도 재미있게 떠오르니 기억 참 잘 미화된다 싶다가도 그래도 매번 고등학교의 기억을 떠올리며 조용히 웃게 된다. 매 학기 초 상담에서 나온 "학교 오고 가기 힘들지 않느냐"라는 물음에도 항상 "그래도 할 만해요"라고 대답했음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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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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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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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윤
    • 재밌게 읽었습니다.기자님의 고등학교 시절 통학하시는 모습이 생생히 느껴지는 글이었어요.먹다 남은 음료를 들고 지하철에 타도 될지 검색해보다 발견한 기사인데 우연히 저도 1호선을 타고있는 중이었고, 이것으로 통학을 합니다. 정말 놀라운 우연이라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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