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의 보자기 [미술/전시]

제이슨 마틴의 수렴展을 다녀오며
글 입력 2022.05.0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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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으로 무언가를 포장할 때 세계는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설령 딱딱한 것이라 할지라도 내용물은 포근히 감춰지고 곱게 여민 외관만이 남는다. 마치 제이슨 마틴의 신작 회화처럼. 캔버스 전체를 에워싼 채 작품 내부로 향하는 작가의 섬세한 붓놀림은 왠지 후로시키(ふろしき) 특유의 포장 방식을 연상시킨다. 각각의 작품들은 일련의 선물 보따리와 같다. 작품의 중심축이자 하나로 수렴되는 접점은 섣불리 풀기 조심스러운 단정한 매듭을 닮았다. 비단의 일반적인 질감을 떠올려보면 밑바탕인 알루미늄의 단단함은 매끈한 붓질 앞에서 힘을 잃고 다소 말랑한 상태로 변환되어 버렸다.

 

후로시키는 대개 여러 기능을 갖는다. 무언가를 감싸거나, 고이 접어 크기를 조절하여 사용하거나, 문양에 따라 표식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그렇다면 제이슨 마틴의 알루미늄 회화는 어떤 유형의 보자기에 속할까. 은은한 광택의 덧칠된 안료 아래에 숨겨진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의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작품의 알루미늄 배경이 끊임없이 나름의 빛을 포착하고 반사하듯이 이는 단순히 작가 한 사람의 고정된 마음이 아니다. 작품 앞에 설 때마다 그 너머로 자유분방하게 아른거리는 상들이 실은 우리 내면 풍경의 그림자일수도 있다.

 

작가는 회화를 궁극적인 결과에 닿기 위해 항해하는 일종의 명상이라 말한다. 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잡념을 비우고 현재 당면한 변수들에 집중하는 수행이다. 특이점을 꼽자면 그의 알루미늄 회화는 작품의 표면에서 무수히 많은 빛분자들이 미세하게 다른 정도로 제각각 분산되는 등 마냥 고요하진 않다. 가시적으로 확인될 수 없을 뿐 분명 존재하는 이러한 역동성이 우리 정신의 운동과 흡사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작가 본인의 의식 전반을 은유하고 있으며 작품 창작 과정에서 다양한 관념과 감정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음이 우리에게 시사된다.

 

작가의 이번 신작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파스텔색을 띤다. 이처럼 채도가 낮으면서도 고명도인 색들은 보통 진정 효과를 지닌다. 온화한 느낌을 풍기며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솜사탕 색감의 회화들은 손쉽게 우리의 긴장을 완화하며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내면을 오롯이 마주하려면 연약한 지점까지도 모두 감싸 안을 수밖에 없기에 작가에게 작품의 표면은 결국 시공간의 한계를 딛고 자아를 조우하게끔 이끄는 경계인 셈이다. 그가 언급한 바 있는, 작품들에 내재된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긴장감은 이와 같은 만남에 기인하여 발현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작가의 알루미늄 회화에는 오쿠(おく)의 미학이 잘 담겨있다. 이는 그의 이번 신작들이 우리나라의 조각보가 아니라 후로시키에 훨씬 근접하다고 판단하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일본은 한자 문화권인 아시아 국가들 중에 깊숙한 속이란 뜻의 ‘오(奧)‘라는 단어를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나라이다. 우리말로는 ‘내(內)’와 ‘심(深)’이 합쳐진 단어라 이해하면 맞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신작들은 보자기의 물성에서 착안하여 작가가 오쿠의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오쿠유카시(おくゆかし-い)’, 곧 그윽하고도 고상한 속성을 획득한 것으로 해석된다.

 

“약 25년 전 일본의 차(茶) 거장이 내게 기모노 보관을 부탁했다. 런던에서의 어느 날 일본 가마쿠라에서 온 야마다 소헨이 내게 보자기에 포장된 정장 기모노를 맡겼는데, 아직까지 찾아가지 않았다. 곱게 지어진 매듭을 내 능력으로 다시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한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 제이슨 마틴

 

때로는 포장 자체가 내용물 만큼 중요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의 알루미늄 회화 역시 그렇다. 굳이 매듭을 풀지 않아도 된다. 그저 포장 자체에서 체감되는 애정의 농도를 통해 자유롭게 그 너머의 마음을 상상해 볼 것을 권한다. 미끌한 진심일지라도 이따금씩 마음의 눈을 통해 붙들리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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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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