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평평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 평평남녀

현실은 아직이다
글 입력 2022.04.2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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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이태경)은 일은 잘하지만 좀처럼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만년대리다.

 

대놓고 언급하지는 않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은 매번 좌절된다. 대신 준설(이한주)이 영진의 과장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다. 그것도 낙하산으로. 능력은 쥐뿔도 없는 준설은 과장된 말투와 행동으로 없는 능력을 포장하려 한다. <평평남녀>는 일 잘하는 영진과 일 못하는 준설의 현실적인(?) 오피스 로맨스 영화다.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영진. 늘 바쁜 일상을 보내 연애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팀원들의 신뢰는 자연스럽게 준설이 아니라 영진에게 향한다. 준설은 그런 영진이 괜히 얄밉다. ‘과장’의 권한으로 영진에게 급하게 필요하지 않은 자료도 당장 준비해오라고 하고, 자리가 지저분해 업무가 안 된다며 자신의 자리까지 대신 청소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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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앙숙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졌냐고? 답은 술에 있다.

 

퇴근 후, 준설은 영진이 보러 가는 전시를 몰래 따라간다. 우연히 만난 것처럼 행동하고 같이 밥을 먹자며 밥집으로 이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만나서 술을 마시다 보니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연인이 되어 있다.

 

영화가 납득이 갈 만한 상황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고 사랑은 타이밍이니 때마침 어떤 기류가 두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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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준설은 회사에서도 인정받기를 원하고, 영진은 자리를 잡지 못하는 준설이 안타까워 행동에 나선다.

 

자신이 차근차근 준비한 디자인 기획서를 준설에게 보낸다. 준설은 내부 PT에서 영진이 전달한 기획서를 발표하고, 혼자 모든 것을 준비한 것처럼 군다. 영진은 화를 내지만, 준설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바늘 도둑인 준설은 영진 모르게 소도둑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평평남녀>의 캐릭터들이 ‘평평’하지는 않다. 영진은 매번 퍼주고, 당하고, 후회하지만 또 퍼주는 존재로 그려지고, 준설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고, 야망 있고, 큰 사업을 벌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영진과 준설의 ‘평평하지 않음’은 영화 내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의 그것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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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여성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어차피 일 못하는’ 존재, 따라서 능력이 있어도 승진시키기 애매한 존재, 찢어지지 않은 단정한 스타킹을 신어야 하는 존재, 연애를 시작하면 얼굴에 뭐라도 해야 하는 존재이다.

 

반면 남성은 성과를 손쉽게 인정받는 존재, 나아가 회사 발전에도 도움을 주는 존재, 연애 상대에게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을 강요할 수 있는 존재, 여성 연예인의 외모를 평가하는 존재이다.

 

한 가지 희망적이었던 부분은, 준설의 가정환경이다. 준설은 아빠의 낙하산이 아니라, 엄마의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왔고, 아빠는 따지자면 전업주부이다. 앞치마를 둘러매고 그릇을 뽀득뽀득 닦고, 전화로 준설의 앙탈을 받아주는 조금 이질적인 그의 존재는, 영화 속 평평하지 않은 세계관에 작은 균열을 냈다.

 

하지만 준설은 “아빠처럼 되기 싫다”는 이유로 성과에 목을 매고, “명색이 과장”이라는 명분으로 영진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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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답답했다. 현실에서 들어만 봤지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한 차별을 끄집어내서 하나씩 나열하니 괴롭기도 했다.

 

그만큼 내가 무감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제목이 무색하게 ‘평평하지 않은’ 세계는 현실 세계가 반영된 것이다. 김수정 감독은 “조금씩 평평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평등으로 가는 길은 멀고 아득하다. 하지만 출발점은 명확하다. 아직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곳곳에 내재한 불평등을 마주하는 것이다. 영화는 평등은 아직 먼 이야기이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어딘가 잘못되지 않았냐고, 보면서 답답하지 않냐고,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이 영화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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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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