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소소한 집 꾸미기

글 입력 2022.05.1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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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가면 네 방 꾸며줄게.”

초등학생 때, 엄마가 내게 한 약속이었다. 한창 내 방을 꾸미고 싶어 한 때라 그 약속이 매우 반가웠다. 이사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엄마가 약속을 잊어버린 것 같진 않았다. 천장에 야광 스티커를 붙여줬으니까. 나는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야광 스티커로 만족했다. 그래도 상실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야광 스티커를 보며 나를 위로했다.

겨울에는 추워서 동상 걸리고 여름에는 더워서 지칠 때나 가족들의 물건이 공간을 차지하고, 벽의 붉은 개미를 볼 때마다 고개를 들어 야광 스티커를 바라봤다. 그리고 희망을 품었다. 어른이 되면 내 방을 꾸밀 수 있을 거라고.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하게 됐다. 어른이 되었고 독립도 했지만, 방을 꾸밀 수 없었다. 기숙사에서 살아서 불가능했고, 자취할 때는 친한 언니와 함께 살아서 온전한 내 공간이 아니었다. 직장인이 되었을 때는 학교에서 통근하다가 급하게 친척 집에 살게 돼서 내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그 후에는 고시원에서 살거나 친구와 함께 살면서 현실에 부딪히다 보니 품었던 희망은 어느새 사라졌다. 함께 살던 친동생이 본가로 내려간 후, 혼자가 됐는데도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고른 집이 아닌데다 습기와 곰팡이, 매연이 있는 반지하인 집이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피부질환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제야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고른 집에서 살게 됐다. 나 몰래 희망의 싹이 자란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약 5년 후,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집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이사 전에는 좀 더 좋은 집을 골라서 하루빨리 새집에 가고 싶었지만, 막상 새집에 오니 전에 살던 집이 자꾸 생각났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으면서 이상하게 생각이 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이사한 집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나름 예쁘게 사진도 찍어보며, 눈에 담았다. 몰랐던 장점이 있는지 살폈다. 그러고 나서야 전에 살던 집과 제대로 이별하고, 새집에 마음을 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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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이라 깔끔하고, 그대로 둬도 좋은 인테리어와 큰 창문, 낮의 풍경과 야경, 해가 들어오면 노을빛으로 물드는 집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다 자란 희망이 존재를 드러냈다. 이곳을 더 예쁘게 꾸미고 싶었다. 누가 봐도 정말 예쁜 것이 아닌, 나만의 색으로.

‘나만의 색’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 취향, 관리 등을 염두에 두며 이 집만의 색도 지키고 싶었다. 오랫동안 품었던 희망이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것을 반복한 만큼 자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주의사항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오브제나 가구를 배치하고, 셀프 인테리어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 방법은 새집과 더 친해질 수 있으면서 나만의 공간을 인지하고, 애정을 갖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는 방법이었다.
 
큰 창문과 창문 밖 풍경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창문에는 선물 받은 인형 몇 개만 놓았다. 길게 뻗은 직사각형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으면 해서 가구는 정말 필요한 것만 배치했다. 풀옵션이라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생활에 도움 되는 소소한 것들로 꾸몄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텅 비어 보이겠지만, 이 집만의 특성이 그대로 보이는 게 좋았다. 억지일지 몰라도 미니멀리스트의 집 같기도 했다.

창문 앞에는 책상을 놓았는데, 바퀴를 달아 여기저기 옮길 수 있었다. 창문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놓을 수 있고, 한쪽만 보게 할 수도 있었다. 기분에 따라 책상을 이리저리 옮기니 날마다 색달랐다.

외출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보이는 나만의 색으로 꾸며진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빨리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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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의욕을 잃은 채로 살던 어느 날, 연인의 조언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집 안 구조를 조금 바꿨다. 책상과 침대의 위치를 서로 바꾸었다. 이번에는 창문 앞에 침대를 배치했다. 전에 비해 덜 넓어 보였지만, 집안이 새롭게 보였다. 책상 앞에 앉아 보던 창문 밖 풍경을 침대에서 보니 색달랐다. 비록 시력이 매우 안 좋아서 일어나자마자 창문 밖을 볼 수 없었지만, 휴식할 때 침대에 앉아 내려다보면, (매우 높진 않지만) 구름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기상 시 여유가 있을 때는 안경을 끼고 블라인드를 쓱쓱 올려 하늘을 보는데, 그 순간만큼은 잡생각이 사라진다.

구조를 조금만 바꿨는데도 달라진 일상을 경험하면서 작은 변화로도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집에서 보낸 나날들을 되돌아봤다. ‘나만의 색’으로 집을 꾸미면서 어릴 적 품었던 희망을 이뤘다는 성취감에 기뻤다. 단지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들처럼 무언가를 많이 하거나 집을 예쁘게 꾸민 건 아니지만, 소소하게 꾸미면서 애정도 깊어졌다.

조명, 인테리어, 가구, 패브릭 등을 많이 활용한 것만 ‘집 꾸미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만의 색을 담아 그 공간에 애정이 생겼다면 이것도 ‘집 꾸미기’이다.

패션에서 다양한 스타일 중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처럼 ‘집 꾸미기’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면 된다.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옷을 입을수록 스타일의 변화가 생기듯이 ‘집 꾸미기’도 집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변화한다.

나는 앞으로 집 꾸미기 스타일이 어떻게 변할까? 상상만 해도 흥미롭다.
 
 
[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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