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털 난 물고기 모어

별 다를 것 없는 먹고사니즘
글 입력 2022.05.1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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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아이라인 위로 서는 무대


나는 <털 난 물고기 모어>를 통해 모어(毛魚)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표지 위의 각지고 날카로운 턱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덕분에 책은 서평도 읽지 않은 나를 특이한 제목과 턱선만으로 눈길을 사로잡았고, 그렇게 책을 덜컥 집계됐다. 그때야 모지민의 에세이라는 것을 알았다, 책 후반부에 삽입된 사진이 예뻐서 인스타그램도 들어가게 됐다. 작품과 일상이 섞인 공간이었는데, 천상 무대 재질이라는 듯, 충만한 자신감과 퍼포먼스가 얇지만 탄탄한 선을 더 강렬한 인상으로 심어준다. 나 같은 일반인이 예술 병에 걸리기 딱 좋다. 일상에서 쉬이 쓰지 않는 무대 색조 화장과 쇼를 위한 무대 의상, 그리고 꼿꼿한 발끝 포인(point)이 모어가 어떤 무용을 배웠는지 알려준다. 아주 얇디얇은 살가죽 아래로 탄탄한 근육이 그간 얼마나 무용수로서 노력했고, 식사량이 얼마큼 작은지 알 수 있다. 무대 위를 오르기까지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INFJ라는 그녀의 용기가 INTJ로서 생각도 할 수 없는 크기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외면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들의 내면의 가치를 더 돋보이게 만드는 도구이며, 실로 가치는 모든 시련을 견디기로 한 그 내면에 있다.

 

 

수명이 짧은 무용수들이

언젠가 저 무대에서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공연 보는 내내 어쩐지 씁쓸했다

무용수들이 얼굴이 없고 사라지는 몸짓만 있을 뿐

세월에 묻혀 행방이 묘연해지고

겨우 나와 다른 곽객들의 눈에 걸려 있겠지

그리고 나도 그냥 그렇게 아스라이 사라지고 말겠지

그런 얼굴 없는 것들도 있는 법

 

<털 난 물고기> 중 205쪽

 

  

 

별 다를 것 없는 먹고사니즘


 

어떻게 밥 벌어 먹고사나, 지출을 줄이려고 낮은 요금제를 쓰니 와이파이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밥값은 어찌 됐든 아껴야 하니 어떤 메뉴를 먹어야 더 가성비 있게 먹나 고민하고, 다음날 월세는 어떻게 낼지 고민하는 그런 일상이 나와 같다. 몇천 원 아끼기 위해 메뉴는 고민하면서 입지도 못할 옷을 사재끼는 것도 똑같다. 지민은 무대 위의 드래그 아티스트지만, 무대 아래의 그녀는 우리처럼 별다른 것 없는 먹고사니즘을 고민한다. 이태원을 넘어 이제는 은평구 역촌동을, 그리고 이제는 장흥에서 서식 중인 털 난 물고기는 오늘은 어떤 고민을 할까? 누가 청소기 좀 대신 밀어줬으면, 고양이 털이 오늘은 좀 덜 빠졌으면 하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한 치 앞도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인 모지민은 오늘도 고양이 모모와 남편과 함께 하루를 평범하게 보낸다.


 

서울 은평구 역촌동 작은 평수

방 셋 화장실 둘인 집에서

남편과 고양이 모모와 함께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런 가족도 있는 법

 

<털 난 물고기> 중 237쪽

 

 

 

밀집된 감정


 

그녀는 종이 위로 꼭꼭 숨겨둔 감정을 맘껏 토했다. 이리저리 가고 싶은대로 뻗쳐진 감정을 끌어모아 단어로, 문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책이 됐다. <털 난 물고기 모어>에 대한 나의 단상이다. 대한민국의 성소수자로서 겪은 미움과 분노, 내 편인 사람에게 전하는 고마움, 그리고 그리움, 내 곁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과의 행복, 예술가인 작가의 감각까지 더해져 마치 시나 산문처럼 자신이 지나온 길을 회고한다. 그래서 이 감정과 작가의 상황, 그리고 감각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책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도 잘 모른다. 성소수자에 관한 경험은 매체에서 접한 것이 전부고, 화려한 그들의 삶 뒤로 어떤 일이 있을지 감히 어떤지도 모른채, 쉽게 단면만을 보고 공감했을 뿐이다. 여태 보아온 소재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만, 최근 기억나는 건 작품으로는 <포즈>, <센스8>, <오! 할리우드> 등 넷플릭스 작품이 주로 기억이 난다.

 

글로 다시 쓰기까지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머금었을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지나고보니 추억이었다였을까, 아님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을까? 와중에 행복한 기억도 잠시 껴있을테니 영 아니었던 시간은 아니었을테고, 감히 내가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끼순이로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는 현재가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 내 사진들이 전시되었는데 결혼식장으로 걸어가는 과하게 치장된 뒷모습이 평화로운 일상에 난데없이 출몰한 낯선 존재라 한없이 슬펐다. 세상은 축제인데 나는 항상 그 뒤에서 비겁하게 울고 있다. 나는 어쩌자고 태어났을까. 끝이 오고 있기는 한 걸까, 알 수 없는 미래 누가 좀 힌트라도 주었으면. 삶은 늘 난센스 안에서 내팽개친 낙엽처럼 무심하게 잘도 굴러간다.


<털 난 물고기> 중 54쪽


 

털난물고기모어_표지_띠지유_인쇄용.jpg

 
 
 

털 난 물고기 모어



그래서 그런가, <털 난 물고기 모어>는 나에게 한 사람의 에세이다. 단지 나와 선택한 길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를 뿐이었다. 물론 책은 모어(毛魚)가 성소수자이기에 주목받을 수도 있다. 조명 아래로 반짝이는 화려한 모습에 호기심이 들어 눈길이 갈 수도 있고, 아티스트 감성이 돋보여 손길이 갈 수도 있다. 나 같아도 표지의 모습에 끌려 책을 읽기로 선택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특수 조건을 걷어내어도 분명 매력 있는 책이다. 책에 담긴 일상은 절대 순탄하지 않다. 그녀의 삶은 매 순간 도전이었다. 도전을 견디어 현재까지 버젓이 존재하는 이야기는 어딜 가든 수요가 있는 법이다.

 

책은 독특하다. 작가의 말버릇마냥 써던리한 단어 선택과 개성이 묻어난 구조가 여태 읽은 에세이에 비해 특이했다. 그만큼 솔직하고 감수성이 짙은 에세이다. 일상을 주제로 짧은 생각을 정리한 몇백 개의 구절과 소중한 사람과 보낸 평범한 대화, 그리고 아티스트 모어의 24시간 등.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지민의 이야기부터 뉴욕 전위예술의 메카 ‘라 마마 극장’ 무대에 우뚝 서기까지의 여정을 다뤘다. <털 난 물고기 모어>는 내일이 기대되는 에세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았고, 우리에게 치열한 시간을 견디고 직접 다시 마주하며 씹어볼 계기를 만들어준다. 단순한 끌림에 선택한 책이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무언가 그 시간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다면

그 아래 서슴없이 무릎을 꿇을 것이다

 

<털 난 물고기> 중 470쪽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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