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호모스크립투스의 삶 [문화 전반]

살아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기록하는 삶 그리고 사람.
글 입력 2022.05.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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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를 매일매일 기록한다.

 

그들과 했던 대화를 기록할 때는 디테일할수록 좋다. 대화를 글로 옮기다 보면 내가 듣고서 놓치고 있는 단서를 파악하거나, 당장 필요한 것들이 어떤 것인지 우선순위를 세우고 도움을 주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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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일을 시작하고서 꾸준히 트레이닝 하다 보니 한 달 전 대화도 생생히 떠올리며 기록을 할 수 있게 됐을 정도로 더욱 좋아졌다. 그렇지만 워낙 많은 사람과 대화를 주고 받다 보니, 사람이 잘 기억나지 않으면 그 대화까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화를 주고받은 뒤에 중요한 이야기들은 카카오톡에 있는 나와의 대화창에다가 상대방의 이름과 함께 키워드를 바로바로 짧게나마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행사를 진행하거나, 물품을 전달 드릴 때에는 꼭 기록을 남겨야 한다. 증명해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핸드폰 앨범에는 업무와 관련된 사진들이 가득하다. 불과 10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원래도 개인적으로 사진을 자주 찍었지만, 이 정도로 용량이 꽉 차진 않았던 것 같은데 (?) 핸드폰 기기 용량을 훌쩍 넘은 것은 물론이고, 2TB의 클라우드를 결제하여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딜 갈 때마다 카메라 렌즈로 세상을 담아버릇 한 것이 초래한 결과지, 뭐.' 생각하며 매 달 꼬박꼬박 지불 중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기록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때는 단순히 글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괜히 멋져보였다. 그래서 누가 보지 않아도 종종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곤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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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글 형태는 일기였다. 학교에 제출하듯 쓰는 일기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하긴, 숙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미 없고, 목적 없이 하는 일을 그 떄부터 싫어했구나' 새삼 놀랍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나만의 '진짜 일기'를 써보고 싶었고, 그렇게 쓰는 행위를 시작했다. 사실 일기는 그 이름처럼 매일 써야 하는 것이지만,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중간에 흐지부지 될 때가 많았지만,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때 들인 습관 덕에 성인이 된 지금도 일기를 쓰고 싶을 때면 수기든 타자로 치든 하루를 정리하는 글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한참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동기부여 하고자 아날로그 형식의 스터디플래너를 썼다. 하루를 정리하기에도 좋고, 공부하는 중간에도 투두리스트에 줄을 그어가며 오늘 할 일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는 것이 좋았다. 사실 '미루기 대마왕'임과 동시에 '무계획이 계획이다!'라고 생각하는 타입이기에 리스트 같은 건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그 때는 억지로라도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컸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귀여운 스터디플래너에 매일 일기 쓰듯 공부할 양을 정해두고 공부한 만큼을 기록하는 행위였다. 그렇게 기록하다보니 조금 더 길게 쓰고 싶어졌다. 요상한 욕심 덕에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고, 일 년 동안 열심히 한 덕분에 대학교에 간신히 입학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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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함께 기록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두었던 또 다른 수단은 '사진'이었다. 막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에는 사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저 나의 감성을 담뿍 담아 하루 중 가장 인상 깊은 혹은 찍고 싶은 피사체를 담는 것으로 기록하였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을 거다. 집에 굴러다니는 아무 디카를 손에 쥐고 이것 저것을 찍었다. 혼자 출사를 다니기도 했다. 사진에 대한 관심은 그렇게 조금씩 커져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사진부 활동을 잠깐 하기까지 이르렀다. 잘 찍는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였지만,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장비에도 욕심을 내게 되었다. 세벳돈 통장을 몽땅 바쳐 DSLR을 구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어린 나이에 전재산을 털어 카메라를 구입할 만큼 사진에 진심이였던 나는, 점차 내가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영상보다는 생동감이 없지만,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훨씬 집중하여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지금은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몇 년 사이 아주 좋아진 핸드폰 카메라로 이것 저것을 찍고 다닌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자아가 형성되고서부터 기록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늘, 기쁘거나 슬플때도 난 끊임없이 쓰거나 찍었다. 그러다 의문이 생겼다. 어린 시절부터 난 왜 그렇게 기록하고자 했을까? 싸이월드에도 내 사진을 자주 올리지 않았던 부류였기에 자랑하고자 했던 것도 아니였을 텐데 왜 그렇게 쓰고 찍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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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기억은 무척이나 휘발성이 강하니까, 잊지 않고 오래토록 머금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리고 기록하면 더 선명하게 추억할 수 있기도 하니까, 행복했던 기억들은 자주 꺼내어보고 아팠던 경험은 다시 겪지 않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였을까 어린 시절 나를 으레 짐작해본다. 내적 성장에 필요한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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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요즘의 나는 어떠한가?

 

일부분만 기억나고 전반적인 것이 기억이 나지 않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과오를 저지르지 않고자 병적으로 열심히 기록하기를 마음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은 녹음하지 않으면 없어지고마는 것인데, 활자로 기록하면 삭제하지 않는 이상은 그 자리에 계속 남아있으니까. 변치않는 것 없는 세상에서 기록만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으니 왜인지 모를 위안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게 기록이란 잊지 않기 위해 애쓰는 도구다. 시절의 나를 기록함으로써, 나라는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랄까. 그렇게 '나'와 관련된 것들을 쓰고 찍다 보면, 세상에 있는 것들도 함께 기록하게 되는데, 이것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한 세기를 기록하는 것이니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의 역사 그 이상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글로 내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나를 알던 몇몇 지인들은 여러 방식으로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고는 했었는데,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 공적인(?) 곳에서 내 생각과 취향이 담긴 글을 선보인 것은 대학생이 된 이후였다. 글을 기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플랫폼이었지만, 한창 핫한 SNS에 나의 글과 사진을 업로드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그렇게 타인에게 선보이는 글을 쓰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자는 나 하나였는데, 새삼 타인이 내 것을 본다고 하니 신경 쓰이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괜히 한 번 더 검열하여 정제된 상태로의 글을 올리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생각하며 촬영을 하게 되었다. 여느 날처럼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사진을 고르고, 글을 쓰고, 해시태그를 붙이고 있던 와중에 '이건 누구 좋자고 이렇게 하는 거지?'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본질을 잃은 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게까지 파급력 있지도 않고, 그냥 개인적인 일상을 가득 담아 올리는 계정이기는 하다. 자기 만족을 위해 운영하는 계정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좋아요가 좀 덜 눌리더라도, 사람들이 좀 덜 볼 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한 피드를 만들고 있다. 타인과 공유하는 기록에서 '내'가 지워진 기록은 오히려 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록'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기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애인과 종종 생각과 관점을 나누고는 하는데, 얼마 전 넌지시 물어봤다. 당신에게 기록은 어떤 의미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그 당시,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 같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머금기 위함인 거지."

 

나는 좀 반대의 생각이었다. - "기록을 하다 보면 종종 주객전도될 때도 있잖아. 그런 경우에도 같은 생각이야?" - "아니지. 기록하는 행위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 내가 하고 있는 본질에 대해 집중하면서 기록은 부수적으로 하는 거지. 오히려 주객전도가 되면서 본질을 더 즐기고자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나는! 주객전도가 된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기록하다보면,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속에서 오히려 취향을 찾는 등 나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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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기록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보여지기 위함인가 아니면, 아니면 '나'의 순간들을 오래토록 간직하기 위함일까.

 

전자든 후자든, 어쨌든 기록은 '경험'을 기반으로 한 창작물이다. 기록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은 곧 경험치가 쌓이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한 것이다. 그저 성실히, 꾸준하게 기록하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있는 우리 자신을 언젠가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희망을 가득 안고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기록할 것이다.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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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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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
    • 남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이 아닌 나를 위한 피드이라니,,실현하고 싶지만 어려운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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