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을 색다른 감식안으로 들여다보다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

글 입력 2022.04.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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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1층에서 <영국 현대 미술의 거장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展>이 열렸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개념미술의 선구자이며 yBa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의 이름은 내게 yBa 작가들의 이름에 비해 생소했다. 그러나 <참나무>라는 작품이 개념미술의 흐름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라는 소개에 그의 작품들을 보고 싶어졌다. 게다가 이 전시는 올해로 82세가 된 이 거장의 전 세계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본 전시는 그가 1970년대에 작업한 초기작부터 2021년의 최신작까지 총 150여 점을 망라한 ‘최대 규모의 원화 작품’을 선보인다. 수십 년 동안 자기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거장의 작품을 한 데 모아 들여다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며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보면 그 가치가 톡톡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는 6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Exploration (탐구: 예술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Language (언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 글자), Ordinariness (보통: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 Play (놀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유희), Fragment (경계: 축약으로 건네는 상상력의 확장), Combination (결합: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 이를 통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펼치는 개념미술의 세계를 좀 더 가깝고 자세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여기는 일상의 오브제들이 실제로는 가장 특별한 것’이라 말하며 평범한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전시의 첫 섹션인 ‘Exploratin (탐구)’에서 만나는 그의 초기 작품들은 그 작품의 개념은 형이상학적일 수 있을지언정 형태만큼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의 실루엣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옷걸이에 걸린 청바지를 오로지 청바지의 실루엣을 딴 검은 선으로만 표현한 작품 등이 그렇다. 청바지의 튼튼한 소재가 가져다주는 질감, 청바지 특유의 푸른색 등은 작가의 손에 의해 걷어졌다. 일상의 물건을 탐구하되 그것을 실루엣만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형상-작가가 수없이 그 물체의 생김새와 양감을 한 가지 선에 담고자 노력했을-만을 남겨두고 다른 모든 것은 걷어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전시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았을 작품이자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작품 세계에서 단연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 <참나무>에서는 ‘물체의 본질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참나무>는 개념미술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지만, 육안으로 보기에 그것은 벽면에 달린 선반 하나와 그 선반 위에 놓인 물이 담긴 유리잔 하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이 물컵을 예술의 세계 안에서 ‘참나무’라고 명명하며 물체의 본질이 변했다는 사실이다. <참나무>가 전시된 벽면에는 작품의 양옆에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가 첨부되어 있다. 거기서 작가는 이 사물을 ‘참나무’라 부르는 것에 어떠한 상징성도 없으며 단순히 사물의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이것을 참나무라 명명하는 순간 사물의 본질이 바뀐 것이라고 강조한다. 재미있던 부분은 인터뷰에서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투명한 옷에 대해 인용한 것이었다. 작가는 동화 속 임금님의 옷이 보인다는 말은 (백성들이 임금님이 두려워 행한) 거짓말이라며 그것과 <참나무>의 ‘물리적’ 본질 변화에 명확한 구별을 둔다. 읽으면서 이 작품을 이해할 듯 말 듯한 지점이 많았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결국은 작가의 의도가 중요한 ‘예술의 세계 안에서’ 일어난 변화로 <참나무>의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애초에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들에게 관람자들만의 상상력을 마음껏 사용할 것을 독려한다. 개념미술에 대해 박식하게 아는 사람이 아니어도 자기 나름으로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자기 마음 안에서 작품이 주는 심상을 여러 가지로 조합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 조합할 수 있는 재료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언어였다. 선으로 남은 클립, 메트로놈, 지구본, 샌들 한 짝, 서랍같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캔버스에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들과 함께 그의 캔버스에 또 하나 중첩되고 쌓여가는 이미지는 바로 언어였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무제인데, 문자의 이미지가 들어간 경우 그 Untitled라는 제목 표시 옆에 괄호로 해당 단어가 들어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Untitled (Desire)>. ‘desire’라는 단어가 캔버스 안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 단어가 특정 의미를 가지진 않는다. 오히려 문자는 선과 면으로만 기능하며 작가가 이미지를 쌓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오브제, 또 하나의 재료가 된다. 알파벳이 조합된 단어와 오브제들은 연관성이 없으며 보는 이의 눈과 사상을 통해 재해석된다.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tin. Courtesy of Gagosian.

 

 

그의 작품에서 언어가 의미를 가지는 경우는 문자를 사용하는 두 번째 계열의 작품에서 뿐이다. 이 계열의 작품들에선 단어와 오브제가 언어적 연관을 가진다. 예컨대 Love라는 글자와 함께 글러브(장갑)의 이미지가 함께 있는 작품의 경우 제목은 가 되어 일종의 언어유희를 느끼게 한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관심을 끄는 사물들은 자연물이 아니라 인공적인 산물들이다. 그는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의 사물들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평범한 물건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일상 속에 흔한 물건들이 없다면 당장 우리네 삶은 불편함을 넘어 혼돈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런 일상 오브제들의 소중함을 작가는 자기만의 간결한 미학으로 표현한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행복의 열쇠는 결국 나의 일상 한 모퉁이에 있다’는 것이다.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take away cup), 2012_Michael Craig-Marttin. Courtesy of Gagosian.

 

 

‘Ordinariness (보통)’에서는 다양한 일상 속 사물들을 만날 수 있다. 농구공, 배구공, 카세트테이프, 테이크아웃 컵, 코르크 따개, 모자 등등. 숱한 사물들이 작가가 벼려놓은 선만으로 아이콘화 되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그 선에서 그 사물의 본질적인 형태와 양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를 두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그림이 아니라 2차원의 조각이라 표현한 바 있다. 나는 입체 작품 외에도, 캔버스에도 이 말이 적용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암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으나 명확하게 오브제의 원래 형상을 드러내는 이 선만으로 양감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한편 그러한 선과는 달리 작가는 작품의 채색에 원래의 사물이 가진 색과 다른 원색을 사용해 기시감만이 아니라 이질감마저 주고 있었다. 이 색감 처리가 아니었다면 그의 작품은 그저 ‘사물의 아이콘화’만으로 남았을 것이나, 작가는 그렇게 두지 않았고 현명한 선택으로 그의 ‘2차원 조각들’을 요모조모 감상할 거리가 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현실과 똑같기만 하거나 현실의 단순화에서 그쳤다면 지금의 작품이 주는 ‘예술적 놀이’의 감각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색감이 주는 이질감, 비일상성의 감각은 작품의 크기나 구도에의 도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는 아카데믹한 화풍에의 도전이기도 하다. 커다란 캔버스에 카세트테이프를 그린 작품은 평범한 소재를 화폭의 한가운데에, 그것도 여과 없이 꽉 차게 넣어 기존의 아카데믹한 화풍에서 쓰지 않던 파격적인 구도를 사용했다. 작가가 개념미술의 선구자인 만큼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오브제지만 예술과 이미 인연이 깊은 오브제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이 떠오르게 하는 수프 캔을 단순화하여 포착한 작품과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과 ‘그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귀를 연상시키는 파이프를 담은 작품…. 미술사 안에서의 위트가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Cassette, 200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Cassette), 2002_Michael Craig-Marttin. Courtesy of Gagosian.

 

 

그래도 작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일상이었다. 작가가 일상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는 성인들의 신성한 자리에 일상 오브제들을 놓은 작품에서 격하게 알 수 있다. 2001년 작품인 <Untitled (9 panels)>는 고전 회화에서 12 사도의 자리에 9개의 오브제를 넣어두었다. 카메라, 메트로놈, 변기, 여러 개의 붓이 꽂힌 붓꽂이 통, 아이용 의자, 지구본, 신발과 바이올린이 그것이다. 이미 앞선 섹션들에서 한 번씩은 보았을 물건들이다. 작가는 이 오브제들을 화면 안에 온전히 넣지 않고 잘라서 그려 넣었다. 다른 말로는 클로즈업해서 그렸기 때문에 오브제의 일부가 잘렸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막상 마이클 마틴 크레이그 본인은 자기 그림에서 이러한 특성을 클로즈업이 아닌 ‘경계 (Fragment)’라고 부른다. 사물의 충분히 특징적인 부분을 일부 보여줌으로써 축약이 이뤄지고, 감상자의 머릿속에서 상상력을 촉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른 작품에서 서류 가방의 손잡이 부분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식이다.


<Untitled (9 panels)>에서도 이러한 ‘경계’가 나타난다. 이 오브제들이 차지한 자리가 본래 12 사도의 자리였음을 떠올리면 ‘경계’의 쓰임이 더욱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상상해보라. 제단화 날개 부분에 성인의 전신을 그리는데 성인의 머리나 팔, 발 등의 신체 부위가 화면 밖으로 잘려나가는 모습을. 종교화에서 이런 그림이 있다면 패널이 손상을 입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에게 있어 12 사도의 자리에 놓아둔 일상, 보통의 사물은 분명 ‘행복의 열쇠’이지만 엄숙하고도 신성하여 일부(색감)를 변형하고 일부만 잘라내어 보여줄 수 없는 존재는 아니다.


그에게 오브제는 자신의 개념미술의 재료이자 예술적 유희의 대상이다. 그래서 캔버스 외에도 조각, Led 조명판 등 소재를 한정하지 않는다. 언어와 사물을 포함한 오브제를 중첩하여 쌓아 올리거나, 일부만을 보여 그 경계를 세우거나, 원근감을 무시하고 한 오브제를 다른 오브제에 비해 키워 감상자마다 다른 스토리텔링을 유발하는 것은 오브제들이 일상에서 온 것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상의 편린 중 어떤 것을 유독 깊이 들여다보며 크게 해석하기도 하고, 일상의 면면을 새로이 나열하며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전에는 몰랐던 의미를 발견하며 그것에 감정으로 반응한다. 다름 아닌 우리의 일상이기에, 우리의 눈과 머리로 되새기고 다시 느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신성하거나 엄숙한 것, 절대불변의 가치를 지닌 무언가가 아닌, 행복이 숨어 있는 평범함이기에.


일상을 색다른 감식안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이 전시를 보고 와서 일상에 관한 새로운 글을 한 편 쓸 수 있었다.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는 버튼이 쉽게 눌린 것이다. 일상에 관해 새롭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 보고 싶다면,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회고전을 통해 눈과 마음을 환기해 보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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