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할머니랑 단둘이 산다는 건 [도서/문학]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읽고
글 입력 2022.05.0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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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은 할머니들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ㅎ동 집으로 왔다. 유리그릇에 파김치와 열무김치를 덜어 담고, 삼계탕은 사기그릇에 담아 할머니들 앞에 하나씩 두고는 나도 자리를 잡았다. 할머니들이 어쩐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닭의 살을 발라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할머니들은 수십 년째 복날이면 같이 삼계탕을 나눠 먹고 있었다. 복날에는 삼계탕을 나눠 먹고,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지어 먹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함께 먹는 사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좋은 날 같이 보낼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라고 할머니는 언젠가 내게 말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할머니를 살게 했던 사람들은 나나 엄마가 아니라 아가다 할머니와 글로리아 할머니였는지도 모르겠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 91쪽

 


인생은 아주 구체적이라서 어느 것 하나 평범하기가 어렵다. 텔레비전 속의 도란도란한 가족도, 따뜻한 부모님과 할머니의 보호 아래 지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수많은 희생을 뒤로한 풍경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평면적이지만은 않다. 우리 할머니는 엄청나게 희생적이고 또 엄청나게 요리를 잘하시지만 약간 소심하거나 신경질적인 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와 사는 건 꽤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아주 좋다. 수도권에 살면서 학업과 편안함을 함께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할머니의 평생의 땀으로 얻은 한 채의 집에서 둘이서 산다. 얹혀사는 처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당신의 호의에 기대어 보살핌을 잔뜩 누리는 중이다. 할머니랑 살다 보니 할머니들이 꼭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점차 알게 된 할머니의 귀여움과 함께 살며 느꼈던 점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

 

나이 드는 건 뭘까? 세월은 우리에게 부침만 주는 걸까? 80년 가까이 사용해온 몸은 점점 어딘가 고장이 나고 주인의 말을 안 들으며, 젊은 시절과 다른 몸의 내구성에서 오는 아쉬움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걸까?

 

우리 할머니는 “늙지 말아야 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신다. 이래서 늙지 말아야 돼, 하는 말의 ‘이래서’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말을 잘 못 알아 들으실 때, 집 앞 10분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에 갈 때도 돌아오는 길에 꼭 길가에 앉아서 쉬는 것, 젊으셨을 적에는 금방 끝냈던 집안일을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릴 때.

 

시간은 흔적을 남기고 그런 궤적을 실감하며 사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할머니와 병원에 동행하는 일이 잦은데 그래서 요즘에는 병원 내역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4월 4일, 안과. 어떤 병원에 갔고 의사는 뭐라고 말했는지, 또 무슨 약을 처방받았는지 적어두는 건 내 몫이 되었다. 할머니의 아픈 부분을 기억하고 진료 내용을 정확히 알려고 귀기울이다 보면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크기변환]KakaoTalk_20220509_015016669.jpg

 

 

나누는 기쁨에 대해 배우기도 한다. 할머니는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전인화 배우만큼이나 손이 크시다. 다섯 자매를 키우고 새벽부터 밤까지 수십 명의 손님을 먹이는 식당을 운영한 경험 덕에 내가 아는 누구보다 한 번에 많은 음식을 만들 줄 안다. 나와 둘이 사시면서도 요즘 우리 세대처럼 1-2인분의 음식을 하는 일이 없다. 근처에 사는 딸들이 덜 수고롭도록 반찬을 나눠주기 위해 넘치도록 장만한다. 그리고 음식을 배달하는 건 내 몫이다.

 

음식은 나누는 만큼 돌아온다. 우리 윗집의 이모와 이모부는 예고 없이 초인종을 누르는데 이는 아주 좋은 소식이다. 문을 열면 주로 치킨이나 타코야끼 같은 주전부리가 손에 들려 있는 걸 발견한다. 교회 지인분들을 위해 한가득 고추 장아찌를 담아 예쁘게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면 또 어느 날엔 문 앞에 쑥갓이 담긴 상자가 놓여 있다.

 

할머니의 돌아올 것을 바라지 않는 나눔은 그 자체로 대단해 보인다. 주는 만큼 받으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대신, 풍성하게 나누고 먼저 사랑할 줄 아는 게 진짜 배포가 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가 더 용기 있는지 그리고 진짜 멋진 사람인지 배우는 시간이다.

 

말하는 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기도 한다. 할머니와 나 사이에 대화가 아주 잘 되는 건 아니다. 가끔은 상호 독백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상대의 말에 반응하기보다는 그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주로 옛날 얘기를 많이 한다. 할머니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으신데, 그 후 풀리지 않는 답답함과 화를 마음속에 누르면서 사셨던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서 가끔 그때로 돌아가시곤 한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원망하고 화내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러면 나는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그냥 가만히 들어드리는 방법을 택한다.

 

나도 할머니도 서로에게 아주 좋은 상대는 아닌 것 같다. 대화하는 상대는 모름지기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할머니의 아픔과 고통을 실감하지 못하고 할머니께 나의 고민은 조금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또래 친구에게 할머니는 전화를 한다. 큰소리로 말하고 웃고 울으면서 할머니는 그 시절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서로 인생을 한탄하고 안쓰러워하면서 회복되고 위로받는다. 서로가 서로의 치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역할은 내가 해드릴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어떤 실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할머니의 삶을 이야기하다 보면 누구나 몇 번의 실수를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럼 나는 묻는다. “할머니는 어떤 실수를 했는데요?” 그럼 할머니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문다. 함께 사는 손녀에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진하게 남아있는 마음의 빚일 테다.

 

그러면 나도 생각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아주 잘못했던 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도 이십 대 초반에 뭣도 모르고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려 똥오줌 못 가리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비도덕적인 일에 마음속으로 동조하고, 옳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한다면 그건 용서된다고 믿었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바라보았다. 결과는 과정의 옳음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런 나에게 할머니는 실수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는다. 누구나 실수하고 당연히 실수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실수를 딛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실수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생각해 내는 게 할머니의 방식이다.

 

또 할머니의 전화를 엿듣다 보면 죽음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들린다. 전화 통화를 하실 때도 “갸 어떻게 지낸대?” 하면 죽었다는 답변이 올 때가 많다. 할머니 나이쯤 되면 아프거나 죽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크게 놀라지도 않는다. 조금 놀란 상태로 그 사람의 생전 모습에 대해 그들이 기억하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무슨 일 때문에 죽었는지를 묻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다양한 지병과 갑작스러운 사건들로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죽는다. 이유 없이 왔다가 이유 없이 간다.

 

할머니는 죽음이 가까이 있고 분명히 그걸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급하게 먹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 단정히 집을 가꾸고 오늘 뭘 해 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할머니의 선택이다. 꽤 멋지다. 다가오는 걸 멈출 수는 없고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일단 지금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다.

 

처음 할머니와 살았을 때 집안일에 대한 잔소리가 너무 많다며 이모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던 적이 있다. 샤워를 한 후에 욕조와 벽의 물기를 닦고 혹시 있을 물때를 전부 박박 없애야 한다면,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만 씻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머니의 까다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이모는 그래도 ‘할머니는 귀여운 면도 있다’고 답했다.

 

처음엔 코웃음을 쳤다. 할머니가 귀여우면 얼마나 귀여우시려고? 1년 넘게 함께 시간을 보낸 지금, 나는 할머니의 귀여움을 꽤 많이 발견했다. 할머니는 식물과 돌을 엄청나게 좋아하셔서 베란다에서 자주 키우시는데 좋아하시는 만큼 그것에 재능이 있으신 것 같지는 않다. 같은 시기에 이모와 할머니가 치자나무를 집에 들였는데, 몇 년이 흐른 지금 이모네 치자는 내 키만큼 자랐지만 할머니의 것은 A4용지만 하다. 꽃나무도 여러 그루 하늘로 보냈는데 그 이유는 아마 물을 너무 많이 줬기 때문인 것 같다. 또 한 번은 아파트 화단에 작은 꽃을 옮겨다 심으셨던 적이 있다. 아파트 화단 관리를 하던 어느 날 조경사분들이 할머니의 꽃을 뿌리째 뽑아버렸고 아직도 이를 두고두고 속상해하신다. 꽃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마음이 오히려 과해서 식물을 죽이고 마는 것이, 그리고 그걸 너무 잘 알고 계시면서도 좋아하는 걸 그만두지 못하시는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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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작은 화단)

 

 

또 할머니의 반지나 팔찌를 본드로 붙여서 고쳐주면 엄청나게 대단하게 보는 것도. 사소한 집안일에 밥값 했다며 어색하게 칭찬하는 것도 왠지 웃기다. 함께 사는 건 소소한 귀여움을 발견하는 일 같다. 나만 아는 포인트들이 늘어나고 친근함과 애정이 퐁퐁 솟아나는 걸 느낀다.

 

*

 

그래서 요즘에는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언젠가 할머니가 나의 인생을 1/3쯤 구성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내게 엄마 아빠가 삼분지 일씩 무언가를 줬다면 성인이 되어 만난 할머니는 그것만큼 귀하고 소중한 유산을 내게 남긴 것 같다고.

 

나는 당신과 최대한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 할머님의 아픈 곳을 두드려가며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은 상태로 쭉 같이 있으려고 한다. 그러려면 더 많이 걷고 움직이셔야 하고, 너무 아픈 관절들은 덜 사용하셨으면 좋겠다. 최대한 많이 길게 함께하기 바랄 뿐이다.


당신이 내게 의미 있는 만큼 나도 할머니 마음 깊숙이 들어가고 싶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누구보다 아끼는 그놈의 손자들을 다 치워버리고 1등 손녀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건 내 욕망이 아니라 욕심이다. 나는 그냥 제일 가까운 곳에서 많이 듣고 말하고 제일 많이 함께한 손녀이고 싶다. 할머니께 상처 주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 안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드리기로 했다. 많이 받은 만큼 많이 돌려드리는 목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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