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들의 블루스 (1) [드라마]

우리는 그들이었고 그들일 것이다
글 입력 2022.05.2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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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어느새 딱 절반을 달려왔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사람 사는 이야기를 그리는구나, 항상 생각했다. 자극적인 소재와 시청률을 우선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렇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써,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갈 힘을 주는 고마운 작품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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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 삶이 아무리 버겁고 힘들지라도,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라는 메세지를 던져준다. 멋진 삶, 응원받아야 하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응원을 받을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응원을 받는다는 건 참 운명 같은 일이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때론 축복 아닌 한없이 버거운 것임을 알기에.' 삶이란 그런 것 같다. 어느 때는 살아있음에 무한한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는 반면, 또 어떤 때는 삶이 살아내야 하는 과제처럼 무겁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러한 삶의 양가적인 지점들에 초점을 두고 드라마를 본다면 인생에 대한 고찰들이 더욱 잘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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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에 사는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금까지 한수와 은희, 영주와 현, 인권과 호식, 선아와 동석 등 많은 인물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드라마를 볼 때 항상 선과 악을 나누고 주인공만을 응원하거나 나쁜 역할로 나오는 사람은 복수당하기를 바라며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들이 매우 많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악인이 없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이해할 수밖에 없도록 그려진다.

 

그 누구의 이야기조차 가볍지 않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지- 얕게 예상했던 것들을 깨고, 단순히 몇 마디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깊은 이야기들이 매화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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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한수와 은희의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한수와 은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수는 은희의 첫사랑으로, 졸업 후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은희는 제주에 남아 생선 손질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한수는 딸이 가난해서 꿈을 이루지 못한 자신처럼 사는 게 싫어서, 부족한 딸의 유학비를 내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려 한다.

 

한수와 은희가 제주에서 다시 만났을 때, 은희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았던 어린시절 한수가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한수는 돈이 부족해 가족과 동창들에게 돈을 빌리는 자신이 은희가 기억하는 과거의 자신과 너무 달라 힘들어한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바다에 뛰어드는, 공허하게 떨리는 한수의 눈동자와 눈썹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한수가 단순히 자신을 좋아했던 은희에게 그 마음을 이용해 돈을 빌리려는 인물로 그려지지 않아서 좋았고, 은희도 다 알게 되었어도 한수를 욕하는 친구들과 달리 한수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친구로 남아줘서 고마웠다.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라 내가 한수였어도, 은희였어도 이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계속 하며 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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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인 인권과 호식의 이야기다. 둘도 동창으로 과거에는 같은 아파트에 집도 구하고 사돈 맺자고 약속할 만큼 사이가 좋았지만, 현재는 만날 때마다 싸우는 웬수 같은 사이다. 둘에게는 각각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 현과 딸 영주가 있는데, 영주와 현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인권과 호식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로서 이들 사이의 이야기도, 아빠로서 자식들과의 이야기도 계속 눈물이 났다.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을 차마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자신의 뺨을 계속 때리며 운 아버지 호식의 마음이 참 애절했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노력했던 인권이, 아들 현에게 부끄럽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둘이 울며 싸우는 장면도 너무 좋았다.

 

딸도 있는데 도박에 빠지지 말라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에서 인권이 건넸던 말이, 호식에게는 긴 세월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허심탄회하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서로 무릎 꿇고 사과도 하며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기로 한 아버지들의 마음이, 우리네 부모님을 떠오르게 만들어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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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방송된 선아와 동석의 이야기. 선아와 동석 모두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선아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데다 이혼 후 아들을 만나지 못해 힘들어하며 다시 제주에 온다.

 

우울증을 표현하는 드라마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였고, 실제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고 한다. 그냥 앉아있을 때도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온몸으로 울고 있는 것 같았고, 갑자기 도시의 모든 불빛들이 툭툭 꺼져가며 암흑 속에 선아만이 서 있다.

 

힘들어 하는 선아에게 동석은 투박하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툴지만 확실하게 위로를 전한다.

 

"나중에도 사는 게 답답하면 뒤를 봐, 뒤를.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잖아."

 

"슬퍼하지 말란 말이 아니야. 슬퍼만 하지 말라고. 슬퍼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다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어쩌단 웃기도 하고 행복도 하고."

 

슬퍼'만' 하지 말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선아도 우울하고 싶어서 우울해하는 게 아닌데, 그저 슬퍼하지 말라는 실체 없는 수많은 위로들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동석은 다르게, 슬퍼해도 괜찮으니 행복도 하라는 위로를 건넸다. 아들만 생각하며 힘들어하지 말고, 등만 돌리면 다른 행복한 세상이 있으니 그 세상도 보라고 말해준다.

 

아직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과거의 우리였고, 지금의 우리고, 미래의 우리가 될 주인공들의 인생사를 들을 생각에 설렌다.

 

 

[최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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