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르티에 라탱(Latin Quarter), 그들이 놓고 싶지 않은 서정 [영화]

글 입력 2022.05.01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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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 작품, <코쿠리코 언덕에서>와 함께 한다. 지브리 특유의 정서와 고등학생의 성장이 잔잔하게 어우러진다. 잠시 줄거리를 언급하고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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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요코하마.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코쿠리코 하숙장. 그곳을 운영하는 우미는 아침마다 바다를 향해 신호 깃발을 게양한다. 깃발의 의미는 '안전한 항해를 기원한다'이다. 예인선으로 통학하는 슌은 바다 위에서 그 깃발을 늘 바라보고 있었다. 이듬해 도쿄 올림픽을 맞이하게 되어 사람들은 오래된 물건을 모두 부수고, 새로운 물건만을 대단하다고 믿었었다.

 

그리고 같은 시대에 요코하마의 한 고등학교에서 분쟁이 일어났다. 오래되었지만 역사와 추억으로 가득한 문화부 부실이 모여있는 건물, '카르티에 라탱'. 이것을 부숴야하는가 보존하는가. 논란이 벌어지는 가운데서 우미와 슌은 만나게 된다. 슌은 건물을 지키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호소하고, 우미는 옛 건물의 좋은 점을 알리기 위해 대청소를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우미와 슌의 스토리의 중심인 '카르티에 라탱'. 영화 속에 나타나는 토론회는 꽤나 진지한 모습이다. 건물을 철거하는 쪽은 이렇게 말한다. 낡은 것은 철거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은 새로운 역사의 필연이다.

 

이에 반대하는 의견은 이렇다. 오래 됐다고 없애는 건 과거의 기억을 버리는 것과도 같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 죽는 걸 무시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에 매달려 역사를 무시하는 너희들에게 무슨 미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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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건물, '카르티에 라탱'의 이름은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대학가를 부르는 지명에서 왔다. 철학 연구소, 화학 연구소, 고등수학 연구소, 천문 연구소, 고고학 연구소 등과 같은 동아리들이 어수선하고 좁은 공간에 자리를 잡았고 순수하면서도 진지한 마음으로 각자의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이 건물의 동아리들 모두 서구의 학문이며 근대성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배경인 요코하마도 일본이 1854년 미국에 의하여 강제로 개항을 맞게 된, 미일화친조약(神奈川 条約)의 역사적 현장이다. 일본 근대성의 상징하는 지역일 수밖에 없다. 즉, '카르티에 라탱'은 일본 근대화를 상징한다.

 

작중 등장하는 고등학생들의 전반적인 태도는 현대의 대학생에 가깝다. 단카이 세대(일본 패전 전후에 태어난 아이들)인 학생들은 입시에 찌들지 않고 순수과학 탐구와 문학과 철학에 탐닉한다. 투표로 학교 내 동아리 건물의 존폐문제를 결정하고 그걸 위해 수없이 토론회를 갖고 즉석에서 난상토론도 가진다. 서슴 없이 정치인들의 위선적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웅변을 주고 받는다.

 

각각의 주장에 대한 싸움도 벌이고 시위할 때 수없이 봐왔던 시위대 결성과 스크럼 짜기도 나오고 고교 학교신문인 주제에 호외도 만들어 학생회가 학생들에게 프로파간다를 전파하듯이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고등학생들의 사회 참여 의식이 높던 시절, 고등학생의 사회적 위치 또한 지금의 대학생보다 높을 정도였던 때이다.

 

성공적인 근대화를 꿈꾸는 시대 속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의 어린 세대는 흔들리면서도 굳건하게 자란다. 이를 표방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는 포기한 옛날에 대한 희망과 서정을 잃지 않으려는 것과도 같아 보인다. 모든 것을 다 잊고 새로 시작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정답이 될 수 없음을 아는 슌과 시로는 건물 보존을 호소한다. 건물을 철거해서는 안된다고. 그저 간단한 건물이 아닌, 올바르고 성공적인 근대화를 상징하는 그 건물이기에 더욱 매달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건물을 보존하는 것을 약속받는다.

 

영화를 보다보면 사회 참여 의식이 높은 그들에게 영감을 받게 된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나와는 관련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현세대에게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있으며, 누군가는 해결을 위해 호소한다. 전쟁이 없는 세상에 태어나 평화로운 시대여도, 우리는 지식과 교양을 쌓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언제든지 우리의 '카르티에 라탱'을 위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책을 보자. 글을 쓰고 또 생각하며 공유하고 말하자. 그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의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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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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