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심심한 미술 이야기 : 벽화와 항아리 [미술]

아늑한 사월의 밤을 보낼 당신께
글 입력 2022.04.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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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실 때, Lucid Fall의 - Going Home Safe (집까지 무사히)를 추천드립니다.

 

 


 

 

소설, 『회색인간』에는 현대 사회 속 갑자기 땅속으로 우르르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도저히 살기 불가한 나날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꿋꿋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버텨냅니다. 아마 사람답게 살아가고, 사람답게 죽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소설뿐 아니라 명백하게, 과거부터 예술은 유희적인 목적이나 자기보존을 위한 사회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쇼베, 라스코,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그 오래된 예시라고 볼 수 있지요. 벽화는 인간이 자연의 혼돈 속에 인간의 질서를 부여하고자 새긴 흔적이라고도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번엔 당시 생존 도구였던 뗀석기를 생각해 볼까요. 아마 고대의 그들은 돌의 결을 생각하기도 하고, 손으로 잡기 쉬운 형태를 위해 섬세하게 관찰했을 겁니다. 실용성이 있으면서도 장식적인 무늬가 있는,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빗살 무늬 토기도 그 증거가 되지요. 이처럼 인류는 예술성을 바탕으로 더 많은 디자인이 가미된 도구를 고안할 수 있었습니다. 이 본능적인 예술성은 동물과 다른 인간만이 가진 유희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생존과 연결되어 상징적 의미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어요.


다시 벽화로 넘어와, 오래된 그림들을 둘러봅시다. 저는 특히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암각화에 눈이 갔어요. 이 두 벽화는 시기 측면에서 눈여겨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서술식으로 섬세하게 표현된 데 반해, 천전리 암각화는 기하학적인 추상무늬로 표현되어 있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다양한 고래의 종류를 나열할 정도로 구체적이었지만, 오히려 더 늦은 시기에 존재한 천전리 암각화는 추상적이었으니까요. 흠, 왜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미지로 발전하지 않았을까요?


감히 추측해 보건대, 추상이 대두되게 된 배경에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었다는 빌헬름 보링거의 가설이 들어맞을 듯합니다. 비록 그는 서양미술사를 두고 추상의 의미를 분석한 것이지만 이 가설은 고대 미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설명 같아요. 정교한 묘사는 자연을 알아보려는 적극적인 태도에서 나왔겠지만, 현실에 불안감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추상적인 도형을 그리게 되었다고 생각되니까요.


즉 당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뜻을 합하면서, 추상적 무늬와 기원을 담은 천전리 암각화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불안함의 기저에는 각각의 추상의 모양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고구려의 고분 구조도 이런 인과적인 관계와 밀접할 수 있습니다. 초기 고구려 고분의 구조는 다실묘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단순해진 단실묘의 형태를 띠었으며, 벽화 역시 도교의 영향이 두드러져 추상적으로 변했으니까요. 아마 당시 사회적인 정세 변동과 경제적 위축이 맞물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다고 생각됩니다.


현대로 와서도 회화 역시 추상의 경향을 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같이, 추상에 끌리는 이유와 그 시대적 배경을 헤아려보면 이러한 경향이 이해될 수 있어요. 여러분은 추상회화를 보면서 마음이 울렁일 때가 있으셨나요?

 

오늘은 아주 까마득하고 먼 세월, 돌에 그림을 그리던, 추상을 그리던 이들의 마음이 참 궁금해지는 밤인 듯해요.


이번에는 다른 시대를 뛰어넘어 달항아리를 둘러볼까요. 달항아리는 둥그런 달의 모습치고는 완벽한 원은 아닌데요. 아마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하단에서부터는 조금씩 좁아진 형태가 많습니다. 그런데 굳이 ‘달항아리’라는 이름이 찰떡같이 붙여지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이는 달의 본질적인 속성과도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먼저 우리 달은 지구를 도는 주기마다 차고 비워지는 시기가 달라지기에, 늘 완벽한 보름달을 보여주지 않아요. 정감이 갈 정도로 빈틈을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달항아리 역시 만드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부정형의 미를 품고 있어요.


한편 달이 소원과 행운의 대상이자 상징이었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옛 어른들이 보름달이 뜨는 추석마다 간절한 소원을 빌었던 것처럼, 동심과 순수의 마음으로 항아리를 빚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현대까지도 달항아리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실제로 달항아리를 그린 최영욱 작가의 작품은 빌 게이츠가 반했다는 정도로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이 밖에도 김종식의 <진주 귀걸이 소녀와 달항아리>, 김환기의 <항아리와 날으는 새> 등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한 작품은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는 한국 도예에 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면서 새롭게 전통에 대한 해석을 창출하는 행위이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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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항아리와 날으는 새>

 

 

이렇게 달항아리는 다양한 현대 미술로 포화상태를 맞이한 미술 시장에서, 오히려 거짓 없는 진솔함만으로 도전했기 때문에 더 눈길을 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말갛고, 보다 보면 마음이 정돈되는. 내 마음을 깨끗이 담을 수 있는 그런 항아리의 존재는 언제나 귀하니까요.


아무튼, 동굴에 추상적 벽화를 그리던 사람들처럼, 아니면 조금은 완벽하지 않은 달항아리를 빚고, 다시 그려내는 현대 작가들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미술로 연결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심심하지만 달콤한 미술 이야기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어요. 너무 맛없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사월의 밤도 아늑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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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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