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군가의 일기장을 엿보는 일 [도서/문학]

2030 여성 작가들의 솔직한 에세이 - <따님이 기가 세요>, <33의 3>
글 입력 2022.05.0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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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누군가의 일기장을 엿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글에는 자신이 너무 많이 들어 있다. 그것이 에세이의 본질이다. 나의 일화와 감정을 듬뿍 담아서 대단히 강한 어조로 주장하지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글, 나는 그것이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읽었다고 그 사람을 다 알게 되었다는 착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안에 작가의 어떤 일부는 분명히 들어 있다. 그것이 고농축이건 얕게 드러낸 자신이건 글쓴이를 엿보는 일이기에 작가와 독자 간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친밀감이 형성된다. 읽는 이들은 솔직한 글을 알아본다. 게으르게 쓰거나 거짓으로 꾸며 쓰거나 아니면 너무 과장에서 쓴 말들은 어딘지 모르게 읽다가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있다.


훔쳐보는 일이지만 이미 누군가가 읽을 것을 알고 쓴 글이니까 어느 정도의 각색과 객관성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어떠한 글보다 작가와 가까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다른 사람을 엿보기 위함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들은 어떻게 사랑을 하고 무엇에 열광하는지를 관찰해 일반적인 행동을 학습한다는 것이다.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나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누군가의 삶의 양식을 엿보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배우는 것 같다.


요즘 출판 시장이 ‘페미니즘’과 ‘힐링 에세이’로 양분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최근 서점에서 여성작가의 글이 더 자주 보이고 나도 즐겨 읽는다. 왜 여성작가들의 에세이를 더 많이 읽을까?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불편한 글이 적어서인 것 같다. 성차별적 발언이나 편견을 드러내는 글들은 읽기가 힘들다. 또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삶의 궤적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공감은 경험적 정서적 유사성에서 비롯된다. 내가 군대 문화를 모르고 남자들이 생리나 임신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성별에 따라 사회에서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또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동일 성별의 글을 읽을 때 소재나 디테일에서 더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많다. 이런 면에서 나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선배의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생각지 못한 지점과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자꾸만 2,30대 언니들의 에세이를 찾았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이야기할 두 권의 책은 공감은 물론이고, 내게 용기를 주고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책을 읽은 계기, 인상 깊은 구절, 읽고 느낀 바에 관해 짧게나마 이야기하고 싶다.

 

 

 

따님이 기가 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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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스로 기가 굉장히 약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거리낌 없이 생각을 표현하는 대장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어느새 말부터 줄이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 기세를 따라가기 힘들 뿐 아니라 대화를 할 때 예고 없이 맞닥뜨리는 직설에 머리가 띵하게 울리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이상한 손님들을 만나면 기가 센 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는 게 필요하지만 매번 잘 되지 않았다. 그건 나의 방식이 아닐뿐더러 나는 따라 할 수도 없는 영역인 것 같았다. 그래서 어딜 가나 기가 세다는 평을 들어온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했다.


저자인 서솔과 강민지, 두 명의 작가는 ‘하말넘많’이라는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여성의 삶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구독자 21만 명의 채널이다. 대표적인 콘텐츠로 인생샷에 대한 강박 없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모습을 담은 ‘디폴트립’, 20대의 지속 가능한 소비생활을 독려하는 ‘당신의 가계부’가 있다. 아직 어떤 뚜렷한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주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쓸데없는 구설수를 피하려는 검열과 자기반성 속에 이런 일을 4년 동안 지속하는 것은 더더욱 큰 노력을 요할 것이다. 작가들이 이러한 일들을 시작하고 계속할 수 있었던 계기를 알고 싶었다.

 

 

무용담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지난 2년간의 이야기다. 일련의 풍파와 특정한 변곡점을 지난 지금은 그때만큼 온 힘을 다해 대포를 쏘지는 않는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어떻게 이런 말을, 이런 콘텐츠를 낼 수가 있었지?’라고 생각할 만큼 당시의 우리가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 여성들을 위한 더 많은 선택지가 있음을, 이런 삶도 있음을 알려줄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하는 의도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처럼, 처음부터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적고 싶다. 머리카락 길이에 따라 여성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며, 결혼하지 않는다고 해서 여성의 삶이 고꾸라지지는 않는다. 25살이 넘는다고 여성으로 사는 삶이 꺾이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여자는 원래 그런 거야.”라고 정해진 원칙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앞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하말넘많의 영상을 초창기부터 봐온 구독자로서 말하자면, 그들은 초기 행보부터 대단했다. 당시의 이슈에 관해 속 시원하게 말을 했고 완성도 높은 영상을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여자가 무슨 담배를 피냐’는 말처럼 여성들에게 더 강하게 주어지는 사회적 금기나, 미디어에 알게 모르게 녹아있는 차별적인 문화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했다. 대담하게 여러 플로우를 따라가다가 약간의 소강상태인 지금, 이전의 일을 돌아보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원래 그런 건 없다’는 말은 책을 꿰뚫는 메시지이다. 사회의 분위기가 너무 당연해서 이에 거스르는 건 개인이 하기 힘든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남들과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냥 남들처럼 연애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기르는 삶의 방향을 택하고, 남들만큼 외모를 가꾸고 그럭저럭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면서 살게 된다. 그렇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너무 적은 선택지 안에서 덜 고민하고 인생을 결정해버리는 건 아닐까? 명확하지 않은 순간에 고민이 있다면 읽어보면 정말 좋을 것이다. 덧붙여 이전만큼 강한 세기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계속 말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 같은 당신들의 발걸음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33의 3(서른 셋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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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되자마자 나는 굉장히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성인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고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 같았다. 공부만 하면 되었던 학교 밖을 벗어나자 다양한 인간관계와 책임에 맞닥뜨렸는데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과외를 할 때는 최대한 덜 어려 보이는 옷을 골랐다. 수업을 듣다가 다음 건물로 갈 때면 길을 잃어버려 수업에 늦기 일쑤였다. 어설펐던 20대 초반에는 서른 살쯤 되면 나도 알고 세상도 알기에 뭔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짐작했다.


20대의 딱 중간, 스물 다섯 살이 된 지금은 서른이 그렇게 대단한 나이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때도 여전히 고민과 걱정을 많이 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그리고 그 나이에 주어지는 과업이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므로 고민의 내용이 지금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았다. 그래서 벌써부터 다가올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남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싶었다. 예방주사를 맞는 느낌으로 30대를 조금 이르게 준비하고 싶었다. 미지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비슷한 나이를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배우려고 했다.

 

 

예전만큼 남자들은 나를 조심스레 대하지는 않았고, 내게 공을 들이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어느 정도 이성으로서의 접근은 아직 남아있었다. 자위해보자면 그래도 나를 여전히 성적 매력이 남아있는, 성적인 존재로 봐주고 있던 것이다.

 

‘알 것 다 아는’ 삼십 대 여성을 향한 남자들의 무례한 접근이나 ‘성’에 집중돼있는 은밀한 관심에 분노가 일긴 했어도 어쩌면 나는 한편으로 안심하고 있었는지 몰랐다. 종종 겪는 칭찬의 탈을 쓴 무례한 외모 품평에 나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지만 사실 그때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은근슬쩍 안도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기도 했다. 그 비겁한 마음을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서 25살이 넘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헛소리도, 혼자 사는 것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긍정론도 마냥 받아들일 수 없다. 딱 그 중간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있는 그대로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원했던 바를 조금은 얻었다. 이렇게 날것인 30대의 이야기는 처음 읽었다. 우리에게 벌어질 일들을 스펙트럼으로 나타낸다면 슬픈 일부터 즐거운 일들까지 다룬다. 자조로 일관하다가도 나름의 답을 찾아가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만큼이나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다. 비혼을 지향하지만 법적 동반자없이 평생을 혼자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 대상화되지 않길 바라지만 이성적인 텐션이 아예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 삶에 말을 보태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가끔은 그런 관심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런 생각들 속에 갈피를 못 잡는 순간들이 있다. 이게 내 생각이라며 확고하게 말하다가도 작은 사건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흔들림이 멎고 어서 평온함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나보다 몇 년 더 산 작가도 저렇게 흔들리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냐 하는 생각도 든다. 작가와 나의 결론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리에서 잘 살아보자는 응원을 건네고 싶다.

 

*

 

2030 여성 작가의 글인데도 두 책의 입장은 꽤 차이를 보인다. 하나는 사회가 제시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 의문을 던지고, 다른 하나는 전형성을 오랜 시간 마주해 조금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둘 다 사회가 바라보는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고 이에 관해 정말 솔직하게 쓴 글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다. 먼저 깨달은 선구자처럼 잘난 체하지 않고 그렇다고 쿨한 척하며 포장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더 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덧붙여 두 책의 작가가 모두 유튜브를 운영하며 소통을 이어간다는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특이한 구석이 있겠지만, 유독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무난하지 않고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났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럴듯해 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솔직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나 정도면 꽤 무난한 사람이구나 하는 비겁한 안도감과 “야 너두?” 하는 공감에서 비롯된 솟아나는 애정을 느끼게 된다. 나만 찌질하고 겁쟁이고 구린 것이 아니었다는 위로도, 나만 화나고 불편한 게 아니었다는 시원함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앞으로도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고 싶다. 용기를 얻어서 말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더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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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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