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구술 문화의 회복 - 플레이백 시어터의 길

글 입력 2022.05.0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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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물질론적 세계관에 발 딛고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사고하고, 느끼고, 생존하는 모든 일이 물질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물질을 향해서만 끊임없이 전진하고 느낀다 해도,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번성하기 위해 태어났고, 번성의 중심에는 물질이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섬세한 감성과 상상력은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는 그것들을 교양 이상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오늘 리뷰할 '플레이백 시어터의 길'은 그런 생각을 멈춰 세우는 책이다. 이 책이 '플레이백 시어터'라는 하나의 연극 형식을 소개하는 책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은 확신을 하고 내달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세계를 멈춰 세우는 힘이 있다. 아마 현실적 공간과 플레이백 시어터가 구현한 공간 간 대조가 우리를 고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백 시어터가 구현한 그 간극이야 말로 섬세한 감성과 상상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예술이 위대하고 불멸한 부분도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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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londonplayback

 
 
 

입문자를 위한 책


 

책의 구성은 플레이백 시어터를 소개한다는 명료한 목적에 맞게 다섯 가지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다. 차례대로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책은 먼저 플레이백 시어터의 개요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 기반이론과 지향하는 가치를 기술하고, 심리 치료와 연극이라는 범위 내에서 적절한 경계선을 긋는다. 이어 구체적으로 연극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역할에 관해 기술한다. 마지막으로는 간단한 역사와 미래에 관해 기술한다.

 

이처럼 책은 목적에 맞게 충실하게 내용을 전달하고 있지만, 개론서에서 기대되는 것 보다는 적은 정보를 전달한다. 책은 연극의 전체적인 구조를 골똘히 생각하게 하기보다는, 사회 구성원과 개인의 관계를 묵상하게 한다. 각 섹션은 제목에서 기대하는 바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각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고 경계 짓는 대신 독자의 생각을 유도한다.

 

이 책이 일종의 개론서와 가벼운 기사 사이의 무언가로 기술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추정된다. 첫째, 이 책은 낯선 연극 형식인 플레이백 시어터를 처음 접하는 극단과 관람객을 위해서 쓰였다. 사실, 극단보다는 관람객을 위해서 쓰였다는 느낌이 있다. 따라서 책은 컨덕터나 배우에게 요구되는 스킬과 복잡한 이론들을 배제하고, 플레이백 시어터가 최종적으로 만들어나가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술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모든 구성원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구현해야 하는 연극이다. 이 과정에서 연극 형식의 이해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플레이백 시어터를 처음 관람하는 관람객이라면, 이 책을 시작 전에 읽고 들어가는 것을 권한다. 집중해서 읽으면 두 시간도 안되어서 읽을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라면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것도 좋다.

 

둘째 이유는 좀 더 이 연극 형식에 관심이 있는 창작자를 고려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컨덕터나 배우, 악사보다는 관객을 위해 쓰인 느낌이 있다. 책은 플레이백 시어터의 개요를 적절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이론과 기술을 많이 전달하지 않는다. 아마 이 부분은 텍스트로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이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플레이백 시어터는 퍼포먼스의 퀄리티나 연출과 시나리오의 구조적 완결성을 지향하기보다는, 경험을 나누고 구현하는 상상적 공간을 구현하는 데 목표를 둔다. 책에서 기술했듯, 좋은 공간을 만들어 내는 역량은 순발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텍스트로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일 뿐만 아니라, 그래야할 필요도 없다. 책은 플레이백 시어터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루트를 소개하기 때문에, 플레이백 씨어터를 구현하는 극단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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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londonplayback

 
 
 

모두의 즉흥연극


 

플레이백 시어터는 일반적인 극장과 비슷하게 무대와 객석이 있다. 하지만 그 중간에 플레이백 시어터의 진행자인 컨덕터와 악사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연극이 시작되면 컨덕터가 플레이백 씨어터에 관해 가볍게 설명하고,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관객들은 컨덕터의 질문에 답을 하고, 배우들은 그것을 듣는다. 화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은 다음, 컨덕터는 무대를 향해 "함께 봅시다"라고 이야기한다.

 

배우들은 마임, 음악, 대사를 통해 배우들이 이해한 내용을 기반으로 즉흥 연기를 시작한다. 배우들은 각자의 해석으로 연기하지만, 아까 들은 화자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배우들은 재현된 이야기를 다시 물어본 관객에게 돌려준 후 적절히 구현했는지 인정을 받고, 다음 화자로 넘어간다. 다음 이야기는 이전 이야기와 이어질 수도,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함께 찾아내면서 끝낸다. 컨덕터는 이러한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중심을 잡는다.

 

이처럼 플레이백 씨어터는 관객의 즉흥적인 이야기를 통해 구성되는 상호소통 연극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고, 이에 기반을 두어 타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이해한 방식을 다시 표현해야 한다. 나아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기 위해 삶의 지혜를 찾아내야 한다. 형식은 연극이지만, 여러 관점을 통합하는 훈련을 한다는 점에서 교육이고 나의 경험이 이해의 공간에서 다시 재현된다는 점에서 치료적 장면이 된다.

 

이에따라 명확한 언어로 '플레이백 씨어터'를 정의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이론적으로 플레이백 시어터의 경계선을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백 시어터를 다른 장르로 연결짓기는 어렵다. 개인적인 이해를 더해보자면, 이것은 공동체의 종교적 의식에 가깝다. 오래전 우리의 선조가 그릇에 물을 담아놓고 공양을 드렸던 것처럼, 플레이백 시어터의 무대도 특별하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갈망을 마음에 품고 산다. 아주 간단한 매개체-종교, 예술 등-만으로 그것은 쉽게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그리고 통합된 순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함께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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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londonplayback

 

 

 

공감과 희망, 공동체의 힘


 

플레이백 씨어터는 아주 오랜 시간 인류가 무엇을 통해 사회를 이루었는지 짐작게 한다. 2022년은 하이퍼 텍스트의 시대다. 우리는 파편화된 의견을 플랫폼에서 주고받는다. 개인의 의견은 스테인드 글라스의 파편처럼 여러 색깔로 빛난다. 하지만 우리는 맞춤화된 알고리즘 속에서 조각에 집착한 나머지 집합체를 감동 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구술문화의 시대에 사람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사람의 존재감은 공감의 범위를 확대한다. 구술문화 시대의 정보는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전달되었지만, 공동체 유대감이 있었다.

 

내가 이렇게 기술한다고 해서, 하이퍼텍스트 시대 위에 구술문화의 시대를 놓는 것은 아니다. 하이퍼 텍스트 시대는 개인의 사고를 성장시키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개선했다. 인터넷은 우리의 문명을 크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타인과 시공간을 점유할 기회를 잃어왔다. 문명의 근간이 그곳에 있음에도,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힘이 이상적인 공동체에서 나옴에도 말이다.

 

플레이백 씨어터는 그런 사회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연극은 예술가의 지위를 해체하고, 모두가 동등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공공의 장소에 놓음으로써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치료적인 공간에서 스스로 존재하게 한다. 수많은 플랫폼에서 오가는 텍스트와 이미지 속에서 사라진 타인의 존재를 다시 일상생활로 돌려놓는다. 타인의 존재를 통해서 개인은 비로소 존재한다. 플레이백 씨어터가 위대한 점은, 예술적 형식을 통해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낯선 타인과 함께 교감하게 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물질 사회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 그러니까 예술의 위대함과 불멸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책의 이름은 플레이백 시어터의 '길'이다. "나만의 길을 가겠어"라는 말처럼, 일상용어에서 길은 공간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플레이백 씨어터도 마찬가지다. 최종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만드는 것보다, 그것을 나누고 통합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느리고 모호한 과정은 최적화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 과정 자체가 인간이 공동체를 구성해야 했던 이유다. 아직 플레이백 씨어터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그 필요성만은 절실히 느낀다. 이 감동적인 연극을 경험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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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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